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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노근리평화공원

2024년 11월 15일

`노근리 사건`은 1994년 4월 노근리 양민학살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은용씨가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실화소설을 접한 미국 AP 통신 기자가 1999년에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25∼29일 북한군 공격에 밀려 후퇴하던 미군이 항공기와 기관총으로 피란민 대열을 공격해 200여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사건으로 미군이 사격한 이유는 당시 적들이 피란민속에 숨어서 내려오면서 정찰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알려져 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한국전쟁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희생된 피란민을 추모하기 위해 노근리 쌍굴다리 근처에 노근리평화공원을 조성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전시하고 평화와 인권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주차장 좌측으로 카폐등 편의 시설과 관리동이 보이며,
노근리평화공원은 단순히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풍성한 볼거리를 감상하며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안에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 평화기념관, 교육관, 조각공원, 야외 전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기념관 출입문은 쌍굴다리를 표현하여 놓았다.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면 평화기념관이 나오는데. 노근리 사건 희생자들이 쌍굴다리에서 지냈을 나흘간의 공포와 피란길 여정을 공감하는 인간적인 연민의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전시관이다.
경사로를 따라 평화기념관 지하 1층에 들어서면 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경과를 영상과 모형으로 복합 연출한 것을 볼 수 있다.
평화기념관 지하 1층에서는 노근리 사건이 일어나기전 광복의 기쁨도 잠시 그리고 이념과 주변 정세에 민족의 비극 6. 25전쟁이 발발한다.
1950년 그해 7월 23일 주곡리 마을주민들은 인근 임계리로 피난을 떠났다. 이틀 후인 25일 임계리 인근 지역에서 모인 피난민 500~600명은 미군의 피난 유도에 따라 그날 영동읍 하가마을 하천가에서 노숙했다.
그다음 날인 26일 4번 국도를 이용해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피난민은 미군의 유도로 국도에서 철도로 행로를 변경한다. 노근리 개근철교(쌍굴)에 피신한 피난민이 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다수가 숨을 거뒀다. 피해 추정 인원은 250~300명으로 알려졌다. 이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으로 불린다.
비통의 길에는 경부선 철도 모형과 쌍굴다리 인근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물도 전시돼 있다. 또 당시 사건의 전모와 피해자, 미군 가해자 인터뷰 등을 담은 15분짜리 영상물도 관람할 수 있다.
희생자의 이름을 적어 추모를 하는 장소다.
노근리에서 일어난 사건의 내막을 알고나니 무거운 발걸음은 1층으로 올라가기가 두려워진다.
지상 1층에는 이 사건을 처음 알린 AP통신의 취재 과정과 국내 매체들이 집중 보도한 내용 및 한국과 미국 정부가 각각 노근리 사건 진상조사를 한 과정,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유감을 공식 표명하는 모습 등이 연출돼 있다.
당시 사건의 기록을 보면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의 아품을 위로하며 인권과 평화를 생각하는 자리였다.
기념관 앞으로 노근리사건을 표현한 여러 작가들의 조각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 되어 나아가리 작품 전면의 당당한 인물군상과 뒤쪽의 죽어가는 양민들의 상황을 현장감이 있게 표현하고 있고, 총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운동감 있는 인체를 기반으로 상승하는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그날의 흔적 작품은 앞면은 피난행렬을, 뒷면은 죽어가는 양민들의 처했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상당의 총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작 되었다.
노근리평화공원 위령탑 공원 중앙에 우뚝선 위령탑은 '평화, 화합, 추모의 비.
위령탑의 조각상은 당시 노근리 피란민 사진에서 그대로 모델을 옮겨왔다.
위령탑 뒤로 위패봉안각을 건립하고 있다.
볼거리 추억의 생활전시관도 만들어 놓았다.
특히 박물관 근처의 사건의 현장 쌍굴다리는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다.
사건의 현장인 경부선 철로위로 오늘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개근천위에 아치형 쌍굴 교각이다. 1934년 경부선 열차의 운행을 위해 지어졌다. 영동역에서 하행하여  황간역에서 3km 정도 못 미치는 지점에 있다. 길이 24.5m, 높이 12.25m로 가설된 이 교량은 2003년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59호로 지정됐다.
1950년 7월 26일 정오 무렵, 미군은 그렇게 사람들을 쌍굴에 가둔 채 총을 쏘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들 중 몇몇 건장한 남성들은 어둠을 틈타 가족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탈출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쌍굴에는 많은 여성, 어린이, 노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미군의 공격에 힘없이 죽어갔다.
쌍굴다리 주변에서 발생한 노근리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것은 역시 쌍굴다리의 탄흔으로 백마디 말과 설명이 필요없다. 터널 입구 양쪽의 축대에는 흰색 페인트로 표시해 놓은 수많은 총탄 자국이 그날의 비극을 짐작케 한다. 난사의 흔적들을 세기도 버거울 정도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전쟁의 참상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곳이자 인권 신장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평화공원에서는 한국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전쟁을 모르는 전후 세대에게 호국정신과 나라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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