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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행

지리산역사문화관

2025년 3월 29일

구례 화엄사로 들어가는 곳에 위치한 지리산역사문화관을 찾아본다. 지리산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지리산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와 영상 자료를 통해 깊이 있는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으며, 등산객들에게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용시간은 09시 30분 ~ 17시 30분이며, 성인기준 2,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지리산 야생화정원은 지리산역사문화관 일원 2만2000㎡ 부지를 지리산에 자생하는 야생화로 정원을 꾸미고, 암벽 등반 등 각종 체험시설을 설치하였다.
지리산역사문화관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리산역사문화관은 역사와 문화, 설화 등이 담긴 기획전시동인 '강따라', 상설전시동인 '산따라', 체험전시동 '길따라' 등 모두 3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동선 안내 방향으로 기획전시동으로 발길을 옮긴다
제1관 기획전시동은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소통의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전시실은 지리산 주변의 마을 역사를 전시하여 놓았다.
구례의 옛 모습을 재현하는 기획사진전을 선보인다. 주민 일상의 삶을 나타낸 스토리를 담아 '함께 즐기고, 함께 일하고'라는 콘셉트로 옛 혼례, 품앗이, 울력, 화전놀이, 장터씨름, 약수제 등 모습과 50년대 학교 교육 및 옛 농업활동 사진 등 다양하게 구례의 옛 사진들이 전시했다.
그때 그 시절 추억을 회상할 체험용 소품으로 광주리, 키, 작두펌프, 물레, 절구통, 재봉틀, 호롱불 등을 함께 전시대에 배치하고, 방문객들이 실루엣을 따라 재밌는 포즈를 취하며 직접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포토존을 설치하여 다양한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추억의 레트로(복고) 감성을 자아낼 수 있는 학교교실 및 교복체험 공간과 통학버스를 연상한 그 옛날 여객버스를 연출하여 소소했던 일상, 학창시절과 놀이의 모습을 담아낸 과거사진 속에서 함께했던 순간들을 다시 느껴보고 회상하면서 또 하나의 추억을 담아가는 전시회로 구성했다.
다목적홀은 구례군에 속한 지리산과 마을을 사진으로 전시하여 놓았다.
화엄사 4사자 4층석탑에서 이곳 구례사람들의 모임 사진이다.
봄철 모내기 작업.
2관 상설전시동은 민족영산의힘과 호국충절정신을 만나는 전시공간으로, 산따라 지리산 및 구례의 역사, 동학혁명, 정유재란과 석주관 전투 등을 볼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 소개에서는 1코스는 구례 매천사를 거쳐 천개의 향나무 숲(민간정원)를 경유하는 12.4㎞ 구간, 2코스는 구례 운조루와 용호정을 경유하는 14㎞ 구간, 3코스는 화엄사와 연기암을 경유하는 10.6㎞ 구간으로 지리산 둘레길의 제18구간 등 둘레길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전라남도 북동단에 있는 구례군은 동쪽으로는 하동과 접하여 경상남도와 도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남원과 접하여 전라북도와 도계를 이룬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속하여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자연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활약, 구례의 동학 농민혁명과 한말의병, 토지면 피아골 연곡사에서 화엄사, 산동면 산수유마을까지 역사를 알아보는 전시실이다.
금계일기는 노인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명나라로 탈출한 뒤 귀국할 때까지 일본과 중국의 풍물을 기록한 것이다.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자리한 석주관성을 중심으로 정유재란 당시 목숨을 걸고 벌인 구례 사람들의 항일 투쟁사다. 구례 현민을 이끈 구례 의병장은 왕득인‧의성 부자와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 7의사다.
1907년 고광순 의병장이 '不遠復' 세 글자를 수놓아 만든 불원복 태극기는 지금의 표준 태극기와 괘의 위치와 태극이 많이 다르지만 '머지않아 돌아오리라'라는 국권 회복을 향한 강한 신념이 담겨 있다.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거점을 마련하고 장기항전 태세를 구축한 고광순 의병장은 1907년 10월 16일 새벽, 연곡사를 포위한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지만 워낙 전력 차이가 커 의병장 고광순과 부장 고제량 이하 의병이 연곡사 일대에서 장렬히 전사 순국했다.
구례군에 있는 사찰을 통해 불교 문화를 알 수 있는 전시실.
지리산은 누가 뭐래도 한국 최고의 명산 반열에 속한다. 일부 풍수지리전문가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의 안산(앞산의 개념)이 백두산이고, 백두산의 안산이 지리산이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만큼 지리산은 명산이다.
고 박경현의사는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 출신의 학자로 1919년 3월 23일 구례군 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같은 마을의 박해운, 황위현 등과 함께 시위계획을 논의하고 태극기를 준비하여 장날 구례읍 장터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는 6·25전쟁 때 완파된 지리산 노고단 수양관을 대체하기 위해 해발 1243m 왕시루봉에 1962년 조성됐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국, 영국, 호주, 등 각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1961년 여름부터 노고단 휴양촌의 연장으로 왕시루봉 일대에 다양한 형태의 교회와 주택 12채를 건축했다.
지리산은 문화와 예술을 품은 산으로 지리산에 대한 각종 책들을 볼 수 있다.
차를 달여 마실 때의 예의범절을 설명하였다.
828년 사신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의 씨앗을 가져왔고 임금의 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차의 씨앗을 심었다고 전해지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구례 화엄사 입구의 장죽전이고 이곳을 구례 차 시배지라고 부른다.
3관 체험전시동은 교육·놀이·휴게가 있는 향유공간으로 가족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테마 체험관으로 구성돼 있다.
제3관에 조성된 지리산의 역사와 매천 황현선생 학문과 삶 등을 볼 수 있다.
황현 (黃玹,1855년 12월 11일 ~ 1910년 9월 7일)은 대한제국 조선 왕조 말기의 선비로 시인, 문장가, 역사가, 우국지사이며 대한민국 의 독립유공자다.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며 호는 매천(梅泉)이다. 사학자 황의돈 (黃義敦)은 그의 7촌 재종질이다. 그는 전라도 광양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전라도 함평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전라도 구례 에서 성장했다.
황현은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지내다가, 1910년 한일병합 조약 체결을 통탄하며 조약 체결 16일 후 구례군 자택에서 음독 자살했다.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絶命詩)`는 장지연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실렸고, 이는 경남일보 필화사건 의 원인이 됐다.
구례 만수동 구안실은(현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 1886년부터 황현이 16년 동안 생활하며 여러 책을 집필했던 곳이다.
1907년 나라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구례 피아골 연곡사에서 의병장 고광순이 의병과 함께 처절하게 싸우다 순절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매천 황현은 단숨에 연곡사로 달려가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고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남겼다. 비록 의병을 일으키지도, 은거하며 후일을 도모하지도 못했지만 후세들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도록 `매천야록` `오하기문`등 당시 상황을 기록한 문서들을 남겼다.
매천 황현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자결로써 항거하였다. 매천이 자결 하기전 쓴 절명시(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나라는 이미 사라졌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 돌이켜보니 문자나 안다는 사람 인간되기 어렵구나)
어린이체험관은 교육과 놀이를 병행하는 체험 공간으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기면서 설화감상, 독서, 퍼즐 맞추기 등 자녀와 소통하며 즐겁게 힐링하는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화엄사 초입의 지리산역사문화관은 이름대로 지리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파란만장한 역사와 산에 기대 살아온 주민들의 전통과 지혜를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역사문화관 주변에는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자연생태 체험학습장' 등 지리산을 소개하는 전시·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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