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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예천 삼강문화단지

2024년 5월 29일

예천삼강문화단지는 과거 삼강나루터 와 푸르른 낙동강의 생태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전시·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가족형 문화체험 관광지구다. 예천삼강문화단지 안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삼강주막. 과거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보부상·사공 등에게 숙식처가 되어주던 전통 주막과 강문화전시관을 관람하겠습니다.

 

 

 

주차장 우측으로 삼강주막 종합안내센터의 모습입니다. 입장료 없음.
종합안내센터 문을 통해 들어 가면 삼강주막까지 넓은 공지에 공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엽전조형물은 조선말기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들의 숙식처를 제공하던 삼강주막의 활기찬 상업활동을 표현한 상징조형물이다.
주막터로 실제 음식을 팔고 있습니다.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삼강주막 뒤에는 수령 약 500년인 회화나무가 서 있어 옛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화화난무 옆에는 들돌이 있는데,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농부(어른)로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삼강주막 뒤로는 옛 나루터 가 있던 지역이 나온다.
삼강(三江)은 예천 회룡포를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과 문경에서 발원한 금천이 삼강나루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 나오는 낙동강과 합류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예로부터 삼강은 한양 가는 길목으로 문경새재를 넘는 선비나 장사꾼은 반드시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여기에 소금배 등이 낙동강을 오르내리면서 삼강나루에 자리 잡은 삼강주막은 늘 장사꾼과 길손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 차례나 오갈 만큼 분주했단다.
삼강주막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옛정취를 생각하게 하는 관광단지로 개발되었다. 우리나라는 50년만에 급속도록 발전 한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자랑스런 나라다.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격은 세대 가 나 자신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옛 추억을 찾아 나서는 이유다.
막걸리 한주전를 마시고 나무그늘 평상에서 뒤척이다 낮잠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삼강주막에서 굴다리 반대지역에 삼강문화단지를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삼강주막에서 삼강문화단지 방향으로 가다보면 고풍스런 삼강주막마을 송암고택을 볼수 있습니다.
삼강리 `새샘`400년전 (1620년경) 청주 정씨 삼강파 입향조이신 청풍자 정윤목(1571~1629)선생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먹는 물이라 강조하시고 현 위치에 샘을 파게 하셨다. 당시에는 강물과 바가지샘이 4~5곳에 의존하며 살았으나 식수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이곳에 샘을 파서 명칭을 `새샘`이라고 하였다.
삼강문화단지는 정부의 3대문화권 문화생태관광기반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관광지 조성사업으로서, 낙동강 연안의 우수한 강문화와 생태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특화하고 기존관광자원과 연계하여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전시, 체험, 교육이 하나의 공간에서 가능하도록 조성된 새로운 가족형 문화체험 관광지구입니다.
공원내에는 예천에서 전해내려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조형물을 설치해 놓은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도시복은 조선조 철종때 사람으로 가정이 빈곤해 학문을 수련하지 못했으나 효행이 지극해 살아생전 부모 섬김에 한 치의 거짓이 없어 명심보감 효행편에 실릴 만큼 지극한 효행을 실천했던 인물이다.
별동선생이 먼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주막에 들렀는데 주막에 앉아 밖을 보니 주인집 아이가 구슬을 한 개 가지고 나와 놀다가 마당에 떨어뜨렸는데, 그때 아이 옆에서 먹이를 찾던 오리가 먹이인줄 알고 구슬을 얼른 삼켜버렸다. 주인이 쫓아 나와 별동선생을 붙잡고 구슬(진주)을 훔친 구슬을 당장 내놓으라고 성내며 밧줄로 묶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관가에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별동선생은 기가 막혔으나 태연히 주인에게 “저 오리가 멀리가지 못하도록 내 옆에 같이 묶어 두시오. 그러면 내일 아침에 틀림없이 진주를 찾을 수 있을 것이요"라며 주인에게 청했다. 그렇게 밧줄에 묶여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어 오리가 똥을 누자, 별동선생은 주인을 불러서 “오리의 똥 속에 구슬(진주)이 있으니 찾아보라” 말했고, 주인은 똥 속을 뒤져보니 진주가 그 속에서 나오자, 주인은 무릎 꿇고 사죄하며 “왜 어제는 아무 말도 안 했느냐?”고 물었다. 별동선생은 “내가 어제 말했더라면 아마 당신은 저 오리를 죽여서 확인을 했을 것이오. 그런데 내가 하룻밤만 고생하면 진주도 찾고 오리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 아니요!” 라고 말했답니다. 이렇게 윤상선생은 침착성과 참을성을 가지고 난처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약포 정탁 대감에 얽힌 일화로 꿈에 용이 꿩알 만한 돌을 주면서 이 돌을 파던 우물 속에 넣으면 물이 날 것이라고 하여 우물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일화로 이 약포대감의 우물은 현재까지도 예천읍 고평리에 중간샘 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단다. 이외에도 몇군데 설화조형물이 있는데 생략하고,
강문화전시관으로 향한다.
강문화전시관 주변에 기와를 이용하여 독특하게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강문화전시관은 낙동강의 자연과 예천의 역사, 문화, 사람의 다큐멘터리 존(zone)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자연의 다큐멘터리라는 주제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예천과 낙동강의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과 인류와 자연환경의 상호관계에 대해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두번째는 역사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예천을 빛낸 역사적 인물과 삼강 물길을 형상화한 공간에서 물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가는 곳입니다.
세번째 문화의 다큐멘터리는 예천은 농요와 활문화가 발달하여 통명농요와 공처농요가 있으며, 예천읍 청단놀음 또한 중요한 민속놀이로 보호받고 있다.
예로부터 활의 고장으로 활 제작의 장인이 예천 출신이란다.
예천 용문사 윤장대 모조품으로 국보 제328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번째 사람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사람냄새가 풍기던 삼강리의 푸근한 정취를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500여 년 동안 줌막을 지켜온 회화나무 앞에서 감성적인 샌드아트 영상을 감상하고, 삼강을 따라 먼 길을 떠나던 나그네들과 뱃가할매 유옥연 주모의 이야기가 흐르는 삼강주막의 따뜻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사진으로 만 볼 수 있는 희귀사진을 몇장 가져와 본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풍경. 강가나 냇가 인근에 살았던 분들이나 이렇게 빨래를 했지, 대부분 마을 우물에서 빨래를 하였다.
사문진 나루터
강정 나루터를 건너는 여학생들의 소풍행열.
낙동 나루터.
강문화전시관을 관람한 후 삼강주막단지로 돌아오는 길에 기와집을 발견하고 답사를 한다. 삼강강당은 조선 선조 때 호종공신 약포 정탁 선생의 셋째 아들 청풍자 정윤목이 벼슬을 사양하고 후진을 양성키 위해 세운 사설 학원으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강당채와 학당채가 있으며,
강당의 벽에는 19세의 약관으로 부친을 따라 수양의 백이숙제묘를 참배하고 돌아오면서 모사해온 `백세청풍` 4자를 강당벽에 편액해 놓았다.
옛날 선조들이 주막과 나루터에서 쉼과 여유를 가졌던 것처럼 잠시 쉬며 힐링할 수 있는 예천 삼강문화단지를 관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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