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0일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승무’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마을은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곡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로 진입하지 말고 좌측으로 주차장을 넓게 조성하였다. 이곳에 주차를 한 다음 속편하게 걸어서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주실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경상북도 기념물 제78호)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잡고 있고, 옥천종택(玉川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2호), 월록서당, 만곡정사, 지훈문학관등 문화자원들을 답사할수 있다.
조지훈의 생가 호은종택 대문간채는 솟을대문 좌우로 2칸씩이 건조된 구조이다. 솟을대문 기둥과 기둥사이에 문호를 사이로 가로지른 나무위에 살대를 꽂았다.
문간 다음에 방이 각 1칸씩 있고, 그 방에 이어 부엌으로 조성되었으며, 솟을대문은 맞배지붕으로 좌우 건물은 팔작지붕으로 마감하였다. 문간채 우측으로 곳간채로 들어가는 사주문이 대문간채 옆에 따로 있어 곳간채의 출입에 전용되고 있다. 사주문 옆에 측간이 있으며, 곳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 대문간채를 바라다보며 자리잡았다. 바닥은 맨바닥, 벽체는 토벽이며 지붕은 기와를 이은 우진각 지붕이다.
사랑채는 겹집형으로 2칸통인데 중문 칸에 이어 사랑방 두 칸이 연속된다. 방 앞엔 툇마루 뒤편엔 쪽마루가 있고 사랑방에 이어 2칸통 대청이 있다. 중문도 2칸통이다. 보통 문을 1칸으로 잡는 것과 차이를 보인 특색이다. 문 좌측도 역시 2칸통의 2칸이며 방과 보일러실이 있다. 보일러실 북측으로 다락이 있는 부엌이 있고 안방으로 이어지는데, 안방의 아래 칸을 조지훈의 태실(胎室)이라 부른다.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던 조승기(趙承基), 6·25 때 자결한 조부 인석(寅錫)이 이 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안채는 대문간채와 곳간채가 있는 반듯한 마당 안쪽에 있다. 중문 칸이 정면 중앙에 있는데 한가운데 있지 않고 왼쪽으로 한 칸 치우쳐 있다. 사랑채의 평면이 고려된 것이다.
안방에서 우측으로 정면 3칸의 대청이 있고 다음에 건넌방이 있다. 건넌방에 이어 독립된 작은방 3칸이 남북으로 길게 조성되었으며 이어 방 그리고 사랑채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안채 뒷
우측
좌측
곳간채 좌측으로 사당이 있다.
3칸의 사당
인조 8년인 1630년경 영양읍 원당리에 살던 호은(壺隱) 조전(趙佺)이 처음 들어와 정착한 뒤 한양조씨 세거지가 되었다. 실학자들과 교류해 일찍 개화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마을이다.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집을 둘러 보았다.
호은종택과 월록서당 사이에 지훈의 문학관이 있다. 정면 열두 칸의 긴 한옥 건물로 2007년 5월 개관했다. '지훈문학관(芝薰文學館)' 현판은 부인 김난희 여사가 쓴 것이라 한다.
문학관에는 조지훈의 대표적인‘승무’가 흘러나오고, 선생의 삶과 그 정신과 전시된 다양한 유품을 살펴볼 수 있다. 조지훈(1920년 12월 3일~1968년 5월 17일)은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전통적 생활에 깃든 미의식을 노래했다. 본관은 한양. 본명은 동탁(東卓). 8·15해방 직후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헌영과 전주이씨인 어머니 사이의 4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지훈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지훈문학관'. 소년 시절 즐겨 읽었던 책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시대를 고민한 작품까지 시인의 전 생애가 한 편의 전기처럼 펼쳐진다.
주실의 동쪽에 월록서당이 있다. '일월산 자락의 서당'이라는 뜻이다.
월록서당은 영양 최초의 서당인 영산서당이 서원으로 승격된 이후 처음 세워진 서당이었다. 주곡리의 한양조씨, 도곡리의 함양오씨, 가곡리의 야성정씨가 힘을 모아 영조 49년인 1773년에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