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고장이자 신라시대 문화 유적이 가득한, 대구광역시 군위군. 사방이 초록 초록한 평화로운 시골 마을 같지만, 그 속에는 천년이 넘는 신비한 역사가 가득하다. 그 중 제2석굴암을 관람하기로 한다.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한티재 정상에 올라서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 닿으면 남산마을 앞 노송들이 반갑게 맞아준다.군위 석굴암 맨 윗쪽에 양산서원은 부림 홍씨의 세거지로 고려 말의 충신 홍노와 조선조 좌참찬 겸 양관 대제학 홍귀달, 이좌좌랑을 역임한 대학자 홍언충을 배향하고 있다. 성현의 위패를 봉안한 묘우, 강당인 홍교당, 입나재, 구인재, 읍청루, 반무당 등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든 건물이 훼철되었다가 1897년(광무 1) 강당을 현재의 규모로 중건하였고 1989년 다시 중수하였다.군위 석굴암은 도덕골 골짜기 냇가 주변에 있다.양산서원 밑으로 석굴암 전통문화교육원이 있으며,요사채범종각 뒤로 석굴암 종무소 광명서원이 있으나 일반인은 통제되고 있다.9세기 경에 만들어진 `군위 석굴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제2석굴암은 493년(소지왕 15)에 극달화상이 창건했으며,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 자락에서 꽃 피워지고 신라 왕도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는데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 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삼존석굴이라 한다. 신라의 불교 공인(법흥왕) 전 핍박받던 시대에, 숨어서 오로지 불심으로만 수도하던 곳으로서, 8세기 중엽 건립된 경주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어단다.군위 석굴암 비로전 앞으로 모전석탑과 절벽에 제2석굴암이 보인다.모전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단층 탑신부를 조성한 특이한 형태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는 근래에 새로 쌓아서 원형이 변하였으나 본래의 탑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석굴 앞에 절이 있었으나 폐허가 되고 당시의 주춧돌만 남아 있다. 1989년 복원사업으로 선방·산신각·종무소·법당·소하천 등을 차례로 증개축 하였다.군위 석굴암 비로전비로전 내부.팔공산에서 뻗어내린 학소대 절벽 자연동굴속에는 통일신라시대 초(8세기)에 조성된 석굴사원 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은 경주 석굴암보다 조성 연대가 100년 가까이 앞선 것이다. 높이 4.25m, 너비 3.8m의 자연석굴 안에 높이 2.9m의 본존불을 포함한 세 석불이 모셔져 있다.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온화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신라 조각예술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불상 바로 앞까지 계단이 놓여 있지만 관람객은 올라갈 수 없고, 아래 절 마당에서 올려다봐야 한다. 공식 명칭은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이다.경주 석굴암 석굴보다 100년 정도 먼저 만들어진, 국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경주 석굴암 석굴 조성에 참고를 했다고 한다. 석굴이 유명하기도 하고, 석굴암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제2석굴암" 또는 "군위 석굴암"이라고 하는데, 100여년 먼저 조성되었다면 제1석굴암이라고 하지 왜 굳이 제2석굴암이라고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