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關東八景)은 강원도와 경북 울진 동해안에 있는 명승 8곳을 지칭한다. 보통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을 꼽는다. 그 중 조선시대 화가 정선과 김홍도가 그림을 남기고, 많은 문인이 칭송한 청간정을 관람한다.
속초에서 7번국도를 따라 고성읍으로 가다가 아야진항 못미처서 청간교를 건너자 마자 우측으로 청간정주차장이 나온다. 정확한 주소는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토성면 동해대로 5110 이다.청간정 탐방 인도교관광안내소를 겸한 청간정자료전시관은 한옥구조의 1층 건물로 내부에는 청간정의 시판과 현판을 비롯해 청간정을 노래한 시와 회화 자료 등이 전시하고 있다.본래 청간정은 관아에 딸린 청간역원의 정자였다. 역원은 공무를 수행하는 이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지금으로 치면 ‘공립 여관’이니 청간정은 거기 딸린 정자였다. 그 시절 청간정은, 명소 축에도 들지 않았다. 당시 지금의 청간정 자리에서 북쪽으로 150m쯤 떨어진 ‘만경대’였다. 만경대는 바위가 첩첩이 쌓여 만들어진 기암괴석 기둥. 그 자태가 기이하고 아름다워서 고려 때부터 명승 중의 명승으로 꼽혔다.청간정의 고려시대 때부터 관련 기록이 나오는 걸로 봐서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리고 현 건물은 원래의 청간정도 아니다. 원 건물은 1881년 고종 18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28년에 토성면장 김용집의 노력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좁은 숲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낙락장송 굵직한 소나무들이 호위하듯 양 옆에 있고, 그 끝에 아름다운 팔작지붕의 중층 누각인 청간정이 있다.1884년에 큰 불이 나서 만경루와 청간정은 잿더미가 됐다. 이듬해에는 해일까지 밀려와 남은 흔적마저 다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 후 복원하면서 청간정은 있던 자리가 아니라 바다가 잘 보이는 산 위로 올라왔다. 빈터에 남아있던 만경루 주춧돌 여덟 개와 청간정 주춧돌 네 개를 가져다가 열두 개의 기둥으로 청간정을 복원했다. 청간정은 단층 정자였는데, 복원된 청간정은 만경루처럼 중층 누각의 형태다.현재의 청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창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위에 팔작지붕의 중층수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현재 만경대는 존재감이 아예 없다. 모래의 퇴적으로 아랫도리가 묻히면서 높이가 낮아진 데다 바다하고도 멀어졌고, 결정적으로 군부대 안에 있어 가볼 수 없다.정선의 `청간정도` 만경대와 만경루의 모습. 만경대에 계단이 조각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꼭대기에 올라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누각 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현판과 최규하 대통령의 한시가 남아있다.누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 동해가 눈앞에 가득하다.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기분 좋은 솔향이 실려 온다. 동해를 넓게 조망할 수 있고 청간해수욕장 도 가까이 보인다.먼발치에 천진해변이 보인다.청간정에서 내려와 탐방로를 따라 바닷가로 향한다.청간천과 천진천이 합류하는 지점인 바닷가설악산에서 발원했다는 청정옥수 청간천이 청보라 빛을 닮은 동해로 흘러들면서 모래사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활처럼 부드럽게 휜 백사장 모래사장이 깔린 부분은 파도가 잔잔하고, 전반적으로 수심도 얕아보인다.바닷가에서 올려다 본 청간정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근사한 자리에 있고, 옮겨져서 지나온 시간도 100년이 다 돼가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청간정이 과거 선비들이 찬탄을 쏟아냈던 그 자리도, 그리고 그 정자도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원래의 위치에다 청간정을 ‘제대로’ 복원하고, 과거의 명승이었던 만경대도 개방할 수는 없을까.백사장과 맑은 바다는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다. 모래둔덕에 갈매기만 노닐고 있다.모래 벌판에 괭이갈매기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 오르내리며 꾸룩꾸룩 자연의 소리를 세찬 파도소리에 얹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