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도 여행

불국사

2024년 8월 22일

경주 하면 떠오르는 곳. 불국사는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창건하여 751년(경덕왕 10) 김대건에 의해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거주지에서 근 300km에 있는 천년 고찰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가슴설레는 관광지다. 다 합쳐서 열번도 더 방문하여 이제는 전각의 위치를 눈감고도 찾을수 있다.  

 

 

 

 

주차비만 2,000원 그동안 받아왔던 입장료는 폐지되었다.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일주는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다. 사찰에 들어가기 전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진리의 세계를 향해 일심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다.
정문인 일주문을 통과하니 왼쪽에 변함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관음송이 관광객을 반긴다. 관음송은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이다. 수령이 100년이 넘었다.
반야연지
해탈교 구름다리 위도 사진 포인트이다. 반야연지 주변에 계단식으로 만든 조그마한 폭포수도 있다. 조경에 공들인 곳이다.
반야연지 해탈교를 건너면 천왕문이다. 천상계에서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에 살면서 사천왕천의 동서남북을 관장한다.
천상의 수문장으로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을 광목천왕, 북쪽은 다북천왕이 지키고 있다.
천왕문에서 법당이 밀집되어 있는 곳까지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웬만한 절에서는 천왕문 뒤로 전각들이 줄지어 나타나는데, 불국사는 평지에는 조경을 하여 놓았고 전각들은 경사진 곳에 석축으로 다듬은 후 법당을 지었다.
불국사 경내 입구 대석단 앞에 동서방향으로 2쌍이 나란히 서있다. 두 쌍의 당간지주 가운데 서편 당간지주는 좌우 기둥의 크기와 제작수법에 차이가 있어 각기 다른 부재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국사  최고의 포토존은 누가 뭐래도 대웅전 길목의 청운교와 백운교다. 학창시절 이 돌계단 앞에서 ‘V’를 그리며 찍은 단체 사진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다. 현재의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건물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1970년대 초 복원하였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으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된 돌계단 다리이다. 아미타불과 보살들은 연화와 칠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관문인 안양문을 거쳐 극락세계를 오간다고 한다.
자하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다.
청운교와 백운교가 이어지는 다리 아랫부분은 무지개 모양으로 되어 있어 참 예쁘다. 더군다나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해져 몹시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불국사 대웅전 입구인 자화문의 화랑 좌측 끝에 있는 누각 `범영루`이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보물 제1745호)은 불전과 불탑 등을 배치하기 위해서 조성한 구조물로, 경사진 지형 여건에 따라 대웅전과 극락전 회랑 외곽에 자연석과 가구식 석축을 상·하 2단으로 조화롭게 축조했다. 장대석재로 구획한 공간에 여러 형상의 석재를 채워 쌓은 가구식기법과 석난간의 구성 등은 종합예술로 국내·외 유일무이한 구조다.
가로로 배치된 전각의 왼쪽에 안양문이 있다. 영화교와 칠보교를 올라가 극락전으로 통하는 중문이다. 자하문이나 안양문은 상징적으로 설치해 놓은 것 같다.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다. 이 석단은 그 아래와 위의 세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이고, 그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나타낸다.
가로로 배치된 석단 좌측으로 불국사 중심 법당들이 모여 있는 중문으로 들어간다. 중문 좌측은 유물보호각이다.
사찰 경내로 들어가 처음 만나는 곳이 극락전이다. 극락전은 현판 뒤에 꼭꼭 숨은 돼지 조각상이 관람 포인트이다. 2007년 우연이 발견되어 세인의 관심을 받았던 곳이다.
누구나 불국사를 찾으면 극락전 앞에 있는 금빛 복돼지상을 먼저 만져본다. 부귀를 상징하는 이곳의 복돼지는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지혜롭게 욕심의 끝을 알고 절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국사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훼손됐다가 조선 후기 재건됐지만 어떤 이유에서 돼지가 처마 밑에 조각돼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극락전 현판 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극락전을 뒤로하고 불국사의 상징인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 앞마당으로 향한다.
동쪽 탑이 다보탑, 서쪽 탑은 석가탑으로 마주보고 서 있다. 다보탑은 한눈에 봐도 화려해서 쉽게 그 매력에 빠져들고, 절제미를 보여 주는 석가탑은 보면 볼수록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대웅전  681년 4월 8일 낙성되었으며 창건 당시의 유구 위에 영조 41년(1765)에 중창된 건물로 중창기록과 단청에 대한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 불국사 대웅전(보물 제1744호)은 석가모니 부처의 불국토를 표현하는 중심 불전으로, 건물 하부의 초석과 가구식 기단 등은 신라 시대 조성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 안의 중앙 정면에는 수미단이 있고, 그 위에 목조석가삼존불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하고, 좌우 협시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있으며, 삼존불 좌우로 가섭 아난 두 제자의 상이 있습니다.
자하문의 화려한 문양
다보탑은 십자 모양의 평면 기단 사방에 돌계단이 있는데, 그 위에 네 개의 사자상이 있었다 한다. 안타깝게도 셋은 일제에 의해 약탈되었고, 현재 하나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삼층석탑으로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석가탑은 언제 봐도 그윽한 멋을 자아낸다.
석가탑은 다보탑과 함께 불국사를 대표하는 석탑으로, 742년 불국사가 창건될 때 건립됐다.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1966년 9월, 도굴 때문에 훼손된 석탑을 그해 12월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과 사리장엄구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대웅전 뒤에는 `무설전`으로 말로써 경론을 강술하는 곳 임에도 무설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라고하는 수단으로써는 도달 할 수없는 언어도단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란다.
무설전 을 지나면 제법 가파른 계단 끝에 불국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이 있다.
관음전은 조선 초기(1400년경) 건축양식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은 이승에서 고난받는 중생의 소리를 눈으로 보고, 그 고난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이와 같은 관음보살의 신앙은 대표적인 민간신앙의 하나다.
관음전 좌측으로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다.
법당안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모셨는데 국보 제 26 호로 8 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비로전 옆에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불국사 사리탑`은 보물  제61호로, 1905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단다.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상을 모신 곳이다.
열여섯 분을 모셨으므로 16나한전 또는 16응진전이라고도 한다.
`범종각`범종은 법구사물중의 하나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도구이며, 시간을 알리거나 공양과 예배를 알리는 기구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리던 불국을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옮겨놓은 것이다. 불국을 향한 신라인의 염원은 세 가지 양상으로 이곳에 나타나 있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이다. 이 셋은 각각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일곽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일곽과 비로전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놓았다.

 

'경상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왕산  (4) 2024.11.02
경주 분황사  (1) 2024.10.29
석굴암  (2) 2024.10.29
무열왕릉  (0) 2024.10.23
동궁과 월지  (2) 202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