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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문경 고모산성 . 토끼비리

2024년 7월 26일

경상북도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 교반은 ‘다리 근처’라는 뜻이다)부근의 고모산성은 동국여지승람에 한양을 잇는 교통로 중 가장 험준한 곳이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영남대로 옛길은 고모산성과 토끼비리(토끼벼루의 사투리)가 중심축으로 진남교반 위의 절벽을 넘어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의 소원과 집념이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전날 고모산성주변 대형주차장에서 야간경관조명을 보고 있습니다.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탐방은 3번 국도 진남2교 북단 진남휴게소에서 시작합니다. 진남휴게소 우측으로 넓다란 주차장이 있으며,
주차장 계단위로 올라가면 문경오미자터널 매표소가 있는데, 토끼비리와 고모산성 하고는 아무 연관도 없으며 오미자터널을 이용하실분은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여야 한다.
오미자터널은 1990년대 문경의 마지막 탄광인 ‘은성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버려진 540m 철로 터널을 지역 특산물인 오미자를 주제로 꾸몄다.
여러가지 조명과 장식이 어우러진 문경오미자터널은 토끼비리와 고모산성을 걷고 난 후 더위를 식히기 좋은 곳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터널과 신기한 트릭아트, 문경 지역의 특산물인 오미자와 도자기 등 판매 공간과 문화공간을 조성하였으며, 연중 평균 15~18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주차장에서 고모산성으로 오르다 중간쯤에 ‘토끼비리’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단순한 절벽이 아니라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벼랑을 일컫는 토끼비리는 토끼 한 마리 지나갈 만한 강 절벽을 따라 난 길이다.
토끼비리는 조선시대에 쌓은 석현성에서 영강 자락 산비탈로 이어진다. 토끼비리는 바로 석현성과 고모산성으로 이어진다. 두 산성은 이름만 구분돼 있을 뿐 실제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석현성은 조선 중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남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연결된 성곽의 길이가 385m에 불과한 작은 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정벌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길이 막혔을 때 토끼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줘 진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토끼비리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토끼비리는 약 2km, 그중 500m가량은 탐방객이 걸을 수 있게 정비돼 있다. 추락 위험이 있는 곳에는 목재 계단을 설치하고, 돌부리가 채이는 땅은 순탄하게 다졌다.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지만 아쉬움도 있다.
토끼비리의 바위가 무수한 발길에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그럼에도 토끼비리는 여전히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 옛길의 원형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길 중간에 관갑잔도(串岬棧道)라는 한시 안내판이 있다. ‘요새는 함곡관처럼 웅장하고, 험한 길 촉도같이 기이하네. 넘어지는 것은 빨리 가기 때문이요, 기어가니 늦는다고 꾸짖지나 말게나.’ 조선 초기의 문신 어변갑(1380~1434)이 토끼비리의 험난함을 읊은 시다.
몇몇 지점의 바위는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다.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을 정도로 셀 수 없이 오랜 시간을 흔히 억겁에 비유한다.
돌출한 석회암 바위가 짚신 바닥과 마찰하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하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그 길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가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쌓였을까.
토끼비리 잔도마루다. 고모산성 진남문에서 이곳까지 토끼비리의 500여m의 탐방구간이다.
잔도마루는 산줄기가 뻗은 고갯마루에 암맥이 돌출해 있는데, 이 부분의 바위를 깨 암석안부를 만들었다. 말 안장 모양의 이 안부는 영남대로상에서 가장 크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고 한다.
잔도마루 우측으로 진남교반 전망대(병풍바위 정상)가 있다.
진남교반전망대 즉 병풍바위정상 모습이다.
7년전에는 이곳에서 이런 모습의 전경을 볼 수 있었는데, 전망대 주변으로 나무가 자라나 멋진 풍경을 다 담을수 없다. 안내판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관리는 엉망이다. 다만 고모산성에서 진남교반을 볼 수 있으니 다행으로 여겨진다.
경북 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강 위로 교량 3개가 놓여 있다. 물길이 휘어지는 안쪽에 마을이 자리 잡았고, 여섯 개의 교량이 영강을 가로지른다. 둘은 3번 국도 교량이고, 또 다른 둘은 옛 국도 교량이었다가 마을 길로 활용되고 있다. 나머지 두 교량 중 하나는 신작로로 불리던 길의 일부였고,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도보 다리로 이용되고 있다. 바로 아래에 위치한 교량은 문경과 가은을 연결하는 옛 철길이었다. 강 오른편 산자락에 토끼비리가 숨어 있고, 산성 아래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니 진남교반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대한민국 길의 역사가 고스란히 응축된 길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산자락을 휘감으며 S자 모양으로 영강은 속리산 자락에서 발원해 문경을 거쳐 상주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물길이다. 진남교반은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 문경새재로 들어서는 관문인 셈이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에 부산(동래)과 서울(한양)을 잇는 간선도로다. 이렇게 좁은 길이 대로의 일부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당시로는 기술적 한계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예술성과 창의성을 가미한 자연친화적인 길이다.
길은 물과 산과 계곡을 건너 계속되는 하나의 긴 노선이다. 평지를 지나고 높은 산을 넘고 시원한 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계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길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반드시 끊기지 않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끼비리와 같은 잔도는 길의 연결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토끼비리를 뒤로하고 고모산성 진남문으로 향한다.
고모산성은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에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본성 1,256m, 익성 390m를 합해 총 1,646m에 달한다. 산성으로 서벽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모두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축조연대는 156년 이후, 2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서쪽과 남쪽은 윤강이 감싸고 있고 동쪽에는 조정산(810m)에서 뻗어 내린 험한 산등성이가 있다. 따라서 서쪽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으로, 나머지 삼면은 지세에 따라 성벽 안팎을 쌓는 협축식으로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길손의 휴식처인 주막거리를 옛 모습대로 재현해 놓았다. 문경 영순면 낙동강변에서 옮겨 온 주막은 ‘영순주막’이라는 본래 이름 대신 ‘돌고개주막’이 됐다. 돌고개는 석현을 한글로 풀어 쓴 명칭이다.
예로부터 길문화의 중심지였던 문경은 삼국시대부터 개척된 하늘재를 비롯해 조선시대 영남에서 서울 간 최단거리 길이었던 영남대로로 잘 알려져 있다.
1797년에 지었다는 성황당 주변에 수령 300~40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갯마루 부근에 있던 여러 채의 주막은 이제는 사라지고 꿀떡고개라는 이름만 보인다. 조청을 묻힌 꿀떡을 파는 가게도 있어 꿀떡고개로 불린다.
고모산성 주변은 각각 다른 시대와 다른 성격의 유적이 산재해 말 그대로 종합역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역사유적을 둘러보며 더위를 식히는 것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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