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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경산 불굴사

2024년 8월 21일

팔공산 남쪽 무학산(588m) 자락에도 팔공산 갓바위와 짝을 이룬다는 약사여래불이 있는 천년고찰 불굴사가 있다. 불굴사 홍주암에는 김유신과 원효대사의 기도처로 알려진 원효굴이 있다기에 찾아보기로 한다. 불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며, 신라 신문왕 10년(690) 에 옥희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대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여러 차례 중창 불사를 펼쳤으나 1739년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떠내려가 삼층석탑만 남게 됐다고 한다.

 

 

 

 

갓바위에서 내려오다 보면 신한교차로에서 직진을 하면 불굴사에 다다를수 있다. 갓바위공영주차장에서 불굴사까지 약 9km다. 불굴사는 일주문과 천왕문이 없이 주차장에서 곧바로 계단을 오르면 경내로 들어간다.
약사보전 적멸보궁 그 앞으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불굴사는 자연 석굴 안에 부처님을 모셨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지금은 약사보전 안 자연석 위에 세워진 약사여래불이 있을 뿐이다.
불굴사 약사보전 전각 안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석불입상)은 1736년 산사태로 묻힌 것을 조계산 송광사의 노스님이 중건하면서 현몽으로 찾아냈다 한다.
석불입상은 땅 위 화강암에 2단의 받침대를 조성하고 연화대좌위에 불상을 세웠는데 전체 높이는 233㎝의 큰 석불이나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했다. 얼굴 부분은 이목구비를 다시 조각했으며 왼손 또한 분실돼 현재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불굴사 약사여래불은 6㎞ 떨어진 팔공산 관봉의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마주보고 있는 부부라 해서 영험한 불상이라는 소문이 났다.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이고 불굴사 약사불은 족두리를 한 여성 모습을 하고 있어 음양의 이치에 맞춰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이한 것은 불굴사 주변에 우기가 있으면 석불(약사여래입상) 얼굴에 땀이 나고, 큰 비가 오기 전에는 불상의 온몸이 흠뻑 젖는다고 한다. 지금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거나 하면 반드시 석불의 몸에 습기가 가득 찬다고 한다.
약사보전 좌측으로 아름답게 꾸민 정원끝에 관음전이 있다.
불굴사 관음전
전해 내려오는 불굴사 설화에 따르면 유생들이 절을 놀이터로 삼고 횡포를 부리던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불굴사도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어느 날 점잖은 선비가 와서 “산 너머 솔밭에 큰 거북 돌의 눈을 빼면 못된 유생들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일러줬다. 승려들이 이 말을 그대로 믿고 거북의 눈을 빼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더니 대 홍수가 일어나 절이 매몰됐다고 한다. 이후 전라도 송광사 노스님이 작은 암자를 복원하면서 중건했다. 1988년 주지 스님이 번성하던 시절의 옛 대웅전 초석을 찾아낸 뒤 그 자리에 적멸보궁을 짓고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단다.
불굴사 적멸보궁 앞 삼층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쌓아 올려 9세기 통일신라 시대 석탑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보물로 지정됐다. 높이는 7.43m이며 상륜부 일부가 없어졌으나 대체로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지붕돌은 넓고 추녀 밑이 수평이며 각 부의 비례는 서로 균형을 이뤄 아름다운 석탑이다.
전멸보궁 전각안에서 통유리를 통해 전멸보궁에 기도를 드린다.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요사채 좌측끝 1칸을 지장전으로 꾸며 놓았다.
불굴사 산령각
홍주암과 마주 볼 수 있는 언덕 위에는 최근에 미륵불이 조성됐다. 미륵불은 홍주암과는 달리 절 앞마당에서 훤히 보이는 곳이지만 적멸보궁에서 10여분은 올라가야 한다.
불굴사에서 홍주암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초입 주차장에서 우측 은행나무 밑 김유신 동상이 있는 곳에서 곧바로 위로 50여m 임도길을 따라가다 보면 붉은 채색이 된 4층 형식의 암벽에 붙어 있는 그림 같은 암자를 볼 수 있다. 소나무 숲과 돌탑, 바윗길로 쌓인 108계단을 오르면 바위에 붉은 글씨로 홍주암이라고 새겨있는 곳을 만나게 된다. 들어가는 입구이다.
또 다른 길은 불굴사 적멸보궁 뒤 사리탑을 지나 곧바로 산길의 108개의 철제 계단을 올라 30여m만 더 가면 홍주암 표지가 나온다. 필자는 적멸보궁에서 올라가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왔다.
불굴사 창건 계기가 된 홍주암에도 원효굴이 있다. 특히 이곳은 원효 이전에 삼국 통일의 중추적 역할을 한 김유신(595~673) 장군이 17세 때 수련하고 삼국 통일로 이어졌다고 하며 그 이후 원효(617~686)가 수련(668년)하고 690년 옥희 대사가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원효굴에서 한 층을 더 오르니 제일 상층에 위치한 기도처인 독성각이다.
천태산 꼭대기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 않고 홀로 깨달아 자유경지에 든 성자를 독성이라 부르며 나반존자라 일컫는다. 나반존자는 수행을 완수해 가장 높은 도력을 지닌 부처님의 제자 16나한 중 신통력이 제일 뛰어난 제1존자라고 한다.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알려져서 인지 독성각 앞에는 소원문들이 가득하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팔공산과 시내가 아스라히 보인다.
홍주암 표지바위에서 한 층을 올라가니 신비스런 천연 석굴 바위 틈에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라는 글귀가 뚜렷하게 새겨진 천연약수가 있다. 구전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조성된 이 석간수는 김유신 장군이 이 물을 마시면서 삼국 통일의 염원을 기도했고 천신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어 삼국통일을 하게 됐다고 해 ‘장군수’라 불렸다고 한다. 물맛이 좋고 귀한 약수라 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다.
석간수 옆 바위 천장에 원효굴이라는 현판과 함께 기도처가 마련돼 있다.
석굴 석벽엔 석가모니불과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다. 1976년 석굴을 수리하다 신라시대 청동불상 1좌를 발굴했다 하니 석굴의 역사만큼은 가늠이 된다. 언제부터 홍주암이라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붉은 구슬’의 의미는 태양을 뜻해서 음의 기운을 가진 불굴사 경내에서 가장 먼저 양의 기운인 해(일출)를 마주하는 장소라고 한다.
한창 때는 50여 동의 전각과 12개의 부속 암자, 8대의 물방아를 갖추고 쌀을 찧어 승려와 신도들의 공양미를 한 대사찰이었으나 1736년(영조 12)에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퇴락되었다. 옛 불굴사의 번성하던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절을 폐허로 몰아간 자연재해가 얼마나 끔직한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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