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님의 침묵’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외워보는 기념비적 근대시다. 바로 한용운의 작품이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하나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썼고 불교개혁을 주장한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했다. 한용운생가지에서 그 숨결을 따라 만해의 삶을 뒤돌아 보기로 한다.
김좌진 장군 생가 앞길을 따라 남쪽의 결성농요농사박물관 방면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승려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생가지에 닿는다. 이곳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 318번 길 83에 위치해 있다.한용운 선생은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방씨 사이에서 1879년 8월 29일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출생했다.한용운 선생 생가는 낮은 야산을 등진 양지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싸릿대 울타리에 초가지붕을 얹은 방 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다.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초가집 형태이며,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생가 좌측으로 우물 옆으로 장독대가 있다.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면서 저항 문학에 앞장섰는가 하면,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월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생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지만 사당 만해사는 보수 공사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었다.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조형물.태극모양 조형물에는 조선독립선언서, 한용운의 독립운동과 역사의 울림 등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한용운 선생이 독립선언서 마지막 부분인 공약삼장(公約三章)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최후의 일인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일체의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라'1919년 3.1독립만세 운동 후 옥중에서 집필한 옥중 독립선언서인 어록비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후 옥중에서 집필한 옥중 독립선언서인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첫머리에서 따온 구절이다.님의 침묵 14쪽 詩 '알 수 없어요' 시비.님에 대한 인내와 희생과 사랑을 그린 한용운의 시.나룻배와 행인 시인은 자신을 나룻배로,부처 또는 민족을 당신으로 비유하고 있다. 특별한 기교 없이 평법하고 쉬운 우리 말로 정감의 절실한 깊이를 노래한 시이다.생가지 옆 산비탈에 민족시비공원이 조성되어 숲길을 차분하게 산책하며 시를 감상할 수 있다.한용운의 (복종), 김달진의 (씬냉이꽃), 백석의 (모닥불), 정한모의 (나비의 여행), 이육사의 (절정) 등이 큰 돌에 새겨져 있다.만해를 비롯한 민족시인 20명의 시가 새겨진 민족시비 공원이 산자락을 따라 조성돼 만해의 뜨거운 나라사랑을 느낄 수 있다.민족시비공원에서 생가지를 내려다 보는 전경이다.만해문학체험관(매주 월요일 휴관. 무료관람).만해 문학체험관 오른쪽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동상이 있었다.동상과 초상화를 보면서 예의를 갖추고 실내 전시실로 들어서면 만해의 문학과 철학을 반영하는 유물 60여 점이 있다.한용운이 20살이 되던 해인 1898년 2월 10일 전정숙과 결혼하였다. 1904년 12월 21일 전정숙에게서 아들 한보국(1904년~1977년)을 얻었으나 그는 이미 강원도 백담사에서 출가를 하였다. 후일 한보국이 부친인 그를 보러 왔을 때 그는 외면하였다고 한다.전시실에는 만해 한용운의 삶과 문학, 그리고 깊은 사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대중의 결혼생활, 가장이라는 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중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한용운) 주장이었다. 그러나 승려의 결혼을 허가해 달라는 그의 주장은 그대로 묵살당한다.한용운은 흔히 불교사회주의로 요약되는 그의 불교사상은 불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우리 민족 현실 전반에 대한 혁명적 사상의 기반을 이루었다.설악산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면을 재현한 방이 압권이다. 12폭 병풍을 뒤에 두르고 단정하게 앉은 선생은 호롱불에 의지한 채 붓으로`님의 침묵`을 써 내려간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님의 침묵`은 만해의 님은 조국, 민족, 생명의 근원 등이다. 불교의 힘으로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려는, 조국 광복을 희망하는 마음을 담았다.불교의 대중화, 독립사상 고취, 문학 활동을 펼치다가 1944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심우장을 지을 때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만해가 사망하였던 1944년은 일본 제국이 패망하기 1년 전이자 광복을 1년 앞두고 있던 때라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독립은 끝내 생전에 보지 못하였다.그리고 그가 사망한지 1년 후인 1945년 8월 15일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 제국이 패망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문학체험관 안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일대기와 삶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