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해변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드넓은 백사장이 아름다운 곳으로, 주변에는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등 역사적 인물들의 별장이 모여있어 근대사 공부에 도움이 되는 여행지다. 그 중 한 곳이 이승만 별장으로 불리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이다.
화진포교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이승만 별장의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매표소에서 3000원을 내고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까지 관람할 입장권을 샀다. 3개의 별장, 이 존재만으로 이곳의 비경을 짐작할 수 있다. 주차비는 무료다.대한민국의 1·2·3대 대통령. 해방 전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광복 후 우익 민주진영 지도자로 정부 수립에 앞장섰고, 1948년 제헌국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데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개헌을 거듭하며 4선을 했으나,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 4.19혁명이 일어난다.1960년 3월 15일의 정·부통령 선거를 규탄하는 4.19 학생들의 시위가 경찰 발포에 의해 많은 인명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태로 전개됐다. 부정선거의 책임을 통감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를 한다.호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채광이 좋아 환하고 밝은 분위기이다. 단층 슬라브 형태인데, 1954~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한 별장으로, 지금은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내부는 침실과 집무실로 쓰이던 방 두 개, 거실로 구분돼 있고 기증받은 물품들도 있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거하던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실내에는 침실과 집무실, 거실이 옛 모습대로 복원돼 있고 벽과 유리장에는 학위증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응접실에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를 본뜬 모형이 앉아 있다.이화장으로부터 기증받은 전시 유물들침실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낡은 침대 위로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집무실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주변의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호수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화진포 호수를 사이에 두고 두 거물의 별장이 마주보고 있다. 건너편 산 중턱에 김일성 별장 꼭대기 부분이 살짝 드러나 있다.별장을 나와 계단을 조금 걸어 오르면 이승만 기념관에 닿는다.실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사용하던 별장은 현재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건물이 있는 위치에 있었다. 2007년에 고성군이 육군복지단과 관사로 사용되던 건물을 보수하고 서울 이화장으로부터 자료를 추가로 기증 받아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해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이승만 대통령이 걸어온 발자취와 업적을 비롯해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와 하와이 망명까지 역사적인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가 직접 쓴 친필휘호와 의복, 소품들도 전시되어 있다.놀라운 사실은 기념관에는 이승만 '위업'만 기록하고 있을 뿐, '과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쓰고 싶은 내용만 썼다고나 할까.별장 주변에는 화진포설화 공원이 있다.먼 옛날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이화진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해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다.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려 했다. 이화진은 시주대신 소똥을 퍼줬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에게 건내며 드리며 "우리 아버님이 큰 죄를 용서해 주라"고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고총산까지 올라갔다. 며느리가 따라 오는 것을 보고 "그대는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그 때 하늘에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이 살던 집과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로 변했다. 화진포라는 이름은 이 설화속의 이화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화진포 호수에는 이화진의 며느리 동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