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하면 으레 '청산리전투'를 떠올린다. 무장 독립투쟁사에 가장 빛나는 성과가 바로 청산리전투이기 때문이다. 김좌진장군의 생가지를 방문하여 장군의 업적을 살펴 보기로 한다.
홍성IC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 김좌진장군 생가지가 있다. 정확한 주소지는 충남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 546번길 12이며, 입장료는 무료다.김좌진 장군은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곳으로 김좌진을 추모하기 위해 복원 및 보존되고 있는 곳으로 지난 1989년 12월 29일 충남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부터 이곳의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다.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김좌진 장군의 헌신과 투혼을 엿볼 수 있는 백야기념관 왼쪽으로 장군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를 복원해놓았다.백야 김좌진 기념비"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한 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 말인가 단장의 아픈 가슴 쓰러버릴 길 없구나" 청산리대첩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의 '단장지통' 어록비다. 조국을 잃고 타국에서 왜놈과 싸우던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김좌진장군이 태어나 성장한 곳으로 문간채, 안채, 사랑채, 마구간을 볼 수 있다.문간채 기둥에 걸린 주련의 글은 ‘가노를 해방시킨 것은 민족의 봄이요(家奴解放民族春), 청산리 대첩은 광복의 몸통이다(靑山大捷光復身)’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어릴때 흔히 보았던 절구통이 있는 문간채 대문내부 모습이다.마당으로 들어서면 안채, 사랑채, 광, 우물이 보인다. 생가의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서향 기와집이다.서향으로 앉은 안채 뒤편 장독대를 돌 때면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감은 장군의 일생이 안스럽다.안채는 부엌, 방 3개,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으며,생가 밖에 마구간은 화장실과 마구를 3칸으로 만들었다.생가를 둘러 본 후 장군의 행적을 기리는 사당 백야사로 향한다.기념관 좌측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백야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백야공원에는 공감의 마당, 기억의 마당, 학습의 마당 등 김좌진 장군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테마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김좌진장군의 이력을 볼 수 있는 벽체에는, 1889년 11월 24일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갈산지역 부호로 15살에 자신 소유의 노비를 해방시키고, 소작농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 18살이던 1907년 자신 소유의 99칸 기와집을 팔아 호명학교를 설립, 근대교육사업과 민족계몽운동에 전념했다. 1911년 독립투쟁 군자금 모금 중 일본경찰에 체포,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6개월간 투옥했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간 그는 1918년 무오독립선언서 39명에 이름을 올렸다. 1919년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이자 사관연성소 소장이었던 김 장군은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 3300여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1922년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에 취임했다. 1930년 1월 24일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산시진 신흥촌 금성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됐다. 김좌진 장군 나이 41세 때다.김좌진 장군의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상징하는 5개의 청동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김좌진장군비`다. 비에는 장군의 생애와 나라 안팎에서 했던 항일 독립운동의 실적과 자취가 기록되어 있다.사당 백야사 전경.백야사는 김좌진 장군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세워진 사당이다.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써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장군의 영정에 참배를 한다.백야기념관에서 김좌진 장군의 생애와 항일투쟁 속의 모습들을 살펴 보기로 한다.기념관 로비에는 장군의 흉상및 청산리대첩 벽화가 눈길을 끈다. 김좌진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청산리계곡으로 유인·초토화하는 장면이다.2개의 전시실로 구성된 기념관은 장군의 탄생부터 독립운동, 무장독립전쟁 준비와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청산리전투에 관한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26일 김좌진 장군이 이끈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 장군의 연합부대가 중국 지린성 허룽의 청산리 골짜기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대승한 무장 독립운동이다.독립투쟁 당시 맹세를 적은 태극기.전투 당시 사용한 무기.백야기념관에서는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가산을 팔아 호명학교를 세운 후, 교재를 직접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던 청년 김좌진과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으로 생을 마감한 김좌진 장군의 일생을 만나 보았던 시간이였다. 다시한번 독립을 위해 희생한 호국 영령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