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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육영수 생가

2024년 11월 23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는 구읍이라고 불리는 전통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이 ‘향수길’로 바뀔 만큼 ‘향수’의 시인 정지용 생가가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특별한 마을이다. 

 

 

 

한번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생가주변은 주차를 할 곳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옥천문화체험관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먼저 육영수 생가로 간다.
육영수 생가는 1600년대 김정승 이후 정승들이 살던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계급의 전형적인 양식의 건축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곳으로 삼정승의 집이라 불리던 가옥을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씨가 민정승의 자손 민대감에게서 1920년 매입하였다고 한다.
아래채의 차고와 연결된 솟을대문 오른편으로 마방이다.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씨 후손에게서 사들여 고쳐 지었다. 후원과 과수원을 합치면 2만6400㎡이고, 전각들이 놓인 구역의 대지 만 1만㎡이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대문, 곳간채, 사당 등 건물 13채와 연못, 연자방아, 뒤주가 있다.
곳간채에서 바라본 전경으로 사랑채와 연못뒤로 연당사랑이 보인다.
사랑채 왼쪽에 건너채가 있고,
사랑채엔 육 여사의 영정사진이 있다.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으로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일 조총련계 문세광이 쏜 총을 맞고 운명했다.  99칸 대궐 같은 기와집으로 초가집의 정지용 생가와는 비교가 안 된다. 육 여사는 1925년 이곳에서 태어나 1950년 육군 소령 박정희와 결혼할 때까지 여기에서 살았다. 물론 서울에서 배화여고를 다닌 것을 빼고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사랑채 우측으로 지형을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의 연못 모양이다. 다년생 수생식물인 수련(홍련,백련)과 창포가 자생하고 있다. 연못뒤로 연당사랑이 보인다.
사랑채 우측뒤로 중문채가 있으며,
중문채 사이의 중문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집터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안채에서 왼쪽으로 행랑, 오른편으로 연당사랑, 뒤로 돌아 별당, 후원에 사당과 정자가 있다.
안채 옆으로 연자방아와 곳간이 있다.
아래채의 대문간에 부속되어 있는 차고로, 육영수 여사의 부친 육종관은 자동차에도 관심이 있어 자동차가 많지않은 시절에 이미 외국산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4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한다.
ㄱ자형의 구조로 전면에 툇마루가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안채평면유형을 따른 아래채.
육 여사의 방은 안채 앞쪽에선 보이지 않는다. 안채 뒷편 대숲 옆 두어평 되는 아주 작은 방이다. 도자기와 재봉틀, 다리미, 앉아 공부하는 책상, 이불 등이 있고,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늘 이웃이 있다)’, ‘중용지덕’ 교훈이 걸려 있다. 충북 최고 부잣집 딸 방 치곤 너무 작아 소박한 마음이 엿보인다.
박정희 소령이 군복을 입은 채 약혼 사진을 찍은 것이 이채롭다.
특이한 것은 결혼사진에 육 여사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육 여사의 아버지는 이들의 결혼을 끝까지 반대했고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 방에는 힘겨웠던 육-박 부부 사진이 놓여있고, 안채 외벽엔 생전의 활동 사진이 걸려있다.
위채로 들어가는 중문. 그옆으로 석빙고와 사당이 보인다.
여름에 음식을 보관하기 위하여 땅속을 광처럼 파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덮어 씌웠던 것으로 일종의 냉장시설(석빙고)이다. 입구는 반원 형태로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크기이다.
사당
전형적인 ㅁ자형의 구조로 위채다. 교동가옥의 가장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간구성은 안채와 거의 유사하다.
동쪽에 외부에서 진입할 수 있는 협문을 따로 두고 있다.
정자 오른쪽에 또 뒤채가 자리 잡고 있으며 바깥겹집 사랑채만 하여도 누마루, 바깥 사랑방, 안 사랑방, 사랑채 안방, 대청, 광, 다락, 식객들이 거처하는 방, 사랑채 전용부엌 등 당시로서는 상류층의 규모 있는 살림집을 볼 수 있다. 육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는데도 왜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그분은 옛날 왕조시대 같으며 국모다운 처신을 했다’고 표현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분은 언제나 한복만 입고 사치를 몰랐으며 검소했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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