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태호 2024. 12. 9. 07:04

* 산행일자 : 2024년 11월 9일

* 산행구간 : 서창마을-장도바위-적상산성 서문-향로봉삼거리-향로봉-적상산-안렴대-안국사-적상산성 서문-서창마을

* 산행거리 : 11. 21km

* 산행시간 : 3시간 40분

 

단풍에 물든 산의 모습이 여인의 붉은 치마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적상산(赤裳山. 해발 1030.6m)은 덕유산 주능선에서 살짝 떨어져 있지만 엄연히 덕유산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다. 서쪽 사면은 붉은 화강암 절벽이 띠를 두른 모습. 험한 지형을 이용해 조선시대에는 산성을 쌓고 왕조실록을 보관했으며, 오늘날엔 저수지를 만들어 양수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상부까지 포장도로가 나있어 차를 타고 올라가 덕유산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2024년 적상산 가을도 이제 끝물이다. 유난했던 폭염의 여름 끝에 단풍은 제시기에 필동말동 그렀게 피었다 떨어진다. 다행히 서창마을 주차장은 단풍이 마지막 손님을 반겨준다.
등산 초입에는 '서창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서창'은 서쪽에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 한 '적상산사고'가 있던 역사를 담고 있다. 적상산 기슭에 자리한 서창마을은 우거진 숲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해 곳곳이 뷰맛집이다.
거대한 암벽을 두른 산이 그랜드캐니언처럼 버티고 서있다. 주위 산군과 너무나 판이한 모습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산은 적상산이다. 높이 1,000m가 넘는데도 정상 일대가 평평한 독특한 모양의 산이다. 산허리까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험준하지만 정상은 평탄한데다 육산이라 숲이 매우 울창해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자연요새였던 적상산은 걸어서 오를 수 있는 길이 단 두곳 뿐이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데, 그 길이 바로 서창에서 오르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나무숲길인데 묘한 기품을 갖췄다. 바닥의 돌계단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바위마냥 평평하고 완만해, 자연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있다. 상쾌한 나무 냄새는 머리를 깨우고 흐르는 물소리는 막힌 귀를 뚫는다.
절벽처럼 바싹 선 적상산을 멀리서 보았을 땐 숨깨나 넘어 갈 줄 알았는데, 등산로는 의외로 편안한 길이다.
길이 지그재그로 돌며 수월한 방식으로 고도를 높이고 있다. 무주 방면의 많은 물자와 사람이 이 길로 산성에 들었을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다.
오름길을 막는 걸출한 벽은 장도바위다. 최영 장군이 바위에 막혀 산을 오를 수 없게 되자 장도를 뽑아 힘껏 내려치자 순간 바위가 쪼개지며 길이 열렸다는 설화가 담겨 있는 곳에 못보던 전망처를 만들어 놓았다. 계단이나 전망대가 없어도 다 오르던 곳인데 스잘데기 없이 돈을 펑펑 쓴다.
적상산성 서문 아래쪽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바위는 10여 미터의 큰 바위가 둘로 쪼개져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데, 사실 바위 사이로 갈 길은 아니다.
장도바위를 둘러 오르자 차곡차곡 쌓은 돌담이 잘 왔노라 반긴다. 적상산성이다. 잔잔한 돌로 쌓은 낮은 성은 위협적이지 않다.  적상산성 (사적 제 146호)은 고려말 공민왕 23년(1374)에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뒤 개경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해 축성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적상산성은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나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 무너지고 약 3km 둘레에 북문지와 서문지, 사고지가 남아 있다. 당시 성안에는 비옥한 토지와 함께 여러 개의 못과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적상산성 서문지는 서창마을에서 2.4km위치에 있다.
서문을 지나자 능선이 지척이다. 9부 능선 언저리까지 올라선 것이다. 해발고도 900m를 넘어서면서 물소리 지나고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지나니,
참나무들 울창한 능선 갈림길이 나온다.
적상산 산길은 어느 코스든 참나무류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터널을 이루고 있어 걷고 쉬기에 좋다.
능선길은 수백 년 된 참나무 군락지다. 신갈과 졸참 같은 참나무들은 낙엽을 다 떨구고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
적상산 두번째 높은 봉우리 향로봉이다. 많은 분들이 차례를 기다리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은 후 바로바로 자리를 비워 준다.
향로봉은 서쪽으로 마향산 방면만 보여준다.
서창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적상산기봉을 찾아간다.
이뭐꼬? 병치레가 심한 나무로 고사돼었다.
적상산정상에는 먼저 통신탑이 차지하고 있다.
정상에 가면 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닌 길을 따라 가면 CCTV가 턱 하고 째려보고 있다.
안국사 갈림길에서 적상산 최고 전망대인 안렴대로 향한다. 안렴대는 옛날 거란이 쳐들어 왔을 때 지방장관 격인 삼도 안렴사가 이곳에 피난하여 유래한다.
안국사에서 바로 올라오는 삼거리.
적상산에서 가장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곳은 능선의 남쪽 끝 안렴대다. 치마를 두른 듯한 적상산 산허리 절벽의 남쪽 꼭대기에 해당하는 곳이다. 벼랑 끝에 툭 튀어나온 너럭바위인 안렴대다.
칼로 자른 듯 반듯하게 틈이 벌어져 있어 살짝 점프를 해야 벼랑 끝 난간에 설 수 있다. 바위틈에 빠졌다간 골로갈 수 있다. 아찔한 곳이다.
실로 압도적인 전망대다. 서쪽으로는 낮은 산들이 엎드려 끝없이 펼쳐지고 남쪽은 덕유산이 푸근하고 거대한 덩치로 자리를 잡았다. 1,000m 넘는 덕유산 부근 고산과 서쪽의 낮은 산들은 포근한 날씨 덕분에 흙빛이다.
청명한 날씨 덕분에 멀리 지리산 줄기와 용담호를 덮은 안개지역 좌측으로 말 귀를 닮은 진안 마이산의 봉우리도 또렷이 보인다. 병자호란 때는 한 스님이 적상산사고의 `실록`을 안렴대 밑 석실로 옮겨 숨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적상산 끝머리 향로봉도 보여준다.
호국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드물게 일반인 차량을 절 마당까지 주차를 하게 해준다. 절 인심이 후덕하다. 만산홍엽은 이곳에서 본다.
비록 거꾸로 절에 도착을 했지만 아무리 그렇지 안국사 본당으로 가기전 예의를 지키러 일주문으로 내려간다.
덕분에 나무사이로 양수발전소 상부댐인 산정호수를 본다. 양수발전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으로, 적상사고가 있던 자리다.
일주문안으로 들어와 적상사 청하루를 올려다 본다.
청하루를 지나 앞마당으로 올라가면 단아한 모습의 극락전이 적상산 정상을 배경으로 남쪽을 향해 있고 바라보는 이의 왼쪽에는 천불전과 성보박물관이, 오른쪽에는 지장전과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산성 안에는 적상산사고의 수호를 위해 왕명으로 창건, 승병을 양성하던 호국사도 있었다. 하지만 1949년 공비토벌 때 전소돼 지금은 부지에 양수발전소 건설로 산정호수가 생겨 수몰되는 바람에 안국사가 옮겨 왔다.
안국사를 뒤로하고 서창마을로 되 돌아 간다.
서창마을로 되돌아 가는 길인데 이런곳으로 왔나 다시금 생각나는 등산로다.
서창마을에 의병장 장지현 장군 묘역을 잠시 둘러 본다.
의병장 장지현 장군 묘지 앞에는 수령 420년을 추정되는 서창 소나무가 있다. 일명 `장군송`이라고 한다.
장지현(1536∼1593년) 장군은 선조 23년(1590년) 전라병사 신립의 부장으로 천거돼 사헌부 감찰을 지내다 낙향했으나,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자 의병 2000여 명과 함께 추풍령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산행은 서창마을에서 시작해 치목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치목으로 하산할 경우 교통이 불편하다. 택시를 불러 이동해야 한다. 적상호수에서 치목으로 내려서는 길엔 큰 볼거리는 없어, 안렴대에서 안국사로 갔다가 서창으로 되돌아오는 이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