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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몽심재 고택

2023년 2월 24일

남원 몽심재 고택은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집으로  송암 박문수(시호 충현공) 후손인 박연당(1753∼1830)이 세웠다고 한다.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서쪽 기슭 주변에 넓은 들이 있으며 마을을 형성하는 집들은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곳에 있는 몽심재를 답사한다.

 

 

마을을 거쳐 작은 개울을 끼고 난 길을 가면 돌각담 사이에 솟을대문이 우뚝 선 대문채가 나온다. 대문 서쪽 칸에는 마루를 깔았고 동쪽에는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이 부설되어 있다.
대문간채 동편에는 반듯한 연당(蓮堂)이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그 북쪽에는 축대를 높이 쌓은 대 위에 건립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이다.
대문간을  들어가 우측으로는 집체만한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음각된 '存心臺(존심대)'라는 글귀는 바위가 단순한 정원석이 아니라 마음이 터 잡은 곳이었음을 알려 준다. '存心臺'와 나란히 음각된 '淸窩(청와, 맑은 집)'라는 글귀는 군자가 사는 집을 뜻하는 것이다.
사랑채의 서쪽부터 4칸은 방이고 다섯째칸은 마루방이며, 둘째칸에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셋째와 넷째칸에서 기둥 밖으로 쪽마루를 연장시킨 것이 특이하다.
셋째칸에는 `몽심재`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기둥은 팔각형으로 다듬었다.
사랑채 앞마당.
사랑채의 동쪽에는 3칸의 중문채가 있는데 가운데칸에 문이 달려있고, 문 앞에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높은 터전에 ㄷ자 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안채의 정면이 6칸인데 안방은 서쪽에서 셋째 칸에 있다. 단칸 규모인데 그로부터 서쪽의 두 칸은 부엌이다. 부엌의 남쪽 칸은 방이다.
남쪽에 단칸의 방이 있는데 동편 날개에 해당한다. 그 다음 칸은 아궁이가 있는 아래층과 다락처럼 구성한 이층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끝 아래에 난간이 있어 매우 독특한 구조를 보이는 집이라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 서쪽으로는 부속건물들이 돌각담 가까이에 늘어서 있다.
안채 서쪽의 모습.
안채뒷뜰.
안채 서쪽부분과 우측으로 부속건물들이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다.
안채에서 본 사랑채 뒷모습.
몽심재의 돌담
몽심재 우측으로 죽산박씨 종가 가 있다.
죽산 박씨가 남원에 들어온 것은 박문수의 손자인 박자량(朴子良) 때다. 한성 판윤으로 있던 박자량은 이방원이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 전라 관찰사로 좌천되어 내려왔다가, 처가(남원 양씨)가 있던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초리에 눌러앉았다.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죽산 박씨는 현재의 수지면 호곡리로 집단 이주하여 죽산 박씨 씨족 마을을 이루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박문수의 불천위(큰 공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가 모셔진 사당이다. 몽심재를 세운 이는 박문수의 16대손인 연당 박동식(蓮堂 朴東式, 1763~183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