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여행 하회마을 안골태호 2024. 6. 23. 06:53 2024년 5월 29일 안동 하회마을은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경북 양동 마을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근 24년만에 재방문 하였더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마을어귀 주차장에서 도보로 하회장터를 가로질러 매표를 한후, 셔틀버스승를 탑승 후, 하회마을 입구승강장에서 하차 후 본격적으로 하회마을을 답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1.2㎞로 셔틀버스가 수시로 다니며, 도보코스도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자랑스럽습니다. 하회마을은 중심 안길을 경계로 북촌 지역과 남촌 지역으로 나뉜다. 마을길을 따라 마을중앙으로 들어간 후 만송정이 있는 뚝길을 따라 돌아 나오는 방향으로 관람을 하여 보겠습니다. 우측 중앙으로 삼신당방향으로 들어 갑니다. 이정표도 잘되어 있으나 매표시 꼭 팜플렛을 챙겨 오면 답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류성룡의 9대손인 류고목이 1836년 지은 하동 고택이다.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 염행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염행당 고택 대문간 앞 골목의 모습입니다. 하회마을의 충효당과 함께 하회마을의 남촌 지역을 대표하는 살림집으로 1797년 유기영의 조부인 유치목이 건립한 주택이다. 유치목이 건립할 당시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정침, 별당, 사당, 새사랑채, 대문간채, 헛간채, 방앗간채, 장고방, 화장실 2동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었는데, 1953년 소실되어 사당과 별당과 대문간채만 있던 것을 2011년 정침과 방앗간채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중심부 북촌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화경당정문 모습입니다. 유도성이 1864년(고종 1)에 건축하여 수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남향한 一자형 대문간채와 ㅁ자형 몸채, 一자형 사당간채, 그리고 서남향한 별당채로 구성되었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서쪽 3칸이 광이고, 대문간 1칸, 그 동쪽으로 광 2칸과 외양간 1칸이다. 대문간 안전펜스앞에서 사랑채만 보고 갑니다. 화경당에서 삼신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입니다. 마을담은 판담이 대세이나 새로 짓는 경우 흙돌담으로 짓기도 한다. 하회마을 중심에 있는 삼신당 신목입니다.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로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이 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재를 지낸다.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큰 종갓집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류운룡 가문이 사는 집이다. 입암 류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류중영은 류운룡의 아버지이다. 양진당은 류운룡의 6대손 류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생가이다. 1964년 11월 1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14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입구부터 많은 사람으로 대문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규모는 총 52칸이다. 행랑채에 달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대청 앞에 마주서게 되며 이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대청 정면과 측면에는 난간이 있는 툇마루가 있다. 충효당 대문채 앞에는 1999년 4월 21일 영국 여왕인 에리자베스 2세가 하회마을 방문 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다. 그러고 보니 여왕이 오시기전에 이곳을 방문했으니 24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작천고택은 유시주의 집으로 하회마을 북촌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동남향의 一자집이다. 작천이라는 이름은 류도관이 이집으로 이사오기전 살았던 문경 작천리의 마을 이름에서 따왔단다. 정면 5칸, 측면 1칸반 크기의 이 집은 서쪽부터 부엌 1칸반, 안방 1칸, 대청 1칸, 건넌방 1칸을 두고 이들 앞에 개방된 반칸폭의 퇴를 두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하회마을은 시선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골목안 풍경이 나타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고택들이 줄지어 서있는 골목에서 나와 만송정숲으로 향한다. 만송정 숲은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돌아 흐르며 만들어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조성되어 있다. 조선 선조 때 문경공 류운룡이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그러나 현재의 숲은 약 100년 전에 다시 심은 것으로 류운룡의 후손이 만송정비를 세워 기록을 남겨 놓고 있다. 하회란 문자 그대로 강물이 마을을 돌고 있다는 의미다. 강변에 서서 마을과 강 너머를 번갈아 돌아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시간 속에 있는지 새삼 묘한 기분이 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시선이나 지금 현재의 시간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곳이다. 강 건너 기와지붕이 보이는 건물은 겸암정사다. 이정도의 강폭은 우습게 건너갈수 있다. 국민학교 5학년까지 경기도 양평에 살았다. 허구한날 한강에서 놀았던 나였다. 강건너 땅콩서리에 헤엄쳐서 수없이 건너 갔으니까. 부용대는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의 부용은 연꽃을 뜻하며 하회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 같다는 데서 유래했단다. 부용대에서 강가로 쇠줄이 보이는데, 이선들이 무엇인지? 조선 후기부터 전승된 ‘하회선유줄불놀이’로 전통 방식으로 매듭지은 새끼줄에 소원 등을 담은 낙화봉(숯 봉지)을 매달아 하회마을 맞은편 부용대 절벽에서 낙동강을 가로질러 하회마을 만송정에 연결해 불을 붙이는 것이다. 양반가의 고택과 어울려 그 주위로 평민들이 살았던 흙집과 초가집 등이 있어 꽤나 조화롭다. 독립운동가 류창우 생가. 독립을 위한 공채모집위원으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7세에 순국하였다. 지금은 흔적도 없는 하회마을 나루터 `도포`다. 역사마을은 모두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오랜 전통에서 기인한 기품이 넘치는 곳이다. 정자, 서원 그리고 전통적 주거 문화가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하회 마을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독특한 문화를 이어 온 독특한 곳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교육관.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 유산 보호 협약 정부 간 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하회 세계탈박물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2000여 점의 탈을 소장하고 있다. '가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전시실은 하회탈을 비롯하여 황해도의 봉산.강령.은율 탈, 서울.경기도의 산대 탈, 경상도의 야류, 오광대 탈등 우리나라 각 지역의 놀이용 탈과 의식용 탈, 한국의 옛 탈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측으로 국보 제121호 하회탈이 전시되어 있다. 2전시실은 중국의 나희 탈, 사자 탈, 벽사 탈, 기복 탈과 인도네시아 발리의 바롱 댄스에 등장하는 바롱과 랑다, 태국 궁중 극에 사용되는 콘 탈 등이 전시되어 있다. 3전시실은 일본의 노가면, 인도의 쵸우가면, 네팔의 신화가면, 스리랑카 질병 치료가면, 네팔 히말리야의 벽사가면, 말레이시아와 내몽골의 참가면 등이 전시되어 있다. 4전시실은 이탈이아 전통가면극인 코메디아 텔라르테 가면, 베니스의 카니발 가면, 스페인 가면, 할로윈 가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5전시실은 아프리카 일대의 다양한 부족들의 탈이 전시되어 있다. 수석까지 문화와 역사등 많은 것을 접한 하루였습니다.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온 하회마을을 답사하였습니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궁금하면 가보자 '경상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용대 (22) 2024.06.24 병산서원 (18) 2024.06.24 예천 삼강문화단지 (14) 2024.06.23 회룡포 (13) 2024.06.20 불일폭포 (20) 2024.06.05 '경상도 여행' Related Articles 부용대 병산서원 예천 삼강문화단지 회룡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