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강릉의 행정을 담당하던 곳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관람합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명주동 39에 위치하고 있다.
강릉 대도호부관아 주변에는 주차장이 없는 관계로 도로변에 주차하는 형식이다. 당연히 먼곳에 주차를 하고 칠사당 행랑채 옆길을 따라간다.행랑이 길게 이어지는 대갓집 같은 느낌의 솟을대문에 들어섰다.‘칠사당’은 지방 수령의 업무 공간인데 우리가 아는 동헌과는 좀 다르다. 복원된 동헌은 대외적인 행사와 재판 등을 관장하던 외동헌이라 볼 수 있는데, 칠사당은 평소 일반적 행정업무를 수행하던 장소다. ‘칠사’란 지방 수령이 수행해야 할 일곱 가지 업무를 말한다. 호적,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풍속 등 일곱 가지 정사를 베풀었다고 칠사당(七事堂)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건물은 누마루 뒤편에 온돌방이 있고 옆으로 3칸의 마루, 3칸의 방으로 구성된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순한 구조다. 이 건물에 근엄함을 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면 대청마루와 그 옆으로 붙은 방들을 툇마루가 묶어 주고 그 앞으로 한 켜의 회랑공간을 더 내단 것이다. 회랑은 단순한 공간에 깊이를 준다. 누마루라는 수직의 요소에 회랑이라는 수평의 요소를 한 겹 붙이면서 칠사당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민의를 수렴하는 공적인 공간이 가지는 엄정한 자세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보는 이를 압도하기 위한 권위만 앞세우며 자꾸만 규모를 키우는 현실의 관청들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건축이다.강릉 대도호부는 고려말 1389년(공양왕 1년) 대도호부로 승격된 이후 조선말까지 유지돼 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지방제도가 개편되면서 폐지됐다.강릉 대도호부관아 정문(아문)이며, 대도호부는 고려, 조선 시대의 지방행정기관으로 조선 시대에는 정3품의 부사가 파견된 곳이다.조선 영조 때인 1750년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임영지'에 따르면,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규모는 전대청 9칸, 중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등 모두 83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객사 정문인 임영관 삼문과 칠사당을 제외하고 대부분 훼손됐다.중문으로 들어가면 사또가 집무한 동헌이 위엄있게 자태를 드러낸다.동헌은 관아의 정청으로 수령이 행정 업무와 재판 든 정무를 보던 중심 공간이다. 규모는 정면6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다.동헌 좌측으로 별당과 3층으로 쌓아 올린 기단 위로 의운루가 있다.의운루는 수령이 공무 중 잠시 휴식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옆면 2칸이며 팔작지붕의 단층 구조이다. 이곳은 임영관 서남쪽의 나지막한 언덕에 있어, 그 아래에 만든 연당을 바라볼수 있었다고 한다.의운루에서 바라본 전경.동헌 을 지나면 `임영관 삼문(국보 51호)`이 나온다. 고려시대에 만든 삼문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임영관 삼문은 고려 때 지은 강릉 객사 임영관의 정문이다. 문이 세 개 달려 있어 삼문이라고 한다. 임영관 삼문은 우리나라 옛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두드러진 배흘림기둥을 갖고 있다.추녀와 서까래, 각종 보와 공포 등이 배흘림기둥과 잘 어울린다. 이들을 한눈에 바라보면 간결한 힘이 전해온다. 그것은 모두 맞배지붕의 우직함과 소박함으로 수렴된다.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국 목조 건축사상 뛰어난 구조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이다.임영관삼문 뒤로 중대청과 그뒤로 객사가 자리한다.중대청은 고려시대 건축 양식으로 앞면 3칸, 옆면 4칸의 맞배지붕의 주심포양식이다. 조선시대 관찰사가 순찰하려고 방문하였을 때 머물던 공간이다.관아에는 객사라는 숙박시설도 따로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들이 이용하던 것이었다. 객사 중앙 전대청은 객사의 정청이자 중심 공간이다. 왕의 전패를 모셔 두고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인 망궐례를 행했던 곳이다. 동헌과 오른쪽 서헌은 중앙 관료들이 숙식하던 곳이다.`임영지`에 의하면, 강릉객사의 규모는 전대청 9칸, 중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낭청방 6칸, 서헌 6칸, 월랑 31칸, 삼문 6칸 등 모두 83칸이었다고 한다.국보 `강릉 임영관 삼문` 과 보물 `칠사당`의 웅장하면서도 단아한 멋은 관아 건축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옛 강릉의 위상과 높은 문화 의식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