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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화암사 가는길

2021년 3월 8일

 한 10년 전 이였나 불명산등산으로 다녀 온 완주화암사. 그 화암사의 극락전이 국보로 승격 되였다는 뉴스를 오래 전에 접하여 다시 한번 화암사에 대하여 답사를 하기로 한다.

 

완주화암사로 가는 길은 지금의 요동마을로, 전에는 싱그랭이 마을로 불리워 졌다는데, 전주와 금산을 오가는 역과 역 사이의 객사가 있던 곳으로 이곳에는 주막이 밀집해 있었고, 주민들이 짚신을 삼아 걸어 놓으면 갈아 신고 갔다하여 신거랭이 로 불려졌다 가 지금은 "싱그랭이"라고 불리고 있단다.
세월이 흘러 이곳 화암사도 현대식으로 주차장과 화장실, 그리고 좌측으로 임도길은 화암사 뒤 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리고 화암사로 올라 가던 옛길은 연화공주 공원길로 새롭게 조성되었다.
화암사주차장에 화암사와 화암사에 얽힌 설화를 안내판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새롭게 조성된 길을 따라서 올라 가보기로 한다. 화암사로 가는 길에는 야생화가 많이 자생 하는데, 3월 초에는 복수초의 노란색 꽃을 볼수 있다.
화암사로 올라 가는 산속 길가엔 봄이 오고 있다. 봄을 알리는 복수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동양은 영원한 행복이며, 서양은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과연 이곳으로 갈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길이다.
지금은 철제계단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 옛날에는 얼마나 가는 길이 험하였는지 15세기 쓰인<화암사 중창기>에는 화암사로 가는 길이 "사냥하는 사나이라 할지라도 이르기 어려운 절"이라 묘사되었다. 고려 후기의 문신이었던 백문절은 화암사에 대해 7언 40구의 길고 긴 한시를 남겼다. 그만큼 화엄사에 이르는 길이 험하고 도에 이르는 길이 어려움을 뜻한 것이다.
특히 이구간 2단 폭포 좌측으로 절벽을 기대며 거닐던 옛길이 있는데, 충분히 다닐수 있던 옛길을 나두고 조금 편하자고 철재계단으로 자연을 훼손하였다.
자연을 훼손 한 것을 미안했는지 시 한편을 걸어 놓아 마음을 달래고 있다.
거친 숨결을 몰아쉬며 가파른 언덕길에 놓인 철제 계단을 지나서 새로 조성된 돌계단을 오르고 나니 그 흔한 일주문은 없고 우화루 가 보인다.
요새처럼 든든하게 쌓아올린 축대가 외부의 침입이라도 막으려는 듯 우화루 밑으로는 출입을 할수 없고 대신 우화루 좌측으로 문간채? 사이에 조그만 문이 보인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경내 중앙이 나온다. ㅁ자형 마당에 우화루와 극락전(국보 제316호)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눈에 확 들어 오는 건 여의주를 문 용이 있는 단청이라곤 찾아 볼수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극락전이 내려다 보고 있다.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적묵당 한쪽 기둥에 걸려 있는 나옹스님의 글귀가 보인다. 한마디로 조용히 있다 가라는 뜻이다.
화엄사 동종은 어디다 보관 하는지 액자속에 있는 동종 만 보인다. 이 동종은 광해군 때 호영이 주조한 것으로, 사찰 또는 나라에 불행한 일이 있을 때는 스스로 소리를 내어 그 위급함을 알려 주었다고 하여 자명종이라고도 부른다.
화암사 우화루는 보물 제662호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누각 맞배지붕 건물이다.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내정을 사이에 두고 남북축선상에 놓여 있으며, 사찰 전방에 일반적으로 놓이는 누각건물 형식의 건물이다.
우화루 한쪽에 걸려있는 목어.
우화루의 내부
그리고 우화루 기둥에 걸려있는 어느 스님의 목탁인지 꾀나 오래되어 보인다.
화암사극락전은 국보 제316호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형태로 국내에서 유일한 하앙식 건축물로 하앙이란 다포식 건축양식 중에서도 도리 바로 밑에 있는 살미라는 건축 부재가 서까래와 같은 기울기로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지렛대 형식으로 떠 받치는 공포를 말한다. 즉 처마를 지탱하기 위해 하앙이라는 부재를 받쳐 놓은 국내 하나뿐인 하앙구조다. 화암사중창기에 의하면, 고려말에서 조선 초에 생존하였던 무과 출신의 성달생이 1425년(세종 7) 이 사찰을 중창을 하고 확장할 것을 기획하여 1429년에 마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극락전은 국보로써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눈으로만 답사를 한다. 정면의 빗살문을 열고 안을 보니 극락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고 그 위에 닫집을 올려 놓았다.
극락전 앞 처마밑의 여의주를 문 용머리.
극락전의 귀공포는 길고 짧은 부재들의 뻘목이 가로 세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아무런 장식은 없지만 기둥과 서까래를 연결하여 무게를 분산하는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
화암사 극락전 뒤쪽으로 앞처마의 용머리부터 뒤로 용꼬리 까지 표현을 하였다.
극락전 우측으로 있는 "철영재"는 쓰러져 가던 화암사를 중창 불사하여 다시 일으킨 사육신 성산문의 조부 성달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적묵당
화암사 명부전
명부전에서 바라본 사찰 안.
불명산과 시루봉 남쪽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천년 고찰 화암사.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이 늙은절은 앞으로도 영원히 이자리에 있으며 계속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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