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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행

곡성 용산재

2024년 10월 26일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에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용산재가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으며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단소와 동상이 함께 있다.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신숭겸은 평산 신씨 시조다. 태조 왕건이 신숭겸과 함께 황해도 평산에서 사냥하던 중 그의 궁술에 감탄해서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을 내렸다고 한다. 927년 후백제 견훤과 고려, 신라 연합군은 대구 공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한다. 왕건이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자, 신숭겸이 기지를 발휘해 왕건의 갑옷을 바꿔 입고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후 신숭겸은 자신의 희생으로 왕을 살린 충절의 표상이 되었다.

 

 

 

 

10월의 하늘과 들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산과 들에서는 가을 향기가 짙게 느껴진다. 곡성 압록유원지를 지나 18번 국도를 따라 광주 방향으로 달리다 죽곡면사무소 부근에 대황강출렁다리 안내판을 본다.
출렁다리 입구에 죽곡토란을 알리는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으며 한쪽으로는 화장실등이 있으나 주차장은 없어 다소 불편하다.
표지판에 대황강이란 이름은 낯설다. 본디 보성강이란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던 강이어서 그렇다. 보성강이란 이름은 보성 땅에서 더 길게 흐르는 강이어서 붙여진 것이었다. 그런데 곡성 위쪽의 보성강 물길이 주암댐에 가둬지면서 댐 아래쪽 강의 이름이 군색해졌다. 곡성군이 이 강에다 강변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대황강이란 이름을 붙인 건 그래서 였단다.
총길이 185m(진입로 50m, 본 구간 135m)의 보도현수교로 지어졌다. 대황강 출렁다리는 강을 가로질러 곡성 죽곡면 태평리와 목사동면 구룡리를 연결한다. 순수한 관광 목적의 다리다.
보성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 느릿느릿 걸어본다. 국내 하천 내에 설치된 최장 길이 다리로 교각은 대황강에 주로 서식하는 은어의 머리와 대나무의 마디를 형상화했다.
보성강(대황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위에서 바라본 보성강 풍경이다. 출렁다리가 가로지르는 대황강은 맑고 풍부한 수량으로 잔잔히 흐르며 주변 산야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수질이 깨끗해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곳이다.
초록의 습지가 펼쳐진 대황강이야말로 아직 훼손되지 않은 순정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강이다. 강둑의 초지에서 소가 풀을 뜯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멱을 감다가 미루나무 그늘에서 혼곤하게 낮잠에 빠지는, 그런 강 이다. 보성강 발원지는 보성 일림산 선녀샘이다. 보성강은 웅치들녘을 지나 북쪽으로 흘러들어 곡성 압록에서 섬진강과 합류한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의 조형물.
압록유원지에서 주암댐까지 27.5km의 자전거길도 조성되어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강 건너 둑길을 따라 7㎞의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으며, 이길을 따라 2.4km에 용산재가 있다.
용산재 앞 주차장이 꽤 넓었다. 담장안으로 용산재 건물이 보인다.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마을은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이다. 신숭겸의 본래 이름은 능산으로 어려서부터 무예가 뛰어났던 신숭겸은 왕건의 부하가 되어 많은 공을 세웠고 고려를 세운 왕건에게 평산 신씨라는 성과 숭겸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게 되었다. 용산재는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에 세워진 제각이다.
용산재중건기념비 용산재는 장절공이 태어난 곳으로 덕양사와 함께 후손들이 제향하고 있는 곳이다.
용산재 정문 구룡문.
정문 구룡문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용산재가 보이고 좌측으로 진덕재, 우측으로 모충재가 있다.
5칸의 용산재는 조선 고종 5년(1868)에 부지를 마련하고, 고종 34년(1897)에 유허비를 세웠다.
용산재 내부에는 신숭겸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용산재뒤로 내산문 충절문이 보인다.
내산문 충절문
충절문안으로 들어서면 석축위로 용산단과 유허비각이 보인다.
좌측으로 용산단과 우측으로 유허비각.
장절공의 태를 묻었다는 곳에 단을 모은 용산단의 모습이다. 1929년 단을 설치하고 1960년 용산재와 구룡문을 지었으며 매년 9월 중정일에 제사를 지낸다.
고종 34년(1897)에 세웠진 장절공의 유허비.
신숭겸은 후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의 무신이자 대장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이름은 능산이다, 시호는 장절, 평산 신 씨의 시조다. 왕건과 함께 궁예의 부장으로 있었으나, 서기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중심으로 고려를 건국하는 역성혁명에 성공했다. 927년(태조10), 견훤과 치른 공산 전투에서 왕건과 갑옷을 바꿔 입고 왕건 대신 적을 맞아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이때 견훤의 군사는 신숭겸의 머리를 베어 곡성 태안사에 묻었고, 왕건은 머리가 없는 신숭겸을 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고직사와 전사청.
전사청
신숭겸장군을 ‘장절공’이라고 하는데 ‘장절’은 태조 왕건이 신숭겸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군에게 내린 시호이다. 시호란 큰일을 한 인물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칭송하여 국가가 내려주거나 다음 임금이 그 앞 임금에게 내려준 이름을 말한다. 장절이란 뜻은 마음이 아주 곧고 꿋꿋하며 의리가 있다는 뜻이며, 여기서 ‘공’은 신숭겸 장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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