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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반계선생 유적지

2023년 4월 1일

농촌을 부유하게 하고 민생을 넉넉하게 하는 여러 가지 주장을 펴 정약용 등의 후기 실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친, 반계수록의 저자 반계선생의 유적지를 답사한다. 위치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반계로 97-68이며, 반계선생유적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1974.09.27)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인 유형원이 낙향 이후, 평생 연구생활에 몰두하며 살던 곳으로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위치한다. 우동리는 반계 유형원이 살던 곳이라 하여 일명 반계 마을이라고 불렀고 예전에는 우반동이라고도 했다.
주차장에서 쬐금 올라가면 초입에 세워진 `실사구시(사실에 바탕을 두어 진리를 탐구함)`라는 커다란 돌비석을 지나 올라가는 길은 시멘트로 깔끔히 포장됐다.
숲길로 들어서는 곳 부터 나무계단으로 이어지며,
중간 중간에 반계 유형원과 실학사상을 설명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조선실학의 성지가 된 부안과 유형원의 인연은 세종때 정승을 지낸 9대조 유관(柳寬, 1346~1433)의 사패지(왕이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린 땅)가 우동마을에 있었기 때문이였다.
주차장에서 10여분 오르면 반계서당이 나온다. 반계는 산중턱에 자리잡은 이곳에서 '반계수록'을 집대성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지금 건물은 1981년 복원된 것이다. 서당 앞으로 반계정(磻溪亭)이 있다.
조선의 실학이 이곳 전라도에서 싹트게 된 것도 반계가 이곳에서 많은 후진과 주민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반계서당의 뜰 안에는 우물이 있다. 반계 선생이 판 것으로 전해지는 이 우물은 지금까지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유형원(柳馨遠)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덕부(德夫)이다. 1622년(광해군 14)에 서울 정릉(貞陵)에서 태어났다. 1653년(효종 4)에 조부 유성민(柳成民)을 따라 부안현 남쪽 기슭 우반동으로 옮기고 이곳의 지명을 따서 자신의 아호를 반계(磻溪)라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고, 또 몸소 연구한 것을 실생활에 실천해 보았다. 그의 사상과 이념,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한 구상 등은 우리나라 실학사에 길이 남을 『반계수록(磻溪隧錄)』 26권에 그대로 실려있다. 『반계수록』은 1770년(영조 46) 왕의 특명에 의해 간행되어 오늘날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이한건 서당에 들어서면 관람객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인식해, 문화 해설사 못지않은 반계에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앞이 탁 트여 우반동의 너른 들녁과 멀리 줄포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계서당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봉분이 나온다. 반계 유형원이 1673년 3월 운명하자 5월에 임시안장하고 장사를 지냈으나 10월에 반계의 유명에 따라 경기도 죽산(현 용인시 백암면)의 부친 묘소 아래로 옮겨 모셨다. 이곳 임시 안장터는 근래에 봉분을 만들고 안내문을 세웠다.
반계서당에서 약 2km 인근에 선계폭포로 가본다. 이곳 선계폭포는 산을 구성하는 큰 바위처럼 보이지만 비가 올때는 다르다. 하얀 물보라를 날리며 60m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오늘은 명주실같이 흐날리는 폭포수를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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