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도 여행

백산 안희재 생가

2024년 3월 22일

곽재우생가에서 약 2km떨어져 있는 백산  안희재 생가에 왔습니다. 2018년에 방문당시 보수작업으로 대문밖에서 되돌아 간적이 있는데 말끔히 보수하여 놓았네요. 생가는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37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백산 안희재 생가 전경입니다. 의령 8경으로 관광지 중 한 곳 입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1885년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창남학교를 창설하고 1908년 의신학교를 창설, 1909년 동래구명학교 건립, 대구교남학교 건립 등으로 신학문 보급에 힘썼다. 27세에 만주에서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소련으로 망명하여 독립순보를 간행하였다. 30세에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자본금을 마련하였으며, 기미 육영회를 조직하고 1926년 언론창달을 위해 시대일보를 인수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금되었고, 1943년 만주대종교단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출옥 4시간 만인 1943년 9월 2일에 사망하였다.
생가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마당 안쪽으로 안채 와 사랑채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채 앞으로 남향으로 난 1칸 마루와 4칸 규모의 초가집이 사랑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채의 뒷 모습입니다.
사랑채와 안채의 거리 가 바짝 붙어 있습니다.
안채는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구조로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대청 2칸, 방, 부엌의 순으로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후 툇간이 발달하여 겹집 형식으로 발전하여 기능이 다양한 방이 필요하지만, 별동으로 만들지 않고 한 건물 안에서 처리한 조선 후기 주택의 특징을 보입니다.
백산고가 현판
안채의 좌측면의 모습입니다. 특이하게 굴뚝이 앞쪽에 있습니다.
자리를 약간 뒤로 옴겨 일직선상의 좌측 정원을 본 모습입니다.
안채의 뒷 모습으로 뒷담장과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모습입니다.
안채 우측 담장 안으로 3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으며,
매화나무 옆으로 기와를 얹은 담장식 장독이 앙증맞게 있습니다.
오늘 방문 목적은 안희제 선생의 독립운동정신을 되새기고 본받고자 답사를 합니다. 독립 운동가들의 고귀한 희생을 되새겨 나라사랑과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기회의 장 이였습니다.
백산 안희제생가에서 우측으로 200미터에 교육 및 탐진 안씨들의 재실로 사용되었던 상로재를 답사합니다.
마을에는 우리가 흔히 보았던 흙벽돌집이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비록 허물어지고 판자가 뜻겨나가 흉하게 보일지라도 집을 구성하는 한부분입니다.
상로재의 전경입니다. 상로재는 탐진 안씨의 조상을 기리기 위한 제사용 건물입니다. 상로재 중수기에 따르면 이슬과 서리가 내릴 때 조상의 산소를 돌보고 조상에 대한 추모의 정을 가지며 군자의 도리로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뜻에서 상로재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상로재 외삼문 이필문으로 들어 가 보겠습니다.
이필문으로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는 공터이며, 좌측으로 비켜서서 담장없는 중문 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원래 이런건지 담장역활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 안쪽으로 상로재가 보입니다.
외삼문 안쪽 우측으로 상로재중수기념비 가 있으며,
중문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연못이 보이는데, 기존 연못에 화강암으로 다시 만들어진 모습이 원래의 모습을 잃은듯한 느낌이 듭니다.
상로재는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1908년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백산 안희제가 이곳에 창남학교를 세워 인재를 키워낸 역사가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상로재 뒤로 사당 충효사 가 있습니다.

'경상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령 탑바위  (18) 2024.04.01
이병철 생가  (21) 2024.03.29
망우당 곽제우 장군 생가  (24) 2024.03.27
일붕사  (20) 2024.03.23
김면장군 유적지  (1) 202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