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천과 논산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발달한 천혜의 내륙항으로, 1930년대까지 금강 하구의 관문이었다. 강경장은 우리나라 3대 시장의 하나였으나, 1889년 군산항의 개항과 경부선·호남선·군산선의 개통으로 상권이 쇠퇴했다. 지금의 강경은 옛 영화의 언저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몇몇 고층아파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낮은 건물이 논산평야와 높이를 같이하고 있다. 깊은 맛과 향을 풍기는 젓갈처럼 오랜 시간 곰삭은 풍경이다. 최초 신사참배 거부, 노동운동과 침례교 선교 발원지를 담은 근대문화와 옥녀봉을 중심으로 옛 풍경 속을 걸어 본다.
옛 서창리 포구옆에 옥녀봉 공영주차장이다.공원주변 마을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쉼터.금강과 강경천이 만나는 곳엔 일제강점기 때인 1924년에 만들어진 갑문이 있다.강경갑문은 3중문 구조로, 제1문과 제2문은 같은 기단부에 인접해 설치됐고, 제3문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다. 당시 갑문은 강경과 인천에만 있었다. 갑문을 통해 강경읍내 한복판까지 해산물을 실은 배가 들어왔다. 주변으로 젓갈시장이 형성됐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생기고 물길이 막히면서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됐고 갑문은 기능을 상실했다.옥녀봉공영주차장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 오면 공원의 넓은 공터가 나온다. 선녀가 놀던 옥녀봉은 이제 주민들의 휴식터가 됐다. 강경 사람들에게 이곳은 추억의 장소이자 이 지역 흥망성쇠의 애환이 깃든 곳이고 산책과 데이트, 가족 소풍의 장소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위한 운동기구와 놀이터가 있고 옥녀봉 전설비와 순국열녀 안순득 여사 추모비, 강경 항일독립만세운동 기념비 등이 있다. 몇개의 시비와 함께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고 금강을 바라보는 송재정이 있다.강경항일만세운동기념비, 안순득여사추모비.눈여겨볼 곳은 옥녀봉 바로 아래 강경침례교회다. 우리나라 침례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당시 미국 보스턴의 부유한 가문의 딸이었던 엘라 싱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가장 선교가 덜 된 나라에 자신의 유산을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지를 받들어 조성한 곳이 강경침례교회다.한국 첫 침례교 발상지 강경침례교회는 석조물이 아닌 'ㄱ'자형 초가집이였다.중요하건 이 교회에서 신사 참배를 최초로 거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또 학교에서 조선종독부로부터 조선 역사를 그만 가르치고 일본 역사를 가르쳐라는 명을 받았는데 학생 8명이 거부해 이 학교가 폐학되는 아픔을 겪었다.송재정송재정에서 바라본 강경침례교회 전경.옥녀봉구멍가게옥녀봉은 강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 43m. ‘봉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정도의 높이지만, 그래도 한때 ‘강경산’이라고 부르며 산 대접을 해줬단다. 옥녀봉 정상의 느티나무 옆에 서면 야트막한 동산 정도의 높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탁 터지는 곳이다.옥녀봉정상에 오르기전 해조문이 있는 바위에 가 본다.해조문은 강경포구를 이용하던 주민들에게 편의를 주기위해, 포구 뒤편 옥녀봉 암벽면에 1860년에 조각한 기록문이다.병풍바위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강경포구를 이용하는 어민들에게 밀물, 썰물의 시간, 현상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한 암각화라 한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의 게시판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해조문이라는데 한문으로 새겨진 것으로, 과연 이것을 읽을 수 있는 어부가 몇명이나 있었는지 의문이다.옥녀봉정상 43m의 낮은 봉우리치고는 시야가 무척 넓다. 강경천과 논산천, 금강이 만나고 강 건너 논강평야가 펼쳐지는 풍경은 꽤 높은 산에 올라온 느낌을 준다. 산은 돌산으로 곳곳에 기묘한 바위들이 있어 볼거리 또한 다양하다.'노을 맛집', '노을 명소'라고 불리는 강경 옥녀봉에서 내려보는 금강과 넓은 들판이 어우러진 수채화 같은 풍경은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정상에 있는 곰바위는 새끼곰이 어미를 기다리다 돌이 됐다 해 지어진 이름이다.강경 옥녀봉에서 내려다본 금강이 논산평야를 끼고 휘돌고 있다. `소금`에 충남 강경의 옥녀봉과 금강을 이렇게 옮겨 적었다. “옥녀봉에 있는 선명우의 소금집에서 내려다보는 금강은 정말 비단을 깔아 놓은 듯 매끄럽고 유장했다. 계룡산의 허리 짬을 파고 돌다가 공주 부여의 옛꿈을 쓰다듬고 내려오는 강물이었다. 흐르기 때문에 강인 것인지, 강이기 때문에 흐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멀리 계룡산의 연접한 줄기줄기도 머물지 않고 마냥 흐르고 흘렀다. 흐르고 머무는 것이 자연이려니와, 흐르고 머무는 것이 곧 사람이었다.”(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에서)강경포구의 배들은 역사의 물결 따라 흘러갔어도 금강은 서해로의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딸기 하우스 너머로 평야와 맞닿은 하늘은 옥녀봉의 멋을 더해준다.두꺼비바위옥녀봉 밑에 `소금` 주인공 선명우의 살림집이 있다. 방 2칸짜리에 시멘트벽과 바닥, 슬레이트 지붕. 초라한 곳이였는데, 리모델링으로 옛스런 모습이 사라졌다. 이곳에서 주인공이 자아를 회복한다.옥녀봉 밑으로 낮은 건물이 올망졸망 자리 잡은 강경읍내 풍경은 1960~70년대로 거슬러 오른 듯하다. 읍내 중심부에서 반경 1km 이내에 강경의 볼거리가 모두 몰려 있어 자박자박 걸어 한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옥녀봉에서 골목길을 내려오면 1924년 건립된 강경성결교회는 국내 유일의 정사각형 기와집 교회다. 내부는 당시 유교적 생활 습관에 따라 기역자로 조성됐다. 현재 국가유산청이 해체, 수리 중이어서 관람할 수는 없다.강경성결교회 주변에는 ‘구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관사(옥녀봉 예술촌)’도 있다. 예술촌은 현재 공사 중이다.곰삭은 젓갈처럼 은근한 감칠맛이 있는 곳. 평범한 줄 알았던 골목에 전설이 있고 역사가 있고 자랑스런 사람들이 있다. 한층 시원해진 바람결을 따라 차차 느려지는 물길을 따라 강경을 걸어보자.개화기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세트장처럼 모인 근대역사문화촌은 강경의 대표적인 포토존으로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근대역사문화촌 에서 길을 따라 가다보니 강경 옛 연수당 건재 약방이 보인다. 1923년 세워진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으로 100년 가까운 세월에도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연수당 건재 약방 부근에 `성 김대건 신부 첫 사목성지`(천주교, 성공회 등의 종교에서, 사제가 신도를 통솔.지도하여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최초신사참배거부 선도기념비` 1918년 10월 성결교단에서 파송한 정달성 전도사가 한옥 2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교회로 신사참배 거부 사건과 일본 역사 교육 거부 사건을 선도했다. 영국 출신 존 토마스 선교사가 옥녀봉에서 만세운동을 지켜보다가 일본 경찰에게 각목으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토마스는 해당 사건이 외교 문제로 번진 뒤 일본 측으로부터 받은 위자료를 교회 예배당 건립 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옥녀봉에서 금강 쪽으로 내려서면 강경북옥공원에 강경산소금문학관이 자리한다. 이곳은 박범신 작가가 2011년 내려온 뒤 쓴 장편 소설 ‘소금’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지하 1층은 강경의 역사·문화 전시공간, 지상 1층은 박범신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지상 2층에는 논산 지역 작가를 위한 전시공간과 체험 공방 등이 갖춰졌다.강경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과거를 돌아보는 역사의 무대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인생살이에 대한 사유를 선사할지 모른다. 강경은 옛 영광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금강이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숨은 여행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