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도 꽃을 틔워 ‘설중화’라는 별명을 가진 수선화를 담으러 서산의 한 고택으로 향했다.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유기방가옥`이다. 봄마다 고택 안팎을 소담스럽게 수놓는 수선화 덕택으로 먼 길을 달려본다.
오전 8시~오후 5시 운영하며, 입장료는 어른 기준 8000원이다.100년 고택을 두른 수선화 군락지는 총 3구역으로 나뉘며 개화 시기에 차이가 있다. 볕이 잘 드는 1~2구역은 3월 말부터 개화를 시작해 대개 4월 초순이면 만개한 풍경을 볼 수 있다. 4월부터는 3구역이 개화하기 시작해 가장 늦게까지 꽃을 볼 수 있단다. 다만 기상이변으로 구체적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유기방가옥은 여미리 북서쪽 ‘큰말’ 마을의 산을 등진 명당자리에 있다. 1919년 서령 유씨 집안에서 지었고, 현재 후손인 유기방씨(76)가 고택에 살면서 관리하고 있다.입구 좌측 해태상 뒤로 수선화그네가 동심을 자극한다.초가집 사주보는집 우측으로 노란 수선화 길을 걸으며 봄의 정취를 즐겨 보기로 한다.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의 위풍 당당한 모습이다. 317년 전 제주도에서 옮겨다 심은 비자나무다. 높이는 20m이고, 성인 가슴높이에서 측정한 둘레는 4.5m이다. 비자나무 가 중부지방 이북에서 이처럼 장수하는 고목은 흔치 않아, 산림학적 가치도 매우 높단다.비자나무에서 동산방향으로 맨발걷기 체험을 위해 깔아놓은 산책길은 아직 수선화가 피지 않았으나 푸른 화초밭을 거닐 수 있었 그런대로 생동감이 있는 곳이다.고택 이름표기에 유기그릇을 만드는 방으로 착각을 하였는데, 유기방가옥은 유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 마당을 가운데 둔 ‘ㅁ자형’ 구조로, 토담이 집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유기방고택 앞 하트연못으로 수선화를 다 심으면 멎진 사진 촬영 장소가 되겠다.100년이 더 된 고택의 문지방을 넘어 집안을 살펴본다. 아직도 사람이 사는 고택에서는 온기가 돌고 생기가 흐르는 곳이다.원래 400년 전 정종대왕 넷째 아들 후손이 살던 터인데 조부가 새롭게 집을 지었단다. 누각형 대문에 여미헌(餘美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문간채 건물만 1988년 새롭게 지은 것이다.누각형 대문 지붕 뒷 모습.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은 조선후기 전통 양반가옥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집 안쪽에는 유씨의 할머니가 생활하던 안채가 펼쳐진다. 부엌과 방, 대청, 건넌방으로 이어지는 ‘一자형’ 안채다.안채 왼쪽은 일하는 사람들이 머물던 행랑채는 미스터션샤인 이병헌, 직장의 신 김혜수 가 쉼방으로 사용했던 곳이다.행랑채 옆문을 통해 바깥을 본 모습이다.행랑채에서 바라본 안채의 전경이다. 안채 왼쪽에 행랑채,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마당을 가운데 둔 'ㅁ 자형'이다. 덕분에 크기가 상당한 가옥인데도 아늑한 인상이다.안채의 부엌을 통해 뒷마당으로 가본다.뒷마당의 수선화와 장독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대청마루 벽에는 할머니부터 장남과 집안에 공을 세운 가족들의 사진이 걸렸다. 창밖으로는 뒷마당의 수선화와 장독대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다.오른쪽에는 유씨의 할아버지가 머물던 사랑채가 있다. 이곳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종의 최측근인 궁내부 대신 이정문의 집 배경이 되기도 했다.사랑채로 들어가는 문간채유기방 사랑채사랑채마루에서 문간채를 바라본 모습이다.남촌서유영공기상공적비.가옥 우측 뒤로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면서 걸어보자.봄꽃 하면 으레 동백꽃과 매화, 개나리, 벚꽃이 떠오르지만, 꽃밭과 고택을 구분 짓는 'U 자형' 토담도 수선화의 동양적인 매력을 더한다.고택의 뒷산엔 소나무가 우거졌고, 그 밑으로 수선화를 피워냈다. 이래서 수년전부터 봄이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나 보다.수선화의 영어 이름은 나르시서스(narcissus)다. 자연스레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나르키소스. 호수에 비친 자신과 사랑에 빠져 목숨을 잃은 나르키소스가 꽃으로 피어난 것이 바로 수선화다.수많은 요정의 마음을 흔든 소년을 닮아 수선화는 영롱한 빛깔과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언뜻 이국의 꽃으로 느껴지지만, 옛 선비들의 문인화에서도 수선화를 흔히 만난다.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 시절 수선화를 보고 단번에 매혹됐다. 그는 ‘완당집’에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며 "그 꽃이 정월 그믐부터 2월 초에 피어 3월에 이르면 산과 들, 밭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하다"라고 적었다.고택 바로 뒤 언덕과 산자락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꽃밭에 놓인 의자가 포토 존으로 인기다. 수선화 언덕에서 나르키소스 못지않은 인생 사진을 건지는 장소다.봄에는 수선화와 청벚꽃이,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샤스타데이지, 노란 장미, 배롱나무 꽃, 코스모스가 고택 주변을 수놓는다. 겨울에는 뒷동산의 소나무에 눈꽃이 피어나 고택의 정취를 더하니 꼭 수선화 꽃이 만발할때만 방문하지 말고 생각나면 찾아와 즐기고 갈 유기방 고택이다.유기방고택 주변에는 달빛 미술관 여미리에는 최근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달빛예촌’이 형성됐다. 개성 있는 갤러리와 카페들이 곳곳에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서산 여미리 석불입상'으로, 1970년대에 약 1km 떨어진 용장천에서 발견되어 이곳으로 옮겨졌다.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냇가에서 5km 상류 지역에 두 구의 불상이 있었다고 하니, 그중 하나가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