2024년 5월 29일
1871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사액서원 47개만 남기고 전국의 모든 서원이 철폐됐다. 당시 서원은 1000여 곳이 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아 있는 서원 중 9곳이 세계 유산인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되게 된다. 하회마을과는 10리 거리에 서원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 병산서원을 관람합니다.
병산서원은 낙동강을 내려다 보는 경사진 구릉지에 1613년(광해군 5)에 창건되었으며 유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고려 말기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1572년(선조 5)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29년 유진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3년(철종 14) 현재의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병산서원 입구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사실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복례문은 병산서원 출입문으로 복례는 논어.안연편에 `사람마다 욕망과 탐욕의 유혹을 이겨 내고 예로서 자신을 절제하여 유학의 종지인 인을 이륙하다`라는 구절에서 인용 하였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막돌기단 위로 만대루가 나오는데, 강학과 휴식의 공간인 만대루는 두보의 `백제성루`의 구절인 `푸른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 하다` 에서 취하였으며 누마루 건물이다. 7폭 병풍에 낙동강 하얀 백사장과 병산의 풍경 담은듯하다 하여 병산서원에서 최고의 건물로 꼽힌다. 이제는 보물로 지정되어 만대루 2층 누마루에 올라설 수 없다.
복례문안으로 들어서면 만대루로 올라 가는 계단밑 좌측으로 곽영지를 만들어 놓았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뜻을 품고 있는 연못이다. 작은 규모이나 수심양성을 근본으로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의 정원이다.
만대루누각을 지나 계단위로 올라서면 병산서원의 강학공간의 건물들이 나온다. `소학` 입교편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착한 본성에 따라 인간윤리를 닦아 가르침을 바르게 세우는 전당`이라는 의미에서 입교당이라 한다.
교실과 교무실에 해당하는 입교당은 방 사이에 대청이 있고, 기단에는 커다란 아궁이가 계단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왼쪽에 있는 방 명성재(明誠齋)는 서원의 교장실이고, 오른쪽의 경의재(敬義齋)는 교무실에 해당된다. 계단 앞에는 3·1운동 때 심어진 무궁화 한 그루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라를 생각하는 서애의 우국충정이 후대에 전승된 듯 느껴진다.
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에 겹처마로 되어 있다.
입교당의 뒷 모습.
기숙사 동재를 동직재,
서재를 정허재라 한다. 이는 주렴계의 `통서` 제20 성학편에 나오는 말로 `고요할 때 텅 비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이치를 통하게 된다. 움직일 때 곧으면 공평하게 모든 일을 널리 처리할 수 있다. 밝아서 통하고 공평하게 넓게 되면 성인의 도에 거의 가까워지지 안니하겠는가!`에서 인용했다. 정허재 1칸 에는 서책을 보관하는 장서실이 있다.
입교당에서 보물 만대루와 그 너머 풍광을 바라본 모습으로, 만대루는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힌단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건물 기둥 사이로 낙동강이 흐르고, 병산의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서원 내에서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존덕사 내삼문으로, 출입문인 신문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장초석에는 아래위로 8괘가 둘씩 그려져 있다.
존덕사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위판을 모셨으며 서원 내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학문과 덕행을 높이 우러른다`는 뜻에서 존덕사라 하였다.
장판각으로 책을 찍는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입교당 후면에 위치하고 있다.
내삼문밑으로 우측 전사청문으로 들어 가면.
전사청 건물이다. 제사 전날 주사에서 준비한 제수를 법식에 맞게 가공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신성한 제수를 보호하기 위해 사방에 담을 두르고 부엌, 온돌방, 마루방을 각 1칸 씩 놓고 바닥을 높여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도록 설계되었다.
전사청 밑으로 `주사`는 서원의 관리인 거주공간으로, 안동지방의 특유의 뜰 집 모양으로 ㅁ자 형태의 살림구조이다.
달팽이 뒷간으로 `통시`라고 하며, 서원 밖 관리사 앞에 있는 화장실이다. 출입문을 달아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다. 달팽이 모양을 한 하늘 열린 통시는 또 다른 볼거리다.
하회구곡 중 제1곡 병산이다. 만대루에 올라가 내려다 보면 낙동강과 병풍처럼 펼쳐진 산 병산이다. 낙동강 근원 있는 물이 동쪽에서 흘러내리고/병풍바위의 우뚝한 절벽이 그 안을 에워쌌네/구름 낀 병산에 서원 서니 강이 섬처럼 들려/일곡이라 이름난 터에 버드나무 나부끼누나/
유구한 세월에 많은 것이 변하고 있지만 서원만은 그대로 잘 보존된 곳 병산서원이 바로 이런 곳이다. 그 흔한 전시관이니 박물관이니 하는 현대적 부속건물 하나 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서원 유생들이 사용하던 화장실도 온전히 남아 있다. 서원을 향하는 십리 남짓한 산길도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