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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주산지

2024년 8월 22일

주왕산 상의주차장에서 약 9km떨어진 곳에 주산지주차장이 있다. 주왕산에 왔으면 주산지를 덤으로 꼭 챙겨 탐방할 곳이다. 주산지는 국내 물안개 감상의 대명사 격이지만 물안개가 없어도 물속에 떠있는 왕버들나무를 보면서 멍때리기 좋은 곳이다. 궁벽한 산골의 호젓한 저수지가 외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가 되면서부터다. 산과 하늘을 투명하게 담아낸 호수와 그 물 속에 잠긴 왕버들의 자태로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주산지만 다녀오기로 한다면 청송 나들목에서 차로 30여분 달리면 주산지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에 당도한다.
주산지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는 청송의 특산품 사과와 버섯 등 농산물을 파는 농민들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입구에서 주산지로 향하는 산책로는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산책로는 장애인과 노약자도 걷기 편한 무장애 탐방로다. 완만하게 경사가 있지만 숨이 찰 정도는 아니고 턱이나 계단이 없어 누구나 쉬이 오른다.
입구 진입로 양쪽으로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자생하는 식물과 낙엽송 그리고 주산지 내력에 대해 설명한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한 번씩 읽어보면 주산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주산지는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응결응회암이 아래에 있다. 응결응회암 위에 비응결응회암과 퇴적암이 쌓여 전체적으로 큰 그릇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비가 오면 비응결응회암과 퇴적암층에서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물을 흘러보내기 때문에 이처럼 풍부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가 없는 자리는 기암절벽이 채운다. 청송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이곳 저곳에 눈길을 주며 걷다보니 금세 주산지에 닿았다. 탁 트인 모습이 장관이다. 불뚝 솟은 봉우리가 겹쳐지며 골짜기를 만들고 그 앞으로 주산지가 펼쳐진다. 수면에 산과 하늘·구름이 모두 담겼다. 사진을 찍지 않곤 못 배길 만한 비경이다.
수중에서 자라고 있는 고목들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주산지는 준공 이후 오랜 가뭄에도 밑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산지 입구 바위에는 영조 47년(1771년) 월성 이씨 이진표 공 후손들과 조세만이 세운 주산지 축조에 공이 큰 이진표 공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인공 저수지이지만 준공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721년 조선 경종 때 축조되어 주변 지역 논밭에 물을 대는 농업 전용 저수지로 활용되고 있다.
주산지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풍광을 선보이는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청정한 느낌을 더한다.
탐방로가 저수지의 절반만 따라서 조성돼 있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끝에 닿는다. 짧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전망대와 쉼터가 있으니 오며가며 시간을 보내면 온몸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데크 전망대 바로 앞에 있는 한 그루의 왕버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사가 진행 중이다. 물속에 뿌리내리고 오랜 세월을 버텨온 자태가 고혹적이다. 본래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는 습한 기후를 좋아하지만 물속에서 숨을 쉬진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왕버들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자 호흡뿌리를 발달시켰고 그 결과 지금처럼 물에 잠겨 수십·수백년을 살았다. 안타까운 점은 몇그루가 여름철 강풍에 꺾여 부러졌다는 것. 살아남은 일부도 수령이 오래돼 기세가 많이 약해졌다. 고사가 진행 중인 나무도 있다고 하니 볼 수 있을 때 실컷 즐겨야 한다.
주산지 감상의 최적 포인트는 300년 수령의 수중 왕버들이 서 있는 곳으로, 산책로 끝자락주변에 있다.
물가에는 30여 그루의 능수왕버들이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물속에 뿌리를 수백 년씩 내리고 서 있는 왕버들의 생명력도 신비롭다.
길 끝에는 두번째 전망대가 있다. 이미 눈에 담은 풍경이지만 새로운 자리에 서면 다시 한번 절로 감탄이 터진다.
저수량이 부족하여 최상은 아니었지만 만족한 풍경이다. 나무와 물과 어우러져 연출하는 풍경은 차라리 선계를 담아내는 한 폭의 수채화에 다름없다.
병풍처럼 수려한 산세와 주산지 물속에 잠겨 있는 왕버들은 그동안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가을 단풍철은 주산지의 아름다움이 배가가 된단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왕버들의 환상적인 모습은 볼 수 없다.  전망대로 내려가는 계단에 잠시 앉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주산지 전경을 마음속에 아로새긴다. 어둑한 공간에 적막감과 평온함이 밀려온다. 잠시 지난 세월을 반추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이다.
주차장에서 고작 20여분 걸어왔을 뿐인데 깊은 산속처럼 고요하다. 자박자박 마른 흙길을 걷는 소리와 샤악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귓가를 스친다. 여름 한낮 주산지는 한가로운 편이다. 조용히 사색하면 걷기에 퍽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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