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로를 달리던 버스 타이어가 빵꾸가 나 조과장을 도와 타어를 교체 하였던 기억이 아스란히 떠오르는 청춘.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 도착한 구천동계곡 한자락을 차지하고 탠트를 치며, 알콜반화로 밥을 하던 그시절 부터 줄기차게 다녔던 덕유산이다. 이제는 곤도라를 타고 하이힐을 신은 분들이 오르는 덕유산 향적봉이다.
구천동주차장은 무료다. 근력의 한계가 오기전까지는 오름과 내림의 조화가 있어야 제 맛인 법, 바닥부터 차근차근 오르는 재미를 산행을 한 사람만 안다. 산행은 구천동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백련사, 향적봉(1614m)을 찍고 오수자굴로 하산하는 덕유산 산행의 가장 인기 있는 탐방코스다.구천동주차장에서 백련사까지는 6㎞ 남짓한 산책길이다.백련사까지 가는 동안 ‘구천동 33경’ 중 17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첫 번째로 만나는 것은 월하탄이다. 선녀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며 내려오듯, 두줄기 폭포수가 기암을 타고 쏟아져 내려 푸른 담소를 이루는 제15경 `월하탄`을 바라본다.우측으로 새롭게 구천동 어사길을 만들어 놓았다. 옛 선인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탐방로다. 조선 후기 어사 박문수(1691∼1756)가 구천동을 찾아 주민에게 횡포를 부리는 자들을 벌하고 사람의 도리를 바로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져 이런 이름을 붙였다. 어사길은 원래 계곡을 따라 집을 짓고 살던 주민들이 왕래하던 길이었다.하산시 백련사에서 주차장까지 어사길을 이용하기로 하고, 백련사까지 포장된 도로를 따라 가기로 한다.포장도로로는 하루 5회 백련사까지 전기버스가 운행한다. 교통약자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덕유산국립공원에서 운행하는 버스다. 약 25분 만에 아주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중간에 타거나 내릴 수 없다. 계곡의 참맛을 느끼려면 당연히 걸어야 한다.인월담갈림길이다. 우측 계곡을 건너 칠봉을 경유해 향적봉으로 오르는 코스다.16경 인월담 위로는 철제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어사길에서 드물게 하늘이 트이는 곳이다. 반석을 흘러내리는 폭포와 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곳으로 신라 때 인월보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라 전해진다.호탄암에서 안심대까지 이어지는 1.1km 구간의 계곡 청류계는 푸르스름한 물빛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구천동 24경이다.24경 청류계를 지나 25경 안심대에 이르면 드디어 숲속 오솔길이 끝난다. 어둑한 숲길을 지났으니 이쯤이면 안심할 수 있다는 뜻일까.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관군에 쫓기다 한숨을 돌린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안심대에서 200여m 올라가면 26경 신양담이 나온다. 구천동 계곡에서 맑은 햇빛이 개울에 그대로 부서지는 거의 유일한 구간이다. 짧은 구간 볕을 쬐고 나면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이곳부터는 32경 백련사 경내로 접어든다. 거울같이 맑은 27경 명경담, 층암을 타고 쏟아지는 28경 구천폭포, 30경 연화폭을 거친 맑은 물이 담긴 29경 백련담을 지나고, 속세와의 연을 끊고 사바세계로 접어든다는 31경 이속대를 통과하면 가파른 경사에 층층이 자리 잡은 절간이 나타난다.구천폭포연화폭백련사는 무주구천동 계곡의 끝부분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 중의 하나다. 옛날에는 이 계곡에 14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모두 폐찰이 되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다.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은거해 있었던 이곳에 하얀 백련꽃이 피어나 그 위에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 했다고 전해진다.매월당 부도.31경 이속대.절 입구에 좌측으로 오수자굴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하산하게 된다.구천동 33경 향적봉 아래에 자리 잡은 32경 백련사. 신라시대 고찰이라는 역사에 비해 규모가 소박하다.향적봉 가는 길은 대웅전 오른쪽으로 나 있다.본격적인 등산 코스다.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는 2.5km거리다. 코스의 길이는 비교적 짧지만 끝없는 오르막의 연속이다.허벅지가 팍팍해지고 숨이 턱 아래까지 올라온다.삐죽삐죽 뻗은 주목나무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고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다. 유난히 덕유산정에서 긴 세월 서 있는 모습이 나무의 꼿꼿한 그 마음을 느끼게 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 간다는 주목이 지금 몇 년째 서 있는 걸까. 겨울이면 설국의 눈꽃이 얹혀 수정처럼 빛나는 멋진 상고대가 신비롭던 나무다.대피소와 향적봉갈림길에서 바로 향적봉으로 올라간다.대피소갈림길에서 200m 오르면 향적봉이다. 웬일인지 사람이 없다. 지리산과 설악산에 이은 남한 내륙 3위 고봉이다. 한글 옛체로 쓰인 ‘덕유산 향적봉 1614m’ 오리지널 표지석을 바라본다.표지석 뒤 바위에 올라가 본다. 설천봉에 중장비가 보인다. 상제루 쉼터가 화재로 전소되어 복구를 하는가 보다.기념사진을 남기려는 긴 줄에 2024년 12월에 38년 만에 정상표지석 한 개를 추가했다고 한다. ‘산이 크고 넓어 그 덕이 넉넉하므로 덕유산이라 한다’ 그 문자처럼 정상의 품까지도 넉넉하다.수려한 조망의 멋이 있는 산이 덕유산이다. 남으로 함양 백운산을 지나 지리산이 선계를 가르는 경계인양 경외감 넘치고, 동으로는 오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비롯해 많은 능선이 중첩되며 거친 파도 일렁이는 듯한 수묵화를 그려놓는다.남북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동서로 넘나드는 운해 역시 덕유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다.향적봉에서 빙둘러 산하를 가슴에 담은 후 대피소를 거쳐 중봉으로 향한다.중봉으로 가다보면 수백 년 된 주목과 다양한 아고산대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아고산대의 대표 수종인 구상나무와 주목이 섞여 있다. 아고산대란 저산대와 고산대의 사이를 말하며 해발 1,500~2,500m 위치이다.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고 맑은 날이 적어서 키 큰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없다. 침엽수가 주로 자라며 야생화도 많다.중봉정상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 발길에 흙이 무너져 내리는걸 방지하기 위해서`란다.중봉에서 향적봉을 바라본다.덕유평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눈앞에 펼쳐진 전망이 장쾌하고 압도적이다. 산줄기 사이로 나지막이 안개가 내려앉은 모습은 누군가가 붓으로 덧칠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파란 하늘을 그린 서양화와 먹으로 산줄기 그린 동양화가 하나의 캔버스에 펼쳐진 듯한 느낌이다.중봉은 오수자굴과 남덕유산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이다.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이제부터 산을 내려가는 자의 여유로움이다.다시한번 남덕유산 방향을 바라본다. 향적봉을 시작으로 중봉, 백암봉, 동엽령,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고봉의 능선 산행을 하던 지난날이 새삼 떠오른다.오수자굴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바람 소리와 새소리, 풀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등산의 묘미를 즐긴다.한참을 내려가니 계단이 나오며, 계단을 끝으로 오수자굴이 보인다.커다란 바위에 어찌 이런 구멍이 생겼나 신기할 따름이다. 오수자굴은 오수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득도했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은 오수자굴로 불린다.오수자굴탐방통제소 까지는 한적한 계곡길이지만 발에 걸리는 돌부리가 제법 매섭다. 다행히 휴대폰이 터지며 밧줄을 설치하여 등산길을 유도하고 있다.노란색 리본도 달아놓아 산행에 도움을 주고 있다.오수자굴 탐방통제소에 왔다. 우측으로 어사길 입구가 보인다.백련사 앞 구천동 어사길 4구간 입구다.어사길은 대체로 경사가 완만해 덕유산의 높이나 깊이에 비하면 한없이 순하고 아늑하다. 개울도 낙차가 크지 않아 웅장한 폭포 하나 없지만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때로는 우레 같고 때로는 잔잔한 선율처럼 숲속으로 여울진다.맑고 투명한 물을 거울에 비유한 27경 명경담이다.어사길 4구간에 이어서 안심대에서, 3구간 치유길, 2구간 청렴길, 1구간 숲나들이길을 따라 내려간다.구천동 어사길 수풀 중간에 김남관씨가 세운 불상이 놓여 있다. 9,000기를 세울 예정이었지만 20여 기로 그쳤다. 김남관씨는 구천동을 알리는데 일조를 했던 분이란다.이무기소나무연속되는 폭포 아래 깊고 푸른 물웅덩이가 형성된 19경 비파담(琵琶潭)이 연이어 나타난다. 아득한 옛날 구름을 타고 내려온 선녀들이 넓은 바위에 앉아 비파를 뜯으며 노닐던 곳이라는 비유를 담았다.맑은 물이 암반으로 미끄러지는 18경 청류동.소원성취의 문.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걷고, 부근의 높은 사찰을 향해 오르며 뚜벅뚜벅 자연 속에 들어간다. 고봉을 넘나들며 온몸이 뻐근했지만, 기분은 가뿐하다.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말하는 '혼산'으로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니 훌쩍 나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