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전주마실길은 전주 천년의 역사를 품고 숨 쉬고 있는 남고산성 성곽길. 종교의 박해가 피로 얼룩진 가슴 아픈 초록바위 길. 자연의 아름다움과 꽃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완산칠봉 길. 삶의 애환이 담긴 깊이가 어린 다가산 길. 전주의 젖줄이면서 생태계의 보고인 동식물, 어류가 살아 있는 전주 천변길을 걸어 보겠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출발하여 총 5시간을 걷는 천년전주 마실길(11.9㎞)을 접근성이 좋은 전주남시장 버스정류소에서 출발을 해 보겠습니다. 전주 남부시장 싸전다리에서 남천교를 거쳐 한벽당 방향으로 가다가 국립무형유산원으로 가는 길을 초록 바위가 있는 곤지산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전주천은 임실에서 발원해 전주 시내를 거쳐 만경강에 합류하는 물길로, 도심 하천을 생태적으로 복원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생활하수와 폐수로 오염된 하천이 1998년 생태하천으로 복원돼 현재 1급수의 맑은 물이 흐른다. 남천교 위에 한옥마을로 통하는 상징물로 '청연루'가 세워져 있다.마실길은 오목교를 건너 국립무형유산원을 통과 좁은목약수터로 이어진다.국립무형유산원 부근에 있는 마실길 안내도.국도17번 춘향로 좁은목오거리다.좁은목약수터의 전경으로 약수터 위로 천년전주마실길은 전주 천년의 역사를 품고 숨 쉬고 있는 남고산성으로 향한다.동서학동 좁은목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을 따라가다 보면 1기의 묘가 나온다.‘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노래 ‘성주풀이’ 가 생각이 난다.대승사갈림길이 나오고,정성들여 쌓은 돌탑이 보이며,남고산성 억경대 정자가 보인다.정자에 오르면 전주시내가 눈앞에 펼쳐진다.남고산성은 계곡으로 둘러싼 포곡식 산성으로 901년 견훤이 도성을 쌓는데 길이가 5.3km 된다. 이러한 이유로 견훤이 쌓았다고 해서 견훤산성 또는 고덕산이라서 고덕산성이라고 한다. 주변에는 전주시내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3개의 봉우리가 있다. 돌탑뒤로 억경대가 보인다.'억만 가지가 보인다'는 억경대에 오르면 전주시내 너머로 완산칠봉이 우뚝하고, 멀리 황방산이 아득하게 다가온다.성벽길을 따라 북장대 방향으로 간다.천년전주 마실길은 북장대 오르기전 남고사로 방향을 트는데, 북장대에 가 보기로 한다.남고산성 북장대의 모습이다. 비록 고덕산이 주 산이지만 남고산성에서 제일 높은 남고산 정상이다.금산사의 말사인 남고사는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의 제자 명덕이 668년(신라 문무왕 8)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남고연국사(南高燕國寺)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국이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 현재 남아 있는 당우는 대웅전과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다.남고사 바로 윗쪽 만경대에 오르면 시야가 터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만경대는 '우뚝 솟은 돌 봉우리는 마치 층운을 이룬 듯하고, 수십 명이 앉을 만큼 널찍하다'고 기록돼 있다.조망도 뛰어나다. 좌측 천잠산을 시작으로 완산칠봉, 황방산, 다가산, 가련산, 건지산, 오목대가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만경대 바위벽에는 '만경대'라는 글씨와 함께 정몽주가 기울어져 가는 고려를 걱정해 지은 시가 지금껏 남아 있다. 고려 말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1380년)에서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는 회군하는 길에 전주 오목대에서 한고조의 대풍가(大風歌)를 읊었다고 한다. 종사관으로 황산대첩에 참가했던 정몽주는 이성계 장군이 읊은 대풍가를 듣고, 말을 달려 이곳 남고산성에 도착하여 만경대에 올랐다. 정몽주는 고려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을 칠언율시(七言律詩) 한시로 남겼다.바위 표면은 풍화가 심하여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만경대에서 성벽을 따라 삼경사로 내려간다.남고산성 서암문지.삼경사 옆 남고산성1길을 따라 전주천으로 향한다. 전주천까지 1.7km다.전주천.곤지산으로 오르는 길은 공사중이다. 벽으로 쌓은곳이 초록바위가 있던 곳이다. 초록 바위는 예로부터 처형장이었다. 역적이든 가톨릭 신자든 이곳에서 수도 없이 죽어 나갔던 장소다.초록바위 좌측 옆길 윗쪽에 공영주차장이 있으며 그 위로 완산칠봉으로 오르는 곡목길이 있다.이상기온으로 올해는 어딜가나 꽃들은 화려하지 않다. 완산공원 꽃동산의 꽃들도 그렇다.꽃동산 녹두관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벚꽃과 겹벚꽃뿐만 아니라, 머리 위를 덮을 만큼 큰 철쭉나무 군락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분홍빛 꽃 터널과 철쭉의 향연 속에서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꽃동산에서 완산칠봉 내칠봉인 매화봉, 탄금봉, 장군봉, 옥녀봉, 무학봉, 백운봉, 용두봉 해서 용머리고개로 넘어갑니다.완산칠봉 정상의 팔각정 전망대에 오르면 온 천지가 발 아래로 와서 머뭇거린다. 모악산이 뿌옇게 다가온다.완산칠봉의 봉우리는 7개가 아니다. 주봉인 장군봉을 중심으로 두 겹의 산줄기가 내칠봉과 외칠봉을 이루고 있어 봉우리는 모두 13개다.완산칠봉 옥녀봉에서 용두봉으로 오르는 중간에 송아지형상의 바윗돌을 일명 `금송아지 바위`라고 부른다. 옛날 금사봉 아래 경치좋은 금사당 골짜기에 금송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골짜기를 한발도 벗어나면 안된다는 산신령의 계율을 어기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옥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옥녀봉에 오르고 말았다. 금새끼끈을 주면 천상에 오르는 감로수를 주겠다는 옥녀의 꾐에 금실 한 개를 건너자 그자리에서 돌로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훗날 배서방이라는 젊은 이가 금덩이를 갖기 위해 이 바위를 깨려다가 산신령의 노여움을 사서 혼절한 뒤 신음하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온다.완산칠봉 용두봉.동학농민군과 관군의 싸움터였던 '용머리고개' 고개의 모양이 용의 머리와 비슷하다 하여 생긴 이름으로 전주천에서 살던 용이 천일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승천하려다 몸은 완산칠봉계곡에, 머리는 지금의 용머리고개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1960년대 용머리고개. 용머리고개는 일제시대 때 용의 머리를 신작로를 만들어 전주의 기를 무너뜨린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마실길은 용머리고개 윗쪽에 횡단보도를 건너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 밑으로 빨간색 바탕에 땅 이라고 써 있는 공인중계사 건물 우측으로 마실길은 이어진다.200여m 가다보면 전주화산교회 우측으로 엠마오사랑병원 방향으로 간다.엠마오사랑병원 앞에서 중화산신일아파트 옆길을 따라 가며는,마실길은 다가공원으로 이어진다.천년 전주를 상징이라도 하듯이 300년이 넘은 고목과 전주의 오랜 역사를 웅변이라도 하듯이 26기의 불망비와 선정비가 줄지어 서있으며, 전주팔경으로 꼽히며, 5월이면 벼랑에는 하얀 꽃송이가 피어나는 이팝나무 군락으로 유명한 다가공원이다.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뜻의 '천양정은 조선시대에 한량들이 활쏘기 연습을 위해 활터에 세운 것이다.전주천 `완산교`는 용머리 고개로 나가는 다리로 소금전이 있어 '소금전다리', '염전교'라고 불렸다. 1960년대가지 완산교 하류는 여성들의 임시 목욕 장소로 이용되어 밤에는 남성금지구역이었다.매곡교는 남문시장과 연결된 다리로 맷골로 가는 다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곡교 아래에는 우시장이 열려 '쇠전다리'로 불렸으며 다리 주변에 담뱃대 장수들이 즐비해 연죽교 또는 '설대전다리'라고도 불렸다.전주사범학교 앨범에 수록된 1957년 전주천 다리인 완산교와 매곡교 모습.
사진은 전주남문시장 주변의 전주천이다.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품을 수 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런 역사의 문화가 살아있는 곳. 천년 고도 전주를 만나보는 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