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의 성전면 월하리에는 호남의 3대 정원 중에 하나로 꼽히는 백운동 원림(白雲洞 園林)이 있다. 월출산 자락의 역사와 문화, 사람과 자연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지역으로 옥판봉 남쪽 백운동정원이 맨 앞에 선다.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정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히며,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이곳을 들러 경치가 너무 좋아 잊지 못했다는 곳이다.
안운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백운동정원은 숲속 계곡을 끼고 있다. 마을과 완연히 구분된다. 정원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마을 고샅을 따라 동백나무 숲길로 들거나, 차밭 길을 따라가면 전시관이 나온다. 전시관에서 잠시나마 더위를 식힌후 백운동정원으로 가기로 한다.백운동정원 전시관은 최근 만들어졌다. 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이다. 드넓은 강진차밭도 전시관과 맞닿아 있다. 입장료와 주차비도 따로 없다.1층에서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공간에 `시 배달_백운동 12경`의 재해석한 작품으로, `백운별서정원`의 원본인 `백운첩`을 현대 미술의 기법인 디지털 프린팅 기법으로 다시 재현해 내어 그 위에 정약용의 시선으로 바라본 백운동의 풍경에 대해 지은 시를 텍스트로 제작하였다.지하 1층 전시실은 현대 작가의 설치 미술품과 함께 보물급 유산인 동강공 이의경 초상화 진본과 함께 이의경이 사도세자에게 하사받은 시가 전시돼 있다. 이담로의 증손인 동강 이의경(1704~1778)은 사도세자의 스승으로, 익위사 부솔 벼슬을 지내다 세자의 존경을 시기하는 간신들을 피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학문에 매진했다. 초상화는 18세기 조선 후기 승려 화가 색민의 작품이다.상설전시실로 들어서면 백운동원림 홍보 영상 ‘백운동 시간의 길을 걷다’ 코너로 회의실과 영상실을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 나온다.상설전시실 본관으로 향하면 백운동 건물을 모티브로 한 디오라마와 유유자적하는 처사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는 등 현장감 있는 전시환경을 제공한다.조선시대 문인 이담로(1627∼1701)는 손자 이언길(1684∼1767)에게 당나라 이덕유가 남긴 '평천장'(平泉莊) 이야기를 유언으로 전하며 자신이 아낀 정원을 잘 보존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담로가 호를 '백운동은'(白雲洞隱)이라고 지을 정도로 끔찍하게 사랑한 정원인 '강진 백운동 원림'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이시헌의 스승인 다산 정약용은 백운동 원림에 반해 초의선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옥판봉·산다경·백매오 등 아름다운 경치 12개를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다산과 초의선사가 남긴 작품은 '백운첩'에 전하며, 이시헌은 선대 문집·행록(언행을 기록한 글)·필묵을 엮은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을 만들었다.전시실에는 다산 정약용과 깊은 우애를 알 수 있는 유물을 포함해 100여점의 원주이씨 소장 유물을 볼 수 있었으며, 백운동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인 ‘디지털 강진의 빛’은 환상적인 빛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압도적인 몰입감과 영상미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전시관에서 백운동원림 외원을 걷고 있다.징이 있는데, 원림을 찾은 방문객이 경내에 진입하기 전에 직접 울릴 수 있다. 부드럽게 세 번 타종해 마음을 경건히 하라는 원림의 뜻이다.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석림원으로 울창한 대숲이 바람 소리를 음악처럼 들려준다.바닥에는 동백나무 뿌리가 엉켜 있다. 겨울 추위에도 피어난 동백나무 숲 꽃봉우리 제2경 산다경(山茶徑)이다.세상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 무렵, 어느새 정원이 나타난다. 지금껏 몰랐던 또 다른 풍경 앞에서 불현듯 마음이 환해진다.작은 계곡에 맑은 물이 조금 흐르고 있다. 4경 풍리홍폭은 단풍나무 빛이 비친 폭포의 홍옥같은 물방울을 뜻한다.앞의 큰 바위에 白雲洞이라는 한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금은 날려쓴 글자가 멋을 부렸는데 이담로가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담로가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하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이라고 바위에 새긴 것으로 전해온다는 설명도 붙어 있다.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인으로 산 다산 정약용(1762~1836)도 백운동을 찾았다. 다산은 1812년 가을 제자들과 월출산에 갔다가 백운동에서 하룻밤 묵었다. 다산은 초당에 돌아와서도 백운동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백운동 12경’을 시로 읊었다.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이 쓴 시와 함께 엮었다.계곡을 건너면 제6경 창벽염주(붉은색의 글자가 있는 푸른빛 절벽)과 제10경 `풍단`(청하벽 위에 붉게물든 단풍나무가 심어진 단)이 나온다.창벽염주와 풍단 지역을 거슬러 가며는 원림의 정문이 나온다.백운동원림 정문 솟을삼문 처마에 `백운유거` 현판이 걸려 있다.마당으로 들어가면 작은 집들이 아담하게 지어져 운치있게 보인다.대문 안 좌측으로 제8경 `화계모란`(모란이 심어져 있는 돌계단의 화단)이 나오고, 그 위로 취미선방이 보인다.별채 당호 수소실(守素室)또한 추사의 글씨체이며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라는 뜻으로 욕심을 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백운동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앉혔다. 마당으로 계곡물을 끌어들인 수로와 작은 사각형 연못이 독특하다. 담장 아래 구멍으로 들어온 물이 아홉 굽이 돌아 계곡으로 다시 흘러갈 수 있도록 한 구조다. 다산이 백운동12경 중 5경으로 꼽은 `유상곡수`이다.정원 뒤편 `정선대`에 오르면 백운12경 중 제1경인 월출산 옥판봉과 함께 정원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11경 정선대는 비에 씻겨 고운 뫼 바라보는 신선 머무는 작은 정자를 가르킨다.정선대 정자 우측으로 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별칭) 가 있는 언덕을 제7경 `정유강`이라 한다. `천 길 되는 붉은 비늘 나무가 있어/ 빈산에 고요히 그림자 길다./ 저절로 삼뢰의 소리가 나서/ 이따금 정자 절반 시원케 한다.정원은 원주이씨 이담로(1627~1701)가 만들었다. 이담로는 1692년 전후 여기에서 거문고와 서책을 홀로 즐겼다. 이담로가 살던 집은 백운동에서 6㎞가량 떨어져 있다. 지금의 성전면 금당리다. 이담로는 손자 이언길과 함께 20여년간 원림을 일궜다. 이담로가 백운동을 지은 연유와 풍광을 적은 글이 ‘백운세수첩’에 전해진다.현재 정선대 주변은 수목이 자라나 백운12경 중 제1경인 월출산 옥판봉(참고사진)은 보이지 않는다.백운동은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이 멋스럽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담장 안쪽 내원에는 경사면을 따라 본채, 사랑채, 마당이 위에서 아래로 높이를 달리해 자리 잡았다.제9경 취미선방(翠微禪房)에도 한시가 적혀 있다.`담장과 섬돌 빛깔 한 줄 흔적이/ 푸르른 산 빛을 점찍어 캔다/ 여태도 세 그루 나무 있으니/ 예전부터 좁은 집에 살던 것일세` 취미선방은 산허리의 선방이란 뜻으로 작고 조용한 방으로 이름붙인 것이다. 선방의 담장과 섬돌이 뒤를 두르고 있는 산과 빛깔이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시 처럼 담장과 섬돌의 빛깔이 점이 되어 산에 비치니, 푸른 빛을 캐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취미선방 옆으로 백운동 제3경으로 바위언덕 위에 심어둔 백 그루의 홍매를 가르켜 `백매암향`이라 한다.매화나무 화단 위로 자이당이 보인다. 본채 당호 자이당(自怡堂)은 백운동 6대 동주 이시헌의 호이며 글은 추사 김정희의 서체이다. 이시헌은 ‘스스로 만족하면 두루 즐거우니 세상의 시비를 잊었다’ 라고 자신의 호의 뜻을 풀고 후손들이 이에 따르길 바랬다. 측면에 설치한 백운동이씨유거(白雲洞李氏幽居)는 다산이 친필로 풍류를 즐기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백운동 사람들을 기록한 문구이다.백운동 12경 왕대나무숲 `운당원` 운당천운으로 별서 뒷편의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 숲을 가리킨다.자이당 뒤로 후문이 있으며, 그옆으로 장독대가 보인다.백운동정원은 별서(농장이나 들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다. 살림집 아닌, 세속을 떠나 자연에 기댄 별도 거처다. 다산, 초의, 소치 등도 찾았다. 강학과 풍류 공간이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운첩을 통해 남긴 백운동의 12가지 풍경을 다산의 시와 함께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