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497에 있는 조선후기 호남지방의 장암 대동계에서 건립한 누정을 답사한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이며, 장암정은 장암 대동계(大同契)에서 1668년(현종 9)에 동약(洞約)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이다. 동약이란 조선시대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좋은 일은 서로 권유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암정의 배치는 마을 앞의 소로변과 바로 인접하여 평탄한 대지 위에 병좌임향(丙坐壬向)으로 자리잡고 있다.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향약(鄕約) 집회소로서, 장암 대동계가 창설된 이듬해인 1668년(현종 9)에 창건되었다. 특히 정자로서는 드물게 단청을 하였는데 상부는 청색으로, 하부 기둥과 판벽은 적색으로 하였다.장암정의 현판은 창건 당시 명필인 김이도(金履道)의 친필이라 전한다. 김이도는 남원부사 김탄행의 아들로 좌의정 김이소의 아우라고 한다. 1800년 별시 병과에 급제해 부수찬에 제수되었고, 정언, 승지 등을 역임하다. 순조 즉위 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벽파가 득세하자 시파로 몰려 영암으로 유배되었다.장암정 내부에는 「장암정기」·「장암정중수기」와 각종 시문(詩文) 등 약 24개의 현판(懸板)이 보관되어 있다.장암정은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 집이다. 앞쪽은 3척 정도의 비교적 높은 높이로 마루를 깔아 개방된 구조이며 뒤쪽 중앙으로 마루방 2칸을 두었다. 전면의 마루는 통간으로 하고 중앙 후부 2칸은 마루방을 놓은 유실형(有室形)이며, 방의 상부에는 누다락을 설치하여 서고(書庫)로 이용하였다. 후면과 일부 좌우 측면 1칸을 판문을 달아 부분 폐쇄하였으며, 1967년 목조계단을 설치하여 마루에 오르도록 하였다.장암정 우측으로는 부속건물인 고직사(庫直舍)와 강신소(講信所)가 있다. 이건물의 주 목적은 향음주례(鄕飮酒禮)· 백일장(白日場)· 회갑연(回甲宴)을 비롯하여 국경일(國慶日)· 국왕(國王)의 승하(昇遐)시(時) 예상소(禮上所)로도 이용되었다.정암사 주변에는 남평 문씨 사당인 구암사는 1668년 건립되었으며, 이후백, 문익주, 서명백을 배향하며, 창건당시에는 삼현사로 불렸다.마당바위가 있는 구암동산남평 문씨 문규원의 처 함양박씨 정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