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여행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안골태호 2024. 1. 4. 08:01 2023년 12월 29일 `백제의 숨결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에서 출토 된 문화제가 세상에 알려진 후 송산리고분군으로 관람하였던 곳이다. 이제는 세계유산으로 등록 되면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졌지만 내용면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주차장 한편에 세워진 안내도가 흐릿하다. 세계유산을 안내하는 안내판 부터 바꿔져야 할것 같다. 주차를 한후 왕릉원으로 가기전 웅진백제역사관에서 왕릉원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하여 본다. 웅진백제역사관은 크게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었으며,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 한성(서울)을 잃은 후, 백제가 두 번째 수도로 선택한 웅진(공주)에서 64년간 백제의 수도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웅진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1실은 `왕도 웅진`을 주제로 왕도 웅진이 건설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만화영상과 웅진도읍기 왕들의 초상화, 그리고 그들의 업적을 보여준다. 2실은 `갱위강국`을 주제로 웅진에 도읍하고 다시금 강국으로 부활한 백제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문화강국 백제를 평하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말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글로 유명하다. 3실은 `문화강국`을 주제로 백제의 활발했던 국제 교류와 이를 바탕으로 피어난 화려한 백제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 외에는 북카페와 휴게공간을 마련하고, 로비와 복도 곳곳에 웅진 백제의 문화를 반영한 콘텐츠들을 배치하였다. 특히 1900년대 사진을 보면서 그시대의 공주시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일제 강점기시대의 공주시내 전경 웅진백제역사관은 전반적으로 웅진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방향으로 꾸며졌으며, 백제의 공주 천도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담겼다. 웅진백제역사관에서 이정표 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가면 무령왕릉과 왕릉원(송사리 고분군)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보인다. 정문앞에는 이상한 형태의 동물이 보이는데, 무령왕릉 에서 출토된 `진묘수`다. 이것은 죽은 자와 그 무덤을 지키는 수호적 성격을 띠는 동물로 날개와 뿔이 달려 있다. 정문을 통과하여 들어 가면 봉분형태의 왕릉원 모형관이 나온다.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5일 송산리 제 5, 6호 고분의 침수방지를 위한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굴된 웅진백제시대의 고분이다. 총 108종, 4600여 점의 출토 유물 가운데 12종, 17점이 국보로 지정됐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한다. 무덤 벽돌의 제작 수준과 공법은 당대의 우수한 건축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어 백제웅진시대의 문화적 우수성도 함께 증명하고 있다. 왕릉원의 현황도. 사진은 왕릉원 5호분의 무덤 안이다. 이러한 무덤을 직접 들어가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모형관 내부는 무령왕릉 앞의 송산리고분군 5, 6호분도 함께 복원 전시하고 있어 왕릉의 전문 정보가 가득하다. 1971년 7월 5일, 송산리 고분군 5, 6호 배수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 인부의 삽 끝에 벽돌이 걸렸다. 천 년도 더 된 고분지역에서 벽돌이 발견되자 현장이 술렁거렸다. 문화재청 등 정부에 긴급히 보고가 이뤄졌고, 고고학자 김원룡(1922~1993) 서울대 교수의 발굴단이 현장을 찾았다. 도굴 한 번 당하지 않고 1500년 가까이 원래 모습을 간직한 백제의 무덤이 발견된 기적의 순간이었다. 무덤 입구의 지석에 새겨진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무덤의 주인이 백제 제 25대 무령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백제를 강국으로 부흥시킨 무령왕은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옮긴 성왕의 아버지 다. 무덤 주인이 확인된 왕의 고분이 발견된 것은 처음으로, 계묘년(523년) 5월 7일 승하해 을사년(525년) 8월 12일에 안장했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고, 이는 삼국사기 기록과 일치했다. 백제 고분군을 마지막으로 도굴한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공주고보의 일본어 교사였던 가루베 지온이라는 인물로, 벌건 대낮에 발굴조사를 명목으로 백제 왕릉들을 파헤쳤다. 그는 백제 최초의 벽돌무덤인 송산리 6호분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6호분 바로 뒤에 있던 무령왕릉을 찾아내진 못했다. 무령왕릉은 5, 6호분과 바싹 붙어있어서 무덤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도굴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령왕릉에서는 금제 관장식 등 무려 4600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건에 이른다. 무령왕과 왕비의 관은 일본 금송으로 제작됐는데, 이를 통해 주변 동아시아 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도 알 수 있다. 화려한 왕의 금제관식은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며,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청동거울, 도자기, 다리미까지.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방대한 유물이 출토됐고, 이 유물들을 통해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 무령왕릉 등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 무덤 하나에서도 검박하면서도 견고한 백제의 미가 느껴진다. 무령왕릉은 연꽃무늬 수만 장의 벽돌을 정교하게 쌓아 올려 만들었고, 벽돌무덤으로 벽돌이 왕릉 앞을 감싸고 있는 형태다. 국보 '무령왕릉 지석' 백제의 매장 풍습이 담겨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무덤 주인이 무령왕임을 알려준 지석. 왕릉원 전시관에서 1500년 전 백제로 시간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왕릉원 발굴과정등을 볼 수 있었고 융성했던 백제문화의 위상을 확인 하였다. 왕릉원전시관에서 나와 왕릉원전시관 위쪽으로 산책길 같은 길을 따라 올라 가면 송산리 5호분과 6호분이 나오고, 6호분 우측으로 돌아가면 무령왕릉 입구가 보인다. 다만 고분군 보존성의 문제로 영구 비공개 결정으로 내부관람이 중지되었다. 무령왕릉에서 100여m더 오르면 1~4고분군이 나오는데, 현재 1~4호 고분군은 25년 말까지 발굴조사 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은 공주의 대표 역사 유적지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관람하면서 백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기고 간다. 사진은 왕릉원전시관 반대쪽에 있는 숭덕전의 모습으로 웅진백제시대의 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의 위패를 모신 전당으로 백제 옛 왕조의 영광을 기리는 곳이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궁금하면 가보자 '충청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성 궐리사 (0) 2024.01.08 국립공주박물관 (2) 2024.01.07 공산성 (7) 2024.01.01 송림산림욕장 (2) 2023.12.31 서천 조류생태전시관 (0) 2023.12.31 '충청도 여행' Related Articles 노성 궐리사 국립공주박물관 공산성 송림산림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