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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김유신 장군묘

2024년 8월 21일

경주 도심에서 형산강 서쪽 편에 자리 잡은 송화산.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의 묘역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김유신장군묘를 품고 있는 송화산은 경주국립공원 화랑지구로 숭무전, 화랑마을 그리고 가족 단위 피크닉 명소로 널리 알려진 흥무공원 등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흥무공원은 경북 경주시 충효동 9-2위치하고 있다. 삼국통일에 중추적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의 얼이 스며있는 곳이기도 하여, 역사 현장도 함께 방문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장소로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숭무전을 관람한 후 김유신 장군묘에 참배하러 간다.
흥무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처로도 활용되지만,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화랑정신이 스며 있는 곳이기도 하다. 흥무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장군의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흥무공원 돌비석 바로 옆에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수성 또한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라는 장군의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만고불변의 진리로 한 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명언이다.
흥무공원 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철책을 따라 일직선으로 쭉 가다 보면 김유신장군 묘소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올라가면 작고 좁은 지하통로가 보인다. 일명 '공포의 터널'이라 불리는 곳이다. 지하 통로 위로는 동해남부선 철로가 지나간다. 지하 통로를 지나다 보면 산속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까지 더해 으스스한 느낌마저 드는 곳으로 지나가기가 껄끄러운 곳이다.
흥무공원 지하 통로를 지나면 초록의 잔디가 깔린 아름다운 모습의 풍광이 펼쳐진다.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을 하는 사당인 숭무전과 부속 건물인 금산교육관, 금산재가 눈 앞에 펼쳐진다.
금산재 칼국숫집은 금산재를 관리하는 관리채로 사용되는 곳이다.
김유신 장군 재실로 알려진 경주 금산재(金山齋).
금산재 뒤 언덕에 100여년이 넘는 팽나무연리지가 있다.
금산교육관은 숭무전 건립 이전에 사당 역할을 하던 곳이다.
숭무전 홍살문 안으로 외삼문이 보인다.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드리는 제전이다.
숭무전외삼문 송화문은 굳게 잠궈져 있다.
사당입구 숭무전내삼문 충의문과 숭무전창건기념비가 자리한다.
사당 숭무전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숭무전 편액의 글씨는 김대중(金大中)(1924~2009) 전 대통령께서 썼다.
김유신 장군의 표준 영정이다. 김유신은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실의 후손으로 본관은 김해. 가야국 김수로왕의 12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532년(법흥왕 19)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구해왕이며 아버지는 대량주도독를 지낸 서현이다. 어머니는 지증왕의 증손녀이자 갈문왕 입종의 손녀인 숙흘종의 딸 만명이다. 김춘추와 결혼한 문명왕후가 그의 누이동생이다.
흥무공원에서 김유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송화산 구릉으로 올라가면 김유신 장군묘 앞 주차장이 있다. 얼마 전 방영된 MBC TV 예능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요즘 더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온단다.
주차장 무료, 매표소 입장료 2,000원.
주차장 윗쪽에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각이 있다.
비각 안 비석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595-673)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이다.
정문인 흥무문
엄숙함이 감도는 김유신 장군묘. 김유신 장군은 죽어서 왕으로 추존되었으며 그의 묘도 왕릉의 형식을 띄고 있다. 묘 앞에 어린이 키만 한 상석이 있으며, 봉분을 돌아가며 난간 둘레석과 12지신상이 장식돼 있다. 1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화려하고 장엄함이 느껴지는 무덤이다.
김유신 장군묘 앞 왼쪽에 1710년께 세워진 비석에 '태대각간 김유신 묘'라고 적혀 있다.
묘 오른쪽에는 1930년대 후손들이 만든 비석의 비문은 '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릉(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릉'과 '묘'라는 한자가 같은 위치에 드러나 있다. 김유신 장군이 뒷날 흥덕왕때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어 장군묘가 아닌 어엿한 왕릉이란다. 처음엔 묘로 새겨졌었다. 70년대 다시 보수하면서 맨 마지막 글자인 '묘(墓)'자를 지우고 횟가루를 발라선 '능(陵)'자를 새겨놓았는데 물을 뿌리면 옛 묘자가 선명히 드러난다. 비오면 글자가 달라지는 비석으로 소문이 나면서 '비석의 비밀'을 시연하는 물세례 받는 비석이다.
김유신 장군 묘에는 봉분을 둘러가며 12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묘역 둘레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은 경주에서 가장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어, 하나씩 돌아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장군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으니 당시로선 최장수를 누리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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