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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전주동헌

2021년 3월 16일

옛 전주 관아인 유서 깊은 고택과 넓은 마당으로 이루어진 연수원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문화와 사상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며, 옛부터 이어온 선조들의 모듬살이 등 전통의 다양한 면모를 이곳 연수원에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2011년 4월 14일부터 운영되고 있는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은 연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주 동헌과 연수 진행 때 사용하고 있는 일송 장현식 고택, 임실 진참봉 고택과 정읍 보천교 고택등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을 축으로 다른 곳에 있던 고택을 이곳으로 이전 중축한 건물을 답사하기로 한다.

이곳은 전주전통문화연수원 입구로 먼저 전주동헌 부터 답사하기로 한다.
전주동헌은 풍락헌, 또는 음순당이라 불렀다. 지금의 전주시청 정도의 건물로 조선시대 전주부윤(종2품)의 업무공간으로 지방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장소로,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이라 한다.
솟을삼문의 동헌의 출입문으로 지금은 닫아 놓아 출입을 못하게 하였다. 다만 전주전통문화연수원으로 들어가 협문으로 출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원래 전주부영이 있었던 곳은 구 전주우체국 사거리, 구 전라회관 사거리, 동부화재 전주지사(구 전북도청 후문 사거리)의 4곳을 연결한 부지 내에 있었는데, 전부부영이 도로개설계획에 의해 1907년부터 1937년까지 공사로 모습을 잃게 된다. 전주부윤이 집무하던 풍락헌은 전주군 군청으로 사용되었지만 1935년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전차를 운영해 보겠다는 뜻에서 대로(현 팔달로)를 만들면서 1934년 4월에 일제가 강제철거 매각을 한 것을 전주 유림인 유창근 선생이 구입하여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로 옮겨 전주 유씨의 제각으로 사용했는데, 전주시의 노력으로 유인수 선생이 제각의 건물을 전주시에 쾌척을 하여 파란만장한 환란을 겪은 전주 동헌은 전주시의 개칭 60년인 2009년 전주로 다시 돌아 왔다. 이는 전주를 떠난 지 75년 만이다. 비록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지만 이곳 전주향교 옆 부지에 이건 한건 다행이다.
전주 동헌은 관찰사(종2품), 부윤(종2품), 판관(종5품)의 집무실이라고 다양하게 일컬어지고 있는데, 전주부윤의 자리는 관찰사가 겸임할 때가 많았고, 관찰사가 겸임할 때는 대부분 중앙에서 나온 판관이 전주부를 통치했던 연유에서 기인한 명칭이란다. 그러나 원래 전주 동헌은 전주부윤의 집무실이고, 선화당은 전라도 관찰사의 집무실이다.
풍락헌이란 "풍년을 즐거워하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풍락헌은 어느 지역 동헌보다도 그 규모가 당당하다.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지어진 건물은 장대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주추는 원형의 밑이 넓고 위가 좁은 돌을 사용했으며 그리 높지 않게 두었다. 좌측 3칸은 방을 드렸는데, 맨 끝의 방은 누정과 같이 툇마루에서 돌출을 시켜 꾸몄다. 누마루 깐 대청은 모두 4칸으로 창호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했다.
풍락헌 뒤편의 문도 창호로 멋을 더했으며, 방의 뒤편에는 깊은 아궁이를 내었으며, 굴뚝은 건물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철거가 되어 매각이 될 뻔한 전주동헌 풍락헌. 다시는 이런 아픔을 당하지 않길 바라면서,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보고 배우게 하여야 한다.
정읍고택(별채)은 보천교를 창시한 월곡 차경석(1880~1936)이 정읍 대흥리에 세운 50여 채의 보천교 본당 부속 건물의 하나로 전해진다.
ㅁ자 건물의 정읍고택은 보온 효과를 높이고 바람을 막으려는 북부지방의 한옥 양식으로, 중부지방 이남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다.

 

임실 진참봉 고택은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에 소재한 진참봉댁 고택으로 도로개설사업으로 철거 예정이던 건축물을 이건한 고택이다.
독립운동가 장현식선생의 고택. 한구루 소나무 같은 의인 일송 장현식은 김제 금구 출신으로(1896~1950) 당대 만석을 누렸던 부호중의 부호였다. 그러나 일송은 부호로서 보다 독립운동가요 사회사업가와 정치가로서 명성을 떨친 인물입니다.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민족의 지도자였으며 파란만장한 이 나라의 근대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 애국지사입니다. 1919년 4월 독립운동 비밀운동 비밀결사 대동단이 창단되자 군영자금을 제공하였고, 대동신문 재정운영을 맡다 체포되어 1921년 징역 3년을 언도받고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 교육사업에 전념하시고,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 독립운동자금 수 만원을 기부하여 조국의 독립을 지원하였다. 해방 후 전라북도 2대 도지사를 역임하기도 하였으나, 6.25전쟁시 1950년 6월 28일 서울 명륜동 자택에서 납북되어 그해 10월 24일 평양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1990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현식 고택의 안채로 장현식선생의 후손인 장남 장홍씨가 2007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김제시 금구면 전통한옥(안채와 중간채)를 기부하여, 이를 한옥마을로 이축 2009년 12월 새로 단장하기에 이르렀다.

 

장현식 고택의 중간채
전주 동헌이 있는 전주향교는 코로나19로 잠시 폐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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