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일
함양 선비문화탐방로에는 과거 선비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함양군 서하면 화림동에 위치한 화림계곡은 영남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향하기 위해서 꼭 지나쳐야 했던 길목으로 아름다운 정자와 평평한 너럭바위가 자아내는 멋진 풍경 덕에 팔담팔정(八潭八亭)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예로부터 화림동은 '정자문화의 보고'라 알려졌다. 지리산 언저리의 화림계곡은 총 7개의 정자가 연결된 6km의 구간과 4.1km의 구간 등 총 두 구간으로 나뉘어 천천히 거닐며 옛 선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된 곳으로, '정자탐방로'라고 이름 붙여진 1구간은 거연정에서부터 농월정까지 이르는 코스를 탐방한다.
대부분 거연정에서 남강천을 따라 농월정으로 탐방을 하는데, 농월정에서 탐방을 시작한다.
농월정 주변은 함양군에서 국민관광 단지로 조성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주차비와 입장료가 없다.
주차장에서 상가지역으로 들어간다.
상가지역을 벗어나면 너럭바위가 펼쳐진 농월정 앞 풍광이 다가온다. 건너편에 있는 농월정으로 건너 가기에는 유속이심하고 깊어 건너갈 수 없다. 농월정에 꼭 가실분은 주차장에서 마을쪽으로 가다보면 구름다리를 건너 접근할 수 있다.
수백 명도 너끈히 품을 수 있는 너럭바위 사이의 맑은 못이 야밤의 달을 희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농월정이다.
상가지역에서 계곡길로 이어지는데 나무데크가 설치돼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아름다운 미인송에 눈길이 간다.
농월정은 2003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주춧돌이 남아 그곳에 농월정을 다시 지은 것이다. 푸른 물이 소리의 파도를 타고 흐른다.
남덕유산(1508m)에서 흘러내려와 함양 서상면·서하면을 거쳐 안의면을 지나는 물줄기가 금천(남강천)이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경호강의 지류다. 선인들이 일찍이 ‘안음(안의현의 옛이름) 삼동’으로 불렀던, 풍광 좋은 세 골짜기(화림동·심진동·원학동) 중 하나인 화림동 계곡이 이곳이다. 거연정·동호정·농월정 등 함양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정자들이 화림동 물줄기에 다 있다. 옛 선비들이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내려와 은거하며 소일하던 곳들이다.
농월정에서 데크로드를 따라 가다보면 서하교주변의 황암사를 잠시들려보는 것도 탐방로의 일부지만 생략하고 서하교입구에서 길을 건너면 사진과 같은 장소가 보인다.
거연정까지 남강천 좌측으로 탐방로가 이어져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긴 세월을 살아낸 나무들은 서로의 어깨를 짚어가며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로 하늘로 승천을 꿈꾸는 길을 따라 간다.
가을의 문턱을 알리는 낙엽이다.
마을 뒤편으로 황석산이 머리를 삐죽 내밀고 있다. 암봉 황석산은 해발 1,192미터로 황석산 봉우리와 계곡의 지형을 이용해서 만든 황석산성이 있다. 이곳은 영남과 호남을 잇는 요새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싸움이 있던 곳이다. 정유재란 때는 왜구 2만7천명이 쳐들어와 수천 명에 이르는 병사와 백성들이 죽음을 당했다. 황암사는 그 넋들을 위로하기 위해 숙종 때 지은 사당이다.
람천정주변의 모습이다.
람천정이 소박하고, 또 안온해 보인다. 작은 규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겸손한 정자다.
람천정 앞의 수교는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긴다.
이 데크 구간은 계곡 쪽으로 숲이 울창하지 않아서 계곡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걷는 중간중간에 이야기가 있는 정자들이 세워져 있어 지루하지 않다.
거대한 너럭바위에 세워진 경모정은 최근에 지어졌다.
호성마을로 들어선다.
호성마을위쪽으로 과수단지가 나타난다. 단감나무와 사과농장사이를 지나면 논 옆으로 너른 박석이 깔려 있다. 박석을 따라 올라간다.
노란색으로 뒤덮은 논 옆길로 가다가 이내 하천의 계단식 탐방로로 들어간다.
계곡옆 길을 따라 가다보니 길이 갈라진다. 우측 남강천으로 내려간다. 계단위로 올라가도 동호정근처에서 길은 만난다.
징검다리를 건너 솔숲을 따라 가며는,
솔숲에 쉼터가 있으며,
솔숲에서 나오면 엄청난 너럭바위 지대를 만나게 된다. 강 가운데는 노래를 부르던 바위(영가대), 악기를 연주하는 바위(금적암), 술을 마시며 즐기던 바위(차일암)가 있다. 차일암은 해를 가릴 정도로 크고 넓다는 뜻이다.
수백 평에 이르는 널찍한 암반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속에 `동호정`은 남강천 담소 중 하나인 옥녀담 옆에 있다.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는 정자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의주 피란길에서 왕을 등에 업고 환란을 피한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1895년 그의 9대손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동호 장만리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자연을 벗 삼아 이곳 옥녀담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동호정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다곡교방향으로 탐방길을 이어간다.
탐방 안내판에서 화림동계곡에 자리한 정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팔담팔정(八潭八亭) 화림동 절경'이라 한다. 깊은 소 여덟개에 정자 여덟 개가 있는데, 그것을 숲속에 핀 꽃처럼 아름다운 절경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정자와 위치는 전해지지 않는다. 안내판에 나온 정자가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다곡마을 쉼터다.
다곡교.
다곡교를 건너지 않고 좌측으로 거연정으로 가는 탐방로가 있다.
얼마 걷지 않아 만나는 영귀정의 지붕에는 잡풀들이 원래 그곳이 제 땅이라도 되는 양 맹렬하게 뿌리를 박고 있었다. 영귀정의 쇠락한 모습이 명승지나 문화재로 선택되지 못한 정자가 맞닥뜨리는 운명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영귀정에서 테크길을 따라 500여m 가면 함양선비문화탐방로가 끝나는 거연정이 보인다. 남강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거연정을 바라본다. 팽나무와 느티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길을 지나 들어선 거연정은 물이 탁한 비취색이었다.
거연정은 조선중기 동지충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가 억새로 정자를 지어 머무르던 곳이라 한다.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거연정이란 이름은 '한가히 내 자연(개천과 돌)을 즐기다‘라는 뜻을 지닌 주자의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이라는 시구에서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