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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영월 장릉

2023년 8월 21일

청령포를 답사한 후 애잔한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 단종의 묘 장릉에 왔다.

 

 

장릉은 다른 조선 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2009. 11. 28)
매표소를 지나서 우측으로 첫번째 나오는 박충원의 낙촌비각이 보인다.
영월부사이던 낙천 박충원이 꿈속에서 단종의 무덤을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낙촌비각이다.
단종역사관 이곳엔 단종의 국장 모습 등 다양한 단종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관심끄는 것은 단종의 국장과 관련된 내용이다. 일반 백성도 죽으면 치르는 인생의 마지막 의식 장례식을 숨겨오느라 못치른 비운의 임금이었다.
신연은 어진의 이안이나 봉안에 사용했던 가마를 말하며 가마꾼 10명 이상이 맨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수없는 하루일과 다.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다. 재실치고는 큰 규모 다. 처음 건립연대는 숙종25년(1699).
재실에서  홍살문이 있는 방향으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엄홍도 정려각이 나온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지 말라는 세종의 어명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 이다.
홍살문 앞에는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해 총268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장판옥, 좌측으로 배식단이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마주하고 있다.
배식단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위,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으로 들어서면 납작한 돌을 깔아놓은 두개의 길이 나란히 있다. 참도라고 한다. 왼쪽은 신만 다닐 수 있는 신도, 오른쪽은 왕로로 일반인이 이용하는 길이다.
홍살문에서 장릉의 정자각은 언덕의 정상에 위치한 봉분 옆을 향하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비운의 왕 단종이 묻힌 '장릉'은 능의 형태도 다른 왕릉과는 다르다. 터를 잡아 왕릉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호장 엄홍도가 수습해 선산에 몰래 암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릉'의 봉분은 다른 왕릉과는 달리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묘역도 좁다.
참도가 꺽기는 위쪽에 우물이 나온다. 단종제를 올릴 때 사용하는 우물 `영천`이다.
꺽어진 참도를 따라 끝에 있는 멋진 건물이 정자각이다. '丁'자 모양의 건물이라 해서 붙은 이름인데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집이다. 이 집 바로 뒤 높다란 구릉지 위에 단종의 능이 있다. 그런데 위치 상 왕릉과 정자각이 일직선 상이 아니어서 결국은 왕의 옆구리를 향해 절을 하는 구조가 됐다.
정자각 내부.
정자각에서 옆에 있는 비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朝鮮國端宗大王 莊陵)'이라고 새긴, 이제는 누구에게든 떳떳하게 단종의 능임을 공표하는 비석이다.
비석은 빨간 글씨로 암각돼 있다. 영조 9년(1733년) 어명으로 세운 비석으로 한양에서 만들어 남한강을 거슬러 가져왔다고 한다.
릉으로 가는길은 다시 홍살문을 나와 왼쪽 산비탈 데크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왕릉은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예쁘게 잘 단장돼 있었다. 능의 앞쪽 좌우엔 석인상과 석마가 각각 서있고 망주석 뒤엔 석양이 한마리씩 바깥쪽을 향해 서있다. 이 무덤은 단종 사후 241년이 지난 숙종 1698년에 단종이 노산군에서 복위되면서 왕릉으로 정비됐다.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한 것이다.
영월 장릉은 곡절이 있다 보니 조선시대 다른 왕릉과 몇 가지 차이가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능침이 일직선을 배치된 여느 왕릉들과 달리 'ㄱ'자 형태이고, 왕이 아닌 사람들의 비석과 위패를 모신 점이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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