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서울. 그 중심에 덕수궁, 경희궁,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5대 고궁과 한양도성이 있다. 15여년전 마눌과 한차례 둘러본 서울의 4대 궁궐이며 그당시에는 경희궁이 완전 복원되지 않았다. 오늘은 서울의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과 종묘 포함 투어를 시작합니다. 마침 문화가 있는 날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으며, '2025 궁중문화축전'. 궁궐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활용한 서울의 대표 문화 예술 축제 중 하나 가 열리고 있었다.
해태동상 뒤로 '월대'는 각종 의식을 행하는 기능 외에도 건물의 위엄과 왕의 권위를 한층 더 놓이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시설물로, 터보다 높게 쌓은 넓은 기단을 말한다. 2023년 광화문 현판과 함께 복원되었다. 5대궁엔 모두 ‘화’자 가 들어간다.“경북궁의 정문은 광화문, 창경궁은 홍화문, 경희궁은 흥화문, 덕수궁은 대한문이지만 원래는 인화문이다” 각각 들어간 ‘화(化)’의 뜻에 대해선 “백성들을 교화한다는 뜻”이란다.정문인 광화문에 들어서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층 건물이 즐비한 복잡한 도시에서 한적한 조선시대로 시간 이동을 한 느낌이다. 북악산 아래 펼쳐진 고풍스러운 전각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관광객, 전역에 퍼져 있는 화려한 궁궐은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홍례문으로 들어가기전 마침 협생문 담장넘어에서 조선 시대 왕실 호위 문화를 보여주는 수문장 교대 의식이 열리고 있었다.영제교 앞에서 근정문을 보고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볼거리는 홍례문부터 근정정, 교태전으로 질서정연하게 이어지는 다채로운 형태의 건축물의 세련미 가 연출되는 지역이다.광화문, 흥례 문을 지나 상상 속의 동물 천록이 지키는 돌다리(영제교)를 건너면 왕의 공간에 이른다. 영제교에는 천록 네 마리가 산다. 갈기가 있는 사자의 얼굴인데 이마에 기다란 뿔이 달렸고 몸은 비늘로 덮였다.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능력을 지녔다.즉위식이 행해졌던 근정문 앞뜰을 지나면 근정전이다. ‘부지런히 정치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의 월대에 올라서자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관람객들이 궁궐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인기 포토존인 근정전 서쪽 회랑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내국인보다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아 보인다. 임금과 문무백관이 모여 조회와 의례를 치르는 공간이다. 양쪽에 줄지어 선 품계석이 이를 증명한다.경복궁은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로 기틀을 다지게 된 상징적인 궁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뒤 북악산 아래 지은 궁궐이다. 임금이 정사를 돌보며 생활하는 조선의 정궁으로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이 영원토록 큰 복을 누린다)의 염원을 담았다.광화문은 2층 누각 구조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문 3개 중에서 첫째로 마주하는 문이다. 둘째는 흥례문, 셋째는 근정문이다. 3개의 문을 지나는 동안 너른 마당과 회랑(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긴 복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붕을 바치고 있는 아름드리 기둥이 위용을 느끼게 한다.경복궁 주요 전각 지붕 위에는 자그마한 ‘잡상’들이 장식돼 있다. 앞쪽부터 대당사부(삼장법사),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오정) 등의 순으로 배치됐다. 소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와 제자들이 서역으로 가며 잡귀를 물리친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잡상은 한국과 중국의 전각에서 주로 보인다.근정전 회랑에 딸린 협문으로 나오면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이던 수정전이 있으며, 그뒤로 경회루가 있다.교태전 좌측의 왕실정원에 위치한 '경회루'는 물 위에 지어진 누각으로 과거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물 위에 비치는 누각의 자태는 물가에 세워진 버드나무와 어울려 그 규모만큼이나 수려하다.(사진작가 추천장소)경회루는 임금이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회루는 가로 128m, 세로 113m 크기의 사각형 인공 연못 안에 지어진 정면 7칸, 측면 5칸, 2층 건물이다. 연산군 때 연못을 크게 확장해 뱃놀이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국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뽑아 운평과 흥청이라 하고 막대한 예산을 탕진하며 연회를 벌였다. 세간에서 ‘흥청과 놀다 나라가 망하겠다’라고 비꼬았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의 유래다.경회루 너머로 푸른빛으로 물든 인왕산과 북악산이 연못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 낸다.경회루 주변의 있는 `풍기대`에 깃대를 세루고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경회루에서 근정전 뒤 사정문으로 되 돌아 들어간다.사정전은 왕이 나랏일을 보던 편전의 중심 건물이다. 왕의 집무실인 셈이다.사정전 양 옆으로 천추전과 만추전이 있다.향오문 뒤쪽에는 침전과 궁궐 내에 필요한 제반시설이 자리한 영역인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임금의 침전인 강녕전이다.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강녕전 월대에서 야간 주연을 베풀었는데, 취중진담으로 신하들의 속마음을 슬쩍 떠보는 술자리 정치 현장이었다. 실제로 만취해서 세조에게 반말을 하는 바람에 파직된 집현전 학사 정인지, 무례를 범한 정난공신 양정이 참수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강년전 동쪽과 서쪽에 있는 보조 침전들이었는데, 동쪽 침전을 연생전, 그리고 서쪽 침전을 경성전이 자리하고 있다.경성전 뒤로 응지당이 있으며, 응지당 옆으로 우물이 있다.응지당 좌측으로 흠경각 안으로 들어가면 함원전이 나온다.함원전 뒷 뜰의 굴뚝.함원전 뒷뜰하고 교태전 뒷뜰하고 연결되어 있다.경복궁 교태전은 왕비가 머무르던 생활 공간이다. 교태는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는 뜻으로, 교태전은 궁궐의 가장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중궁전으로도 불렸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144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는 창덕궁에 큰불이 나자 교태전을 뜯어내 내전인 대조전을 짓는 데 썼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95년 복원한 것이다. 왕비의 공간 교태전은 건물보다 꽃 계단으로 된 후원의 아미산이 아름답다.경회루와 연못(경회지)를 조성하면서 파낸 흙을 왕비의 침전(교태전) 뒤쪽에 옮겨 쌓아 작은 동산(아미산)을 만들고, 인공으로 단을 쌓아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가운데 단에 주황색 전벽돌을 사용, 육각형 굴뚝 4개를 나란히 세웠다. 굴뚝 몸체에 조각된 여러 무늬들은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와 국화는 군자의 심성을, 학, 사슴, 불로초, 솔, 대, 돌 등 십장생은 장수를 뜻한다.교태전에서 나오면 경복궁 생과방과 내소주방건물들이 보는 너른 뜰이 나오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눈길을 돌리면 자경전이 나옵니다.자경전은 외부 회랑으로 둘러 있습니다.장경전은 1867년 자미당 터에 조대비를 위해 건립되었는데, 불타버려 1888년(고종 25)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앞면 10칸, 옆면 4칸의 장방형 평면의 동쪽 정면에 앞면 1칸, 옆면 2칸의 청연루와 앞면 6칸, 옆면 2칸의 협경당, 그리고 서쪽 뒤쪽에 앞면 2칸, 옆면 6칸의 방과 대청이 부속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ㄴ'자형이다.장경전 뒷뜰에는 유물이 있습니다. 꼭 관람을 권합니다.조선시대 궁궐 굴뚝 중 가장 아름다운 유물로 꼽히는 보물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자경전 십장생굴뚝은 1888년 재건된 자경전의 뒤쪽 담 일부를 돌출시켜 만들었다. 가로 307㎝, 세로 87㎝인 십장생 문양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학, 박쥐, 불가사리 무늬를 배치했다.자경전에서 나와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흥복전이며 우측으로 영훈당 복원 사업과 궁궐 내 전기 도입 역사를 함께 조명하는 ‘영훈당과 등소’ 홍보관을 개관하였다.영훈당 복원공사 지역. 영훈당은 향원정 남측, 함화당과 집경당 인근에 자리한 전각으로 고종대 경복궁 중건과정에서 새로이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창덕궁 화재 복구를 위한 경복궁 전각 철거 과정에서 함께 사라져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그 뒤로 탑이 보이는데 국립민속박물관입니다. 경복궁 내부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한국 전통 생활문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민속유물과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영훈당과 등소’ 홍보관‘전기등소’는 대한제국기 근대 문명의 상징인 전기가 궁궐에 본격 도입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궁궐사 연구와 한국 전기산업사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홍보관은 총 4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영훈당의 소개 및 연혁’을 시작으로 2부 ‘영훈당 복원의 단서들’에서는 영훈당과 그 일대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각종 사진과 기록 등을 볼 수 있다.3부 ‘경복궁을 밝힌 최초의 전기 점등’에서는 조선 최초의 전기 점등 역사가 담긴 보고서, 고문헌, 사진 등과 1880년대 에디슨 전등회사에서 생산한 ‘에디슨 전구’ 등 관련 유물(복제품)을 직접 볼 수 있다. 4부 ‘경복궁 전기등소, 그 이후의 발전’에서는 경복궁 이외에 덕수궁의 전기발전소 설치를 위해 체결했던 당시의 계약서, 전기 발전소의 모습이 담긴 도면과 사진 등을 살펴볼 수 있다.경복궁의 후원인 향원정은 초록 향기로 가득하다. 향원정은 임금과 가족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1885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연못 한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었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간다’라는 의미이고, 이곳에 놓인 취향교는 ‘향기에 취한다’라는 의미를 담았다.경복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공간인 건청궁으로 들어가는 초양문이며, 곤녕합, 복수당, 장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건청궁은 경복궁이 중건된 이후인 1873년 지어진 공간이다. 다른 전각과 달리 일반 사대부가 살던 집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섬세하게 장식한 점이 특징이다.함광문안으로 곤녕암은 조선 후기 고종(재위 1863∼1907)과 명성황후가 머물렀으며,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힌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명성황후가 1895년 10월 일본군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복수당 건물 우측으로 `자선당 유구`가 있습니다.자선당은 세자의 침전공간으로, 우리나라 온돌을 세계에 최초로 알린 건물이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개최하는 박람회를 핑계로 1914년에 시행된 경복궁 철거공사를 오쿠라 기하치로라는 사업가가 했는데, 경복궁을 철거하던 중 자선당이 너무 아름다워 일본에 있는 그의 호텔 정원에 옮겨놓고 개인 박물관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오쿠라 기하치로의 호텔을 설계하기 위해 일본에 온 모더니즘 시대 4대 거장 중 한명인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새로운 난방 방식인 자선당의 온돌을 보고 감탄해 미국으로 돌아가 설계한 주택에 온돌 난방을 함으로써 세계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자선당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전소돼 방치됐던 기단과 주춧돌을 1993년 김정동 교수가 노력 끝에 찾아내 1996년 경복궁 건천궁 옆으로 옮겨왔다.건청궁 장안당.'집옥재'는 '옥처럼 귀한 보배(서책)를 모은다'라는 뜻을 지닌 전각으로, 고종이 서재로 사용하며 외국 사신들을 맞이했던 장소이다. 집옥재 왼편의 '팔우정'은 우리나라의 궁궐에선 보기 드문 2층 구조의 화려한 팔각형 건물이고, 오른쪽에는 단층 전각인 '협길당'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청와대 본관과 마주보고 있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청와대 앞길경복궁 신무문으로 다시 들어갑니다.조선시대 왕실의 별식을 만들던 생과방 앞뜰. 경복궁 동쪽, 소주방 권역의 담장 뒤편. 한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생과방이랍니다.조선 왕실의 후식과 별식을 담당하던 이곳은, 격식과 절제의 미학이 깃든 장소로, 예로부터 외부인의 출입이 극히 제한되었던 공간이다. '생과방' 내부 구조는 'ㄷ'자 형태의 한옥 건물이다.경복궁 소주방은 외소주방, 내소주방, 생물방 등 3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세 건물은 모두 직사각형 모양으로 지어졌고, 가운데에 마당을 뒀다. 3개 건물은 모두 부엌과 방, 곳간, 대청을 두고 있다. 부엌은 건물마다 2개 또는 3개가 있는데, 내부 공간이 방 서너 칸에 불과할 정도로 넓지 않다. 반면 대청 공간은 건물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넓게 배치돼 있다. 조리에 편하기 위함이다.소주방 우물.경복궁의 동궁전은 근정전과 사정전의 동편에 있고 그 영역은 자선당과 비현각으로 구분되어 있다.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이 머물던 동궁 건물이다.자선당 그 옆에 세자가 공부를 하거나 서연, 경연을 하는 '비연각'이다.근정전 측면.'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의 유물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경복궁에는 근정전(국보 제223호)과 경회루(국보 제224호) 등 국보와 자경전(보물 제809호),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 아미산의 굴뚝(보물 제811호), 근정문 및 행각(보물 제812호), 풍기대(보물 제847호), 사정전(보물 제1759호), 수정전(보물 제1760호), 향원정(보물 제1761호) 등 8개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경복궁은 5대 궁궐 가운데 규모와 건축미가 의뜸이다. 그냥 한옥이 아니라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