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일
동학농민군 유광화의 편지에 `나라가 환난에 처하면 백성도 근심해야 한다네`라는 문구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 꼭 그렇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아, 1894년 동학농민군이 첫 승리를 거두었던 황토현전적에 기념공원과 박물관을 답사하면서 동학농민군을 기억하고 그들의 정신과 희생을 생각하면서 역사 공부를 하기로 한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은 총 면적 30만1329㎡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묘역과 무명 동학농민군의 넋을 기리는 추모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연구·교육하는 연수동, 전시관, 야외 캠핑장, 각종 편의시설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공원을 전부 다 돌아보는 것 만으로 운동량이 엄청나다.
향토현으로 가는 도중에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에 있는 `장문리 오층석탑`을 답사한다. `장문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이 석탑은 백제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부터 들어가 본다. 동학농민혁명 에 관련된 무기, 생활용품, 전적류를 전시 보존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흥선대원군 효유문, 동경대전 등이 있다.
기념관 로비에 들어서면 나선형으로 2층으로 올라 가는 구조다.
2층으로 오르기전 우측으로 알록달록 색감으로 눈길을 끄는 곳이 있으니 바로 어린이 전시관이다. 이곳은 동학농민운동에 대하여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재밌게 설명이 되어 있으며 다양한 게임과 체험놀이를 할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다.
2층 전시관으로 오르는 벽면에 동학농민운동의 주체이었던 6인을 형상화한 조각이 붙어있다. 이런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것이 정말 감동적으로 와 닿았다.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6인 그들은 양반이나 무관도 아닌 그저 평범한 농민이고 백성이었다.
2층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반겨준다. 이 지도에는 조선시대 발생하였던 농민봉기들의 점령지를 보여주고 있다. 120여 년 전 외세와 탐관오리가 판을 치는 혼돈의 시기에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을 기치로 분연히 일어선 이가 있으니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이다. 전봉준을 필두로 한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최초 싸움이었던 '황토현 전투'는 한국 농민 혁명사에서 피의 역사로 기록됐다.
혁명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도록 사발을 엎어놓고 둥글게 이름을 적어 넣은 사발통문. 1893년 12월 전봉준을 포함한 20명이 모여 사발모양으로 둥글게 서명한 문서이다. 탐관오리를 벌하고 전주성을 점령한 후 서울로 진격한다는 내용의 거사계획이 담겨 있다.
홍계훈 유서는 1894년 4월 2일에 고종이 양호초토사로 임명된 홍계훈에게 내려준 명려어로, 현존하는 조선의 유서 가운데 가장 후대에 발급된 것 중 하나이다. 이문서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당시 군권이 홍계원에게 있엇고, 전주화약이 전봉준과 홍계훈 사이에 이루어진 것 등을 알 수 있다.
농민군의 열악함은 무기뿐만 아니라 의복에서도 나타난다. 전시관 한편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마네킹이 서 있다. 잘 갖춰진 관군과 일본군과 비교하면 농민군의 옷은 보잘것이 없다.
농민군은 고부와 장성, 전주 등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1894년 11월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관군이 연합해 농민군을 제압하면서 크게 패배했고, 전봉준이 체포되면서 혁명도 막을 내렸다.
기념관은 1894년 1월부터 고부봉기.무장.백산 4월 황토현 전투. 5월 전주입성.집강소 통치기. 6월 청일전쟁. 갑오개혁등의 1차 봉기와, 9월의 2차 봉기,우금치 전투. 원평 전투( 전봉준 피체 ). 전봉준 처형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박물관 건물은 전시관 추모관, 상징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다. 황토색의 멋스러운 건축물로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만 만날 수 있는 구조로 추모관과 전시관 앞에 서면 상징 조형물이 위치해 있으며, 우측으로는 농민의 벽이 있다.
`죽창결의` 대지에 기반하여 살아가던 농민들이 억압과 착취에 맞서 죽창을 들고 일어나 강인하게 변화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징조형물이다.
추모관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계승하는 공간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군의 명패와 추모 영상으로 그들 모두의 넋을 기리고, 중앙에서 펼쳐지는 녹두꽃 영상을 통해 헌화를 할 수 있는 기념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전시관은 동학농민군의 유골사진, 일본 병사의 종군일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청일 전쟁을 보도한 미국 잡지.
조선에서 시작된 청일 전쟁.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과 박물관은 단순히 농민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곳만은 아니다. 당시의 사회 불평등과 생활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어려운 역사를 다양한 전시를 통해 쉽게 배울 수 있었던 뜻 깊었던 공간이었다.
공원 중앙에는 전국 아흔 개 지역에서 탐관오리와 외세 침략에 저항해 분연히 일어난 혁명군을 상징하는 아흔 개의 '울림의 기둥'이 세워졌다.
이 기둥은 제2차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국 90개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군을 상징하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전북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반일구국 의병전쟁으로 확대. 전개된 역사적 위상을 담아 설계됐다.
기념관을 나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동학농민군과 관군의 첫 전투가 있던 황토현 전적지다. 동학농민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구민사와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 있고 그 너머 왼편으로는 동학혁명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황토로 덮인 작은 산과 들판은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전승지이다. 1894년 4월 초, 관군이 농민군을 쫓아나서자 농민군들은 이를 유인하여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날로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흥덕, 고창, 무장을 점령하였으며, 경상, 충청지방으로까지 농민혁명의 불길이 번져 갔다. 지금 이곳 황토현 마루턱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 동남쪽 기슭에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이 있다. 탑을 등지고 앉아 내려다보이는 길건너 붉은 흙 둔덕과 밭이 강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전라도병마절도사장계로 1894년(고종 31) 10월 29일에 전라도병마절도사는 전라도 각 군현의 동학군에 의한 피해를 각 지방관으로부터 보고받고, 이를 종합하여 국왕에게 보고하였다.
'불멸, 바람길'은 고부에서 봉기를 시작한 동학농민혁명군의 행렬 이미지를 부조, 투조, 환조의 기법으로 제작한 군상 조각이다. 동학의 인본주의 사상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도록 인물 배치를 사람인(人) 형상으로 한 게 특징이며, 벗은 갓을 들고 가는 전봉준의 모습은 신분제 차별을 없애고 불합리한 모순을 개혁하려는 혁명가의 의지가 돋보인다.
구민사
마지막으로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올려다 보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동학교도 전봉준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부패. 반봉건. 반외세 운동이다. 1년여 만에 지도부 대부분이 관군과 일본군에 붙잡히며 진압됐으나 훗날 갑오개혁과 3.1운동에 영향을 미친 혁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은 동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민족. 민주. 항일 운동의 성지이자 역사적 가치 가 높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관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