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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학사루(學士樓)

2021년 4월 18일

함양군청 앞에 있는 학사루를 답사한다.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 되어 있으며, 학사루(學士樓)는 원래 함양초등학교 뒤뜰에 있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웅장한 누각이다. 건립 연대는 꽤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말의 시인이며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스스로 함양태수를 자청해 학사루에 올라 시를 지으며 어지러운 세상을 잊고자 애썼다고 하니 세워진 것은 그 이전이 아닌가.

 

학사루는 1380년(우왕 6) 왜구의 노략질에 의하여 관아와 함께 불타버렸으며, 1692년(숙종 18)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10년경부터 함양국민학교 교사로 쓰여오다가 1963년부터는 군립도서관으로 쓰였으며, 1978년 겨울 현재 위치로 옮겼단다.
원래는 관아에 딸린 건물로서 옆에 객사가 있었고 동쪽에는 제운루(齊雲樓), 서쪽에는 청상루(淸商樓), 남쪽에는 망악루(望嶽樓)가 있었다고 전하여진다. 학사루는 함양읍성의 중심에 위치한 객사의 부속건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이 건물만 남겨두고 모든 건물을 없애 버렸다. 주변의 풍경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건물 자체만으로도 안정된 비례를 보여준다.
최치원이 학사루에 오른 지 약 600년 후에 "점필재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해 학사루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거기서 일개 궁궐 문을 지키던 갑사에서 무령군으로 권세를 누리며 남이 장군을 모함하여 죽이고, 조정을 어지럽히던 유자광의 시를 발견한다. 김종직이 누구던가. 나중에 조선 사림의 종조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김종직은 단호하게 유자광의 시가 적힌 편액을 떼어버린다. 이 일에 앙심을 품은 유자광은 김일손이 사초에 삽입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단종을 폐위한 세조를 모욕한 글이라 하여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수많은 사림을 숙청한다. ‘무오사화(戊午士禍)’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많은 영남의 사림이 죽거나 귀양길에 올랐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지붕 옆 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계자난간을 둘렀으며 함양의누정에서 흔히 보이는 활주는 없다. 12개의 기둥에 주련을 걸었다. 내용은 최치원을 기리는 7언시인데 작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학사루현판
현재 학사루에는 조선시대에 쓴 중수기와 시판은 없고 1979년 이건당시 함양군수의 중수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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