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란정 한반도지형 그 물길을 따라 청령포에 왔다.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왠지 모를 아릿한 감정이 올라오는 이유는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의 한이 서려 있는 장소 이기 때문이다.
넓다란 주차장을 지나면 청령포전망대 가 나오며, 이곳에서 청령포로 들어가는 매표를 한다.주차장 한쪽에 가수 심수경씨가 부른 영월군민의 애창곡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아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 천리 바라보며 원한으로 삼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청령포 노래비 옆으로 단종이 마실 사약을 들고 왔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읊었다는 시비가 새겨져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발길 예놋다.몰아 치는 정치세력에 단종은 폐위되면서 유배된 곳, 어찌보면 이곳이 그를 격하게 받아드릴려고 이런 지형을 만들었나보다. 격정의 물결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 같은 육지 청령포를 만들었다. 이곳은 왠지 애잔하다. 강으로 막히고 깎아지른 험준한 암벽이 버티고 있는 고립무원의 땅, 이곳으로 유배된 단종의 애통함 때문일 게다.단종이 육지의 외로운 섬이라는 뜻으로 `육지고도`라고 했던 청령포, 그 통한의 섬에 닿는 데는 나룻배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배에서 내려 강변 자갈밭을 걸어 수십~수백년 된 거송들 사이로 단종이 머물던 어소가 나타난다.조선 제6대 왕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뺏기고 1457년 6월 청령포로 유배됐다. 그해 여름,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겨 강 건너로 처소를 옮길 때까지 두어 달 간 청령포에서 머물렀다. 그해 10월, 단종은 17살의 어린나이에 숨졌다. 영월 사람 엄흥도가 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암장했다고 한다.글 읽는 단종과 그를 알현하는 선비, 살림을 챙기는 궁녀들을 재현해 놓아 당시 단종의 유배 생활의 단면을 짐작하게 한다.단종어소단종이 머물렀던 옛터임을 알리기 위해 영조 때 세운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단종 어소에서 망향탑으로 가는 길에 수령 600년, 높이 30m의 관음송이 Y자 모양으로 갈라져 있다. 유배 생활을 하던 단종이 그 틈에 걸터앉아 시름을 달래곤 했다고 한다. 관음송이란 이름은 단종의 유배 모습을 지켜보고, 때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는 데서 유래됐다.망향탑으로 오른는 목계단.절벽 위에는 작은 돌탑(망향탑)이 하나 보인다. 단종이 한양과 그곳에 두고 온 왕비 그리며 쌓았다고 하는데, 단종이 남긴 한으로 생각된다.노산대로 올라가는 계단도 새로이 설치했다.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 노산대.단종이 머물렀던 곳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을 금지하는 금표비.휘돌아 간 강의 물결,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 그사이로 햇살이 어우러진 청령포는 아이러니하게도 호젓하고 아름답다. 단종의 비극은 그래서 그런지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