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화순을 대표하는 관광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화순적벽이다. 소동파의 적벽부로 유명한 중국 황주의 적벽보다 몇 백 배나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알려졌다. 화순적벽은 철옹산성과 동복호가 절묘하게 만나 빼어난 경치를 만드는 곳으로, 방랑 시인 김삿갓도 멈춰 세웠다는 그곳, '화순적벽'을 찾아 원시림과 붉을 빛 절벽의 조화를 감상하러 가본다.
사진은 화순적벽입구 주차장이다. `화순적벽버스투어’는 적벽셔틀(현장 예매)과 적벽투어(인터넷 예약)로 운영되고 있다. 화순적벽은 동복호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출입이 통제됐다가 2014년 10월 30여년 만에 개방됐다.
적벽셔틀버스에 승차를 하면 안전요원, 문화해설사 1명과 같이 동승하여 해설사의 입담과 함께 투어를 시작한다. 화순적벽 입구주차장을 출발하여 목적지인 망향정까지 4.8km의 거리를 셔틀버스를 이용하게 되며 약 30분이 소요 된다.
가는 도중에 백아산 하늘다리가 보이고 화순적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찍기 좋은 곳에서 약 5분간 정차한다. 전망대에서 동복호를 배경으로 적벽과 망향정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화순적벽은 동복댐 상류에서부터 7km 구간에 형성된 절벽경관으로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일명 노루목 적벽) 등 4개의 군으로 구성된다.
적벽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웅장함, 위락공간으로서 주변의 적절한 자연조건과 어우러지며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널리 알려진 명승지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 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절경을 보고 중국의 소동파가 선유하며 그 유명한 적벽부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적벽에 버금간다 해 적벽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깎아 세운 듯한 수백 척 단애절벽의 절경에 젖어 방랑시인 김삿갓도 이곳에서 방랑을 멈추고 생을 마쳤다.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좋아했던 상류의 노루목 적벽은 1985년 동복댐 준공을 계기로 30m가량이 물에 잠겼다.
전망대에서 옹성산넘어 백아산의 하늘다리도 조망된다.
옹성산은 최근 30년 만에 개방한 ‘화순적벽’을 품고 있는 산으로 적벽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처럼 아름다워 적벽동천으로 회자됐다.
중간 전망대에서 전체적인 적벽의 주변경관을 본 후 투어버스는 이곳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고,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적벽으로 들어가는 통천문을 통과한다.
안내요원의 지시대로 이정표가 가르키는 적벽방향으로 향한다.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망미정(望美亭)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정지준이 지었다. 당초 노루목적벽 밑에 있었으나 물에 잠기면서 옮겨졌다.
망미정의 원 현판은 도난당하고, 지금의 현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판을 썼다.
망미정 밑으로 적벽을 감상하는 곳 까지 간다. 적벽 가까이는 물에 잠겨 가지 못하고, 물가에서 적벽을 바라보는 데 만족해야 한다. 화순적벽은 동복호수와 철옹성산의 절벽이 동복천의 물에 비치는 경치를 말한다. 옹성산 서쪽 기슭은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생긴 절리와 수백m의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2017년 국가지정 명승지 제112호로 지정됐다.
신재 최산두, 석천 임억령, 정암 조광조, 다산 정약용, 방랑시인 김삿갓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 묵객들의 묵향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옛사람들이 보고 즐곁던 그때의 풍경은 아니지만 적벽앞에서 감상을 하고 있다. 해설하시는 분의 말씀으로는 오후에 이곳을 방문하여야 바위벽에 햇빛을 쏘면 적색으로 보여 적벽이라고 한다. 지금은 오전이라 회색을 띠고 있는 절벽이다.
십여년전에 산행한 옹성산에도 최근에 출렁다리가 만들어졌다. 천상 출렁다리때문에 산행을 다시하여야 할 빌미를 재공하고 있는 옹성산이다.
망향정주변의 모습이다.
15개 마을 587가구가 집을 비웠다. 정든 땅을 울며 떠났던 수몰민들은 노루목적벽과 마주한 자리에 망향정을 세웠다.
1985년 동복댐이 만들어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땅을 지키며 대대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마을은 물속에 잠겼다. 거대한 절벽의 절반도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놀이를 즐기던 백사장도, 나룻배도 옛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수몰지역 주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망향탑. 탑을 둘러싸고 수몰된 15개 마을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적벽동천(赤壁洞天)’이 새겨진 기념비. 적벽이 신선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망향정입구에 화순적벽 홍보관이 있다.
수몰되기 전 화순적벽의 비경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홍보관.
화순군지(1980년 발행)에는 수몰 전 사진과 함께 적벽의 아름다운 절경을 그림 그리듯 묘사해 놓았다. 동북댐으로 멱감고 물고기 잡던 추억과 풍류도 함께 사라진 셈이다.
천제단에서는 천제를 올리며 실향민의 향수를 달래는 곳이다.
창랑적벽 과 물염적벽은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들리는 게 가능하다.
창랑적벽 전망대.
창랑리에 있는 창랑적벽.
물염적벽의 건너편 언덕 위에는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세운 물염정(勿染亭)주변의 모습이다.
노루목적벽 상류 3㎞ 지점에 자리 잡은 물염정은 물염 송정순이 동복현감을 지낸 부친 송구를 위해 16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삿갓이 수시로 올라 시문을 즐겼다는 정자다.
생을 마친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의 여러 작품도 동복천과 옹성산의 조화로움을 노래한 것으로 화순군은 추측하고 있다. 1863년 사망한 그의 초분이 동복면 구암리 마을 뒷산에 남아 있고, 근래에는 물염정 앞에 그의 석상과 시비를 세웠다.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괴석과 노송, 계곡과 단애의 운치는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다만 꼭 화순적벽의 경치를 보고 싶으신 분은 가뭄으로 동북호 수위가 낮아졌을 때를 노려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