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대개 경승지를 쫓아 정자를 만드는 것과 달리 평지에 인공의 연못을 만들고 정자를 세운 것은 드문 사례로 김천의 방초정이 그렇다. 방초정은 부호군(조선 시대, 오위도총부에 속한 종사품 벼슬)을 지낸 방초 이정복(李廷馥 1575~1637)이 1625년에 처음 세웠으며, 홍수로 유실된 이후 1788년 5대 후손인 이의조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이의조는 주자의 ‘가례’(한집안에서지켜야할관혼상제에대한예법)를 해설하고 보완한 '가례증해'를 발간한 인물로서 영조와 정조 시대 영남 노론 학단을 대표하는 예학자이다.
김천에서 3번국도를 따라 거창방향으로 가다보면 연안 이씨 집성촌인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의 들머리에 있었다. 물 좋고 경관 좋은 계곡도 아닌, 마을 앞 너른 들판을 건너다보며 서 있는 정자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먼저 정자 앞 연못을 둘러보기로 한다. 연못 최씨담은 가로세로 25m에서 30m 정도 규모의 한쪽 변이 비스듬한 네모형의 연못이다.수백 년은 묵었음 직한 버드나무가 물속에 발을 드리우고 있고, 못 가운데 원형의 섬 두 개를 조성해 섬과 연못가에 나무를 심었다.이 연못은 화순 최씨의 열행과 이어져 '교화'의 뜻도 담겨 있단다.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47호로 승격된 방초정은 1625년 연안 이씨 이정복이 선조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영남권 정자 중에서는 그 규모가 상당하고 주변과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다.보기 드물게 온돌방이 꾸며진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락집인데 규모보다 훨씬 더 크고 높아 보인다. 유려한 곡선으로 들린 팔작지붕의 추녀를 받치고 선 기둥이 오히려 부실해 보일 정도다.연안 이씨가 원터마을에 정착한 것은 15세기 말, 이숙기(1429~1489)의 차남 이세칙 때였다. 이숙기는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올라 연안군으로 봉해지고 벼슬이 호조판서에 이른 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 세거한 연안 이씨는 지역 명문가로 성장했다. 임진왜란 이후에 조성한 것으로 짐작되는 이 정자는 몇 차례의 중수 뒤 1787년에서 1788년에 걸쳐 '5량가 3칸' 규모로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정자 왼쪽에 난 계단을 오르니 중심부에 한 칸 크기의 온돌방을 꾸미고 사방으로 개방된 마루방을 둔 영남에서는 보기 드문 정자다.이층 벽에는 온갖 편액들이 걸려 있고, 갖가지 시를 적어 걸어 놓았는데 지금까지 이곳을 찾아온 많은 학자들이 이곳 경치를 보면서 적은 시라고 한다.계자 난간 아래로 건너다보이는 연못 최씨담은 이정복의 처 화순 최씨 부인에게서 유래한 이름이다.아래로는 이 온돌을 데울 수 있도록 아궁이가 있고, 실제로 불을 땐 그을음이 남아 있다.방초정 옆으로 나란히 선 화순 최씨의 정려각과 풍기 진씨의 열행비. 그리고 시선을 붙잡는 건 정려각 앞의 초라한 돌비다.화순 최씨는 17세에 이정복과 혼인했으나 신행 전에 임진왜란을 만났다. 때마침 왜구들이 몰려오자 “죽더라도 시가에서 죽겠다”며 시가로 갔지만 시가 식구들은 이미 피란을 떠난 뒤였다. 수소문 끝에 시댁이 선대의 산소가 있는 능지산으로 피신했음을 알고 그쪽으로 가던 중 왜적을 만나자 여종 석이에게 자신이 입었던 옷을 벗어 부모님께 전해주기를 당부하고 자신은 명의(죽은 사람이 입는 옷)로 갈아입고 방초정 앞 연못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 여종이었던 석이도 주인을 따라 함께 빠져 죽으니 사람들이 이 못을 최씨담이라 부르게 되었다.최씨 정려각 앞의, 투박한 돌비의 주인공, 최씨의 여종 석이(石伊)다. 최씨 부인이 못에 몸을 던지자, 함께 뛰어든 노비 석이도 상전을 뒤따랐다. '忠奴石伊之碑(충노석이지비)' 여섯 자가 서툴게 새겨진 이 비석은 연안 이씨 후손들이 여종 석이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만들었다.
1937년에 세운 풍기 진씨의 열행비다. 풍기 진씨(1912~1935)는 이정복의 후손 이기영의 처다. 열여덟에 이기영과 혼인했는데 늑막염으로 고생하던 남편이 친정에서 복막염으로 숨지자, 치료를 제대로 못 해준 자기 탓으로 여겼다. 진씨는 남편의 시신 옆에 가 반듯이 누워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다가 결국, 그 방에서 굶어 죽었다. 그의 나이 24세였다.방초정에서 약 9km떨어진 곳에 부항댐출렁다리가 있다. 부항댐은 홍수 조절과 수력발전·관개용수·상수도·공업용수 공급 등을 위해 조성한 친환경 다목적댐이다.부항댐에는 고즈넉한 수변둘레길, 아찔한 출렁다리, 국내 최고 높이(93m)를 자랑하는 레인보우 짚와이어, 국내 최초 완전 개방형 스릴만점 스카이워크 등이 들어서 있다.부항댐에 국내 최장으로 꼽히는 출렁다리(256m)다. 다리 위로 동시에 1,400명이 걸어 건널 수 있는데 댐 수면을 내려다보며 걷는 동안 다리가 흔들려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