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2일
솔직히 석굴암에 다녀온 후 분노를 느낀다. 매번 그렇다. 인자한 석가모니 미소를 보면서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멋진 기념사진을 찍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지만, 석굴암 법당앞에 서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 석가모니 부처는 유리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석가모니 보살의 아름다운 모습과 천정의 정교한 조각 등은 돌기둥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유리벽을 통해서라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는 비구니의 돼지 목따는 소리로 ‘사진촬영 절대금지’라며 위압적으로 말한다. 석굴 입구에 유리벽을 설치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리벽이 없어 사람들 출입이 많아지면 사람 숨결에 묻어나는 습기로 인해 석굴에 이슬이 맺히고 그게 누적되면 보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것은 사정이 다르다. 플래시를 터트리며 찍으면 빛에 의해 석굴암 조각이 손상 입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래시를 작동시키지 않고 찍으면 그다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게 사진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숱하게 전시돼 있는 국보와 보물을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사진 찍도록 허용돼 있다.
불국사 주변에서 시작한 석굴로는 총 길이는 8Km이며 지형상 굴곡이 많아 곡예 운전을 해야 한다. 왕복 2차로로 설계되어 있으나, 언제 반대편 차선에서 차량이 올지 몰라 차선을 침범하면 사고의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빈자리가 많다. 평소 같으면 주차할 공간이 없어 애를 먹던 곳이다. 주차비 2,000원.
토함산의 상징처럼 보이는 불국대종각이 세워져 있다. 불국대종각 중앙에 제법 큰 통일대종이 보인다. 여기에서 타종하는 종소리는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은은하게 토함산 전체로 울려 퍼진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이 종을 울리는 사람은 번뇌가 사라지며 지혜가 생겨나고, 고통을 여의며 정신통일이 쉽게 이루어진다는 타종의 의미가 있단다.
석굴암을 보려면 그동안 1인당 6000원으로 비싸다는 생각이 굴뚝 같은 곳 이였지만 지금은 무료다.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어차피 그 돈은 국민의 돈이다.
매표소 옆으로 토함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석굴암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기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건물), 종묘(사당)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석굴암 주차장에서 석굴까지는 도보로 10여 분 거리이다. 다행인것은 푸른나무들이 햇빛을가려 무더위를 반감시켜준다. 거기다 나무들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는 동해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석굴암 가는 길 중간지점에 제산 최세화가 쓰고, 석굴암 연구회에서 세운 비석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서 안 될 작품으로 경주의 불상을 갖고 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 불상이다." 세운 지 30여 년이 지나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석굴암 불상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내용이다.
석굴암 주 앞마당에 도착을하여 묘지같은 둥그런 석굴암의 상봉을 올려다 본다.
불국사와 같은 시기 건축을 시작한 석굴암의 본래 이름은 '석불사'였다. 해외 여느 자연석굴과는 달리 화강암을 가공해서 만든 인공석굴이다.
석굴암 삼층석탑에 가려면 종무소에 들러 종무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움직여야 한다. 먼저 출입부 대장에 간단한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나면 위치를 알려 주는데 스님들이 수도를 하는지 아무도 없다. 삼층석탑은 포기하고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석굴암으로 향한다.
석굴암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절마당에서 좌측 돌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중간에 기존 석굴암 보수공사시 교체되었던 석물이 있다.
석굴암을 수리(1913 ~ 1915, 1962 ~ 1964)할 때 교체된 구부재들과 기타 주변 석물들로 신라인들의 손길이 스며있는 귀중한 유물들이다.
석굴암 법당으로 본존불은 예전에는 없던 유리막에 갇힌 채 여러 인공장치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다. 본존불에 이슬이 맺히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 공기를 차단하고 습도를 유지하는 장치다. 일제 강점기를 전후해 몇 차례 잘못된 보수공사 탓에 그간 토함산 자락을 지켜온 세월보다 훨씬 짧은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일들로 본존불은 이런 처지가 됐다. 안타까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일반 관람객은 힘든 길 참아가며 멀리서 왔건만 본존불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분 정도에 불과하다. 석굴암의 진면목을 관람객들이 자세히 느끼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석굴암은 평소에는 유리막으로 가리어진 곳에서 관람을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하다 보니 습도 관리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통제를 한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도 금지된다.
석굴암은 크게 전실, 주실, 통로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유리창과 연결된 앞쪽의 사각형 부분이 전실, 본존불이 모셔진 원형 부분이 주실, 전실과 주실을 이어 주는 곳이 통로다. 전실은 현실 세계를 표현한 예불의 공간이다.
석굴암의 중심은 부처의 세계를 나타내는 주실의 본존불이다. 본존불은 앉은키가 3.5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다행인 것은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 고 한석홍이 찍은 석굴암 내부를 촬영한 자료를 무료로 볼 수 있어 다행으로 여긴다.
불상의 부드러운 곡선미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전하고 눈을 감고 엷은 미소를 띤 자비심 느껴지는 표정이 생불을 대하는 듯 하다. 석굴사원을 건립한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석굴암)을 창건하였다. 단단하고 거친 화강암으로 부처님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백미라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걸작품 중 하나이다.
화강석으로 돔 천장과 원형 홀 얼개의 인공 석굴을 쌓고 그 안에 권위와 온화함을 겸비한 본존불을 중심으로 숱한 보살과 제자들, 사천왕상과 금강역사상, 팔부중상 등 신상들까지 모았다. 조각하기 가장 어렵다는 화강암 산에 신라 장인들이 불교적 우주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구축한 것은 인류 문화사의 경이로운 성취라 할 만하다.
석굴암 천장 꼭대기, 연꽃 모양 덮개돌이 세 조각으로 쩍 갈라져 있다. 그 옆으로 원을 그리며 끼워진 돌들이 마치 빛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경이롭다. 본존불의 왼쪽 어깨 아래에서 천장을 향해 한껏 치켜올린 앵글. 국내 문화재 사진 개척자로 꼽혔던 고(故) 한석홍(1940~2015)의 작품이다.
석굴암 조각의 백미로 꼽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얼굴.
석굴암 바로 밑으로 수광전이 있다.
석굴암은 항상 본래 있었던 그 자리에 있지만 굳이 찾아갈 곳은 아니다. 혹여나 지나가다가 아 여기에 석굴암이 있지 그래서 가 본다면 모를까.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인공석굴 구조에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정교한 계산 속에 배치된 아름다운 불상들은 종교성과 예술성에서 우리 조상이 남긴 가장 탁월한 작품이자 전세계의 종교예술사에서도 빛나는 유산이지만 가봤자 자세히 볼 수 없는 곳으로 변하였다. 불현듯 억불정책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