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읍에서 동남쪽 보성 방향으로 10km 정도 가다보면 사평면 사평리에 이른다. 사평리 돌아 흐르는 외남천 상사교를 건너자마자 우측 방향에 주차장이 있으며, 상사길을 따라서 200m 정도 내려가면 임대정 원림에 다다른다. 16세기 후반 퇴계로부터 ‘동방의 도학을 전수할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남언기(1534~?)는 전라도 동복현 사평촌에 정자를 짓고 은둔한다. 그는 이 정원을 고반원이라 하고, 자신의 호를 스스로 고반이라 짓는다. 고반이란 은거자가 은거할 집을 마련했다는 뜻으로 세속을 떠나 산수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 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 민주현(1808~1882)이 귀향하여 고반원의 옛터에 정자를 건립하고 임대정(臨對亭)이라 명명했다.
주차장에서 조금 내려가면 연못이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연못이 두개로 나누어져 있다. 상지와 하지란다. 또 정원림은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어지고 있는데, 연못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이 하원이고, 상원은 정자를 중심으로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상지와 하지로 나누어지는 연못가운데 뚝길을 따라 상원으로 올라간다.상원으로 올라와 보니 물없는 연못과 정자가 보인다. 우선 정원을 둘러 보기로 한다.상원에는 서북향의 정자를 중심으로 하여, 가운데에 섬이 있는 네모난 연못과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살구나무·석류나무·측백나무·배롱나무·은행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정원에 한자가 각인되어 있는 입석을 본다. 돌에는 ‘사애선생장구지소(沙厓先生杖屨之所)’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장구’라 함은 지팡이(杖)와 신발(屨)을 의미하는데 ‘장구지소’는 즐겨 찾던 곳, 혹은 흔적이 묻어 있는 장소라는 뜻이란다. 즉 임대정 원림은 ‘사애 민주현이 즐겨 찾던 곳’을 말한다.‘임대정(臨對亭)’의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 유학자의 ‘낙조임수대려산(落朝臨水對廬山)이라는 시구를 따서 지은 것이란다. ‘산을 대하고 연못에 임했다’는 뜻이다.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자 안에는 시문을 기록한 20여 개의 현판이 있다.임대정 현판 뒤쪽에는 ‘낚싯대를 드리우며 즐기는 곳’이란 뜻의 ‘수륜헌(垂綸軒)’을 새긴 낡은 현판이 걸려있다. 임대정 자리에 세워졌던 옛 정원 이름도 ‘세상을 피해 자연과 벗하며 제 마음대로 즐긴다’는 뜻의 ‘고반원(考槃園)’이었다.정자 앞으로는 작은 규모의 사각형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이 연못에는 한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데 이 지당은 우리 선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음양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연못 안의 섬 정면에는 조그마한 입석이 세워져 있고 ‘세심(洗心)’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자 한 선비의 정신이 깃든 글이다.연못 앞에는 평평한 네모난 돌을 놓아두었는데 3면에 모두 음각이 되어 있다. 앞면에는 ‘걸쳐 앉는 돌’을 의미하는 기임석(跂臨石),오른쪽 면에는 ‘연꽃의 향기가 멀리 흩어지는 것’을 뜻하는 피향지(披香池),왼쪽 면에는 ‘연꽃의 맑은 향기를 붙잡아 당긴다’는 의미의 읍청당(揖淸塘)이 새겨져 있다. 이 글자는 주돈이의 〈애련설〉의 “향기는 멀리 있을수록 더욱 맑다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단다. 이러한 각자들은 모두 조선의 유림으로서 민주현이 따르고자 했던 선비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란다.하원으로 다시 내려와 자세히 관찰한다. 연못은 자연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수구를 통해 연결된다. 상지는 남쪽에 위치하며 안에 두 개의 섬이 있고,하지는 북쪽에 자리하여 한 개의 섬을 못 안에 두고 있다. 섬 안에는 모두 배롱나무가 식재되어 있으며, 소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단풍나무숲이 어우러져 정원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