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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이치전투

2022년 11월 12일

대둔산 산행후 임진왜란때 권율장군이 승리를 이끈 전투지를 답사한다. 이치는 지금의 배티재에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퇴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장식한 전적지이다. 

 

 

전라북도 운주면 대둔산집단시설지역에서 금산군 진산면으로 넘어가는 배티재에 자리잡은 대둔산휴게소 이지역이 전투지 다.
이치 정상의 이치전투 기념물이 보이는데, 왼쪽부터 무민공 황진장군 이치대첩비. 임진왜란 이치대첩 의병장 황박장군 추모비에 이어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 가 보인다.
임진왜란때 이치 주전투 추정지를 안내하는 안내도다.
이치전투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어 해질무렵까지 계속된 치열한 전투에서 우리보다 우세한 적을 대항하여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장수들의 성실한 진두지휘와 향토병들의 불굴의 투지, 험한 지세를 이용한 철저한 대비, 차질없이 진행된 군수품 보급에 있었다. 이치전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적의 기세를 꺾어 전라도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유재란(1597) 때까지 7년 동안 군량보급과 병력보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무민공 황진장군 이현대첩비` 웅치와 이치 전투의 총 지휘자는 전라절제사 권율이고, 이치 전투의 최고 수훈자는 동복(전남 화순)현감 황진이다. 황진은 동복현 군사를 거느리고 편장 위대기, 공시억 등과 함께 이치에 주둔해 크게 싸웠다. 적이 절벽을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에 몸을 의지한 채 총탄을 피하며 활을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종일 교전한 끝에 적을 대파했다.
의병장 황진장군은 1593년 6월 19일-29일 사이에 있었던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이 육지에서 거둔 최대 승리인 이치전투의 현장은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대둔산이 그림처럼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치에서 1.6km 진산쪽으로 가면 권율장군 이치대첩 유적이 있다. 1866년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에 이치대첩비와 대첩사를 세웠으나 1944년 6월 일제가 항일유적 말살정책으로 폭파하여 그 파편이 진산면 사무소에 보관되었다. 1963년 대첩에 참여한 후손과 지역 유지가 지금의 장소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1991년부터 성역화계획이 수립되어 사당 비각 및 안내판 이축, 내삼문 외삼문 담장을 건립하였다. 권율장군의 묘소(경기기념물)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에 있다.
대첩비각
대첩비각내부에는 일제강점기에 파괴된것을 다시 세운 대첩비 와 파괴된 대첩비가 있다.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의 권율장군 이치대첩비는 고종 때 만들어졌으나 일제가 강점기 때 파괴했다고 한다. 그 일부가 남아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 권율 장군은 전라도로 침입하려던 왜군을 이치에서 물리친 내용을 새긴 비석이다.
충장사 내삼문
충장사는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권율 (1537년 12월 28일 ~ 1599년 7월 6일 )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임진왜란 의 조선군 장수로, 왜란 중반부터 종전까지 조선군 총사령관인 도원수로서 조선의 군대를 총지휘하며 왜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데 기여했으며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끈 장군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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