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해상케이블카로 목포의 풍경을 즐긴 뒤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으로 유명한 목포 옛 도심으로 향한다. 대의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 거류지로 그 당시 건물과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중 목포근대역사관 1. 2관을 관람한 후 북항승강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정이다.
목포 고하도승강장을 출발한 케이블카는 또 다시 풍광을 선사하며 바다를 건너 유달산승강장에서 하차를 한 후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향한다.유달산에 일제 강점기에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가 있다. 1909년 설치되었는데 지금은 유달산공원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포탄 없이 포구에 화약과 신문지를 넣고 쏘아 굉음과 함께 목포 상공에 휴지가 흩어지면 시민들에겐 "오포 텄다. 점심 먹자"라는 신호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말기 일본이 전쟁수행을 위한 공출로 오포를 걷어가 버렸고 지금의 오포대는 1988년 12월 다시 복원한 것이다.오포대에서 바라본 목포시의 전경.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 등장하는 삼학도가 보인다.목포 중심 시가지의 모습.원도심에는 조선시대 목포진부터 근대의 관공서·주거·상업시설 등 역사문화자원이 밀집해있다. 항일운동 등 일제강점기 당시 민중의 저항이 펼쳐진 공간이자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붕없는 박물관'으로도 불리는 곳이다.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노래비. ‘목포의 눈물’은 나라 잃은 설움과 이별의 아픔을 느끼던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고,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목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이순신 장군 동상'유달산 정기'라는 암각비. 유달산은 영달산이라고도 불린다.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신비한 에너지가 모여있다는 말이란다.노적봉은 충무공 이순신의 일화가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이 봉우리에 노적(짚과 섶)을 덮어 멀리서 보면 마치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해상에서 이를 본 왜적이 ‘저렇게 많은 군량미를 뒀으니 군사는 얼마나 많겠는가’ 생각하게 하여 지레 도망치게 하려는 작전이었다고 한다. 노적봉에서 바다 방향으로는 탁 트여 있기에, 먼바다에선 정말 산더미처럼 쌓인 군량미로 보였을 것 같다.노적봉 바로 옆에는 자식을 많이 낳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여자나무도 있다. 팽나무의 뿌리가 다시 줄기로 자란 곳으로 그 형상이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노적봉에서 우측으로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목포근대역사관이 나온다. `목포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전시관으로, 목포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대한제국 개항기에 설립한 근대 일본식 건물로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영사관)은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유명하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까지이며, 1관 및 2관 관람료는 2,000원이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관이다.목포는 개항 이후 서구식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고, 이곳에서는 그 당시 목포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유물과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어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다.일제강점기와 목포항 개항 시절의 목포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현재 근대역사관 1관에는 근대를 대표하던 도시였던 목포에 관한 모든 것을 돌아 볼 수 있도록 1, 2층으로 나누어 총 7개의 주제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일제강점기에 육지면을 처음 재배한 곳이 고하도였다. 1904년 목포 주재 일본영사에 의해 시작됐다.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의 기지였던 고하도에 일제에 의해 목화씨가 뿌려진 것이다. 목화는 쌀, 소금과 함께 우리 민족 수탈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1945년 이전 일본 영사관에는 총9개의 벽난로가 있던 것으로 추정한다.목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형무소, 목포경찰서 등이 설치되어 억압을 받았으나, 3.1만세운동, 청년운동, 부두노동자운동, 신간회운동 등으로 항거한 역사적인 고장이다.근대도시 목포는 1897년 개항 후 기독교와 천주교 그리고 일본 불교인 동본원사가 전파 되었고 일본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공립심상소학교, 목포여자중학교, 조선인을 위한 문태중학교도 개교하여 종교,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문물이 전파된다.근대역사관에는 과거 개항장으로 번성하였던 목폭의 시간을 잘 담고 있다목포근대역사관의 체험코너로, 1919년 4월 8일만세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의 교복과 모자, 안경 등 다양한 소품이 전시되어 관람객이 지접 만세운동을 체험하는 장소다.목포근대역사관1관 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일제강점기에 토지 수탈, 식량 수탈, 사람 수탈은 결코 없었다"라는 궤변으로 일삼는 일본정부 가 떠올라 가뜩이나 나라꼴이 엉망인 현재의 사항이 가슴을 짖누르는 기분이다.근대역사관 1관 뒤에는 일본이 전쟁준비를 한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방공호가 있다. 사진은 구 목포부청 서고다.방공호는 높이와 폭이 2미터 가량, 길이는 82미터로 안쪽에 굴을 파기위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해 놓았다.근대역사관 2관은 근대 역사관 1관에서 약 300m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921년에 건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건축물이다.근대역사관 2관에서는 일제의 만행을 역사적 사실로 보여 준다. 1층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과 역할, 조선인에 대한 횡포와 그에 따른 저항, 해방 후 조선해안경비대와 해군에서 사용한 사진 등을 전시했다.일제 침략사진을 비롯하여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치열한 구국 운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사진자료 등 꼭 알아야 할 전시물이 많이 전시되고 있다.1943년 일본은 노무자와 징병된 한국인들이 도망가지못하게 옷을 벗겼다. 나체로 있는 사람등이 미군이 보호하고 있다.목포근대역사관에서 일제 침략과 수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실증적 유적으로 독립운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물을 볼 수 있었다.목포해상케이블카 북항승강장으로 가기위해 유달산승강장으로 다시 간다.유달산 기암괴석과 목포 시내 전체를 조망하는 목포해상케이블카는 북항승강장으로 향한다.육지와 섬, 바다와 산을 잇는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모든 케이블카의 장점을 다 모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전남 목포는 풍부한 해양 자원과 근대문화유산이 어우러진 항구 도시로, 바다 풍경과 함께 문화·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