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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해미순교성지

2022년 10월 7일

해미읍성에서 약 1km 근처에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 순교 성지가 있다. 성지가 위치한 일대는 '여숫골'이라고도 불린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해미진영은 천주교도 색출과 처벌의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충청도와 경기도 평택에 이르는 해미현 관아 관할지역에서 붙잡힌 천주교도들은 해미읍성으로 끌려왔는데, 1872년까지 6년간 이어진 박해기간 동안에 붙잡힌 천주교 신자 약 1,000명 이상이 이곳에서 잔인하게 처형 또는 생매장 되었다.

 

생명의 책
대성당 과 팔각의 탑
이 집은 `이름없는 집` 이다. 순례자들이 이름없는 집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돼새기기 위하여 성경이어쓰기를 하는 곳으로서 누구나 참여할 수 이는 곳이란다.
1935년 서산성당 범바로(P, Barraux) 신부가 순교자들의 유해중 일부를 발굴해냄으로써 관군에 의해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발굴된 유해는 상홍리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져와 보존 중이다. 성지 조성은 천주교 신자들 대상으로 홍보, 모금 활동을 벌여 부지를 확보하고 건립을 시작해 2003년 6월 17일 완료하였다. 2014년 로마 교황청은 해미 순교자 3명을 가톨릭교회 공적 공경 대상인 복자로 추대하였다. 같은 해 8월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복자로 추대된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을 때 해미순교 성지도 직접 방문하였다.
순교자 유해가 발견된 곳 우측으로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순교자의 무덤을 형상화하여 지었다. 기념관 내부에는 순교 기록화와 벽화 조각이 설치되어 있으며, 발굴된 순교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유해 참배실
발굴된 순교자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모습.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관군은 많은 천주교인(천주학쟁이)들을 해미읍성 으로 끌고와서 처형하였다. 그런데 그 수가 많아지자 이들을 해미천변으로 끌고나가 생매장 시키는 방식으로 처형하기 시작했다. 해미읍성 옥사에서 끌려나온 천주교인들은 본능적으로 순교 당할 것을 감지하고 해미천 변으로 끌려나가면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으며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에게는 "예수 마리아"라는 기도소리가 "여수 (여우의 방언) 머리" 라고 들렸다.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의 일부가 모국어처럼 들리는 몬더그린 현상 에 의한 것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의 신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지역민들은 '역시 저들은 여수(여우)에게 홀렸으니 저렇게 죽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이곳은 그때부터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돌다리 위에서 죄수의 몸을 들어올린후 곡식단을 내리치며 타작하듯 메어쳐서 머리가 깨어져 죽게 하는 자리개질을 하기도 하였다. 이때 사용된 돌은 길이 4.2m 폭 1.5m의 '자리갯돌'이라 명명되었으며 그 당시의 자리개 돌의 원석이다.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였는데, 천주학 죄수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이라 불렀으나 현재는 이름조차도 변해 '진둠벙'이라 불리고 있다.
생매장당한 무명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 과 노천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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