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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추사 김정호생가

2023년 2월 18일

추사 김정희(1786~1856)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림 세한도. 눈도 내리지 않은 마른 겨울에 소나무 고목과 잣나무, 그 아래 허름한 집 한 채가 텅 빈 화폭에 그린 듯 만 듯 간략하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라는 뜻이다. 추사는 우선(`이상적` 역관이었던 추사의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 그림이 바로 걸작 ‘세한도’다.

 

 

추사 김정희의 발자취와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고택앞에 왔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서예가인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생가는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8에 위치한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지은 집이다. 김한신은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로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지면서 이 일대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집의 규모는 53칸인데 영조는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축 비용을 분담하여 지어주도록 하였다. 집을 지을 때도 궁궐 건축을 담당하는 경공장의 목수들을 파견하였다. 그래서인지 추사고택은 격조가 있어 보인다.
1976년 추사고택 정화사업이 이뤄지기 전 고택 모습으로, 문화재청 직원들이 남긴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돼 있다.
사랑채 댓돌 앞에는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다. 글씨는 김정희의 아들 김상우가 추사채로 써서 새긴 것이란다.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했다.
고택의 안채는 6칸 대청과 두 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등을 갖춘 ㅁ자형 가옥이다.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안채 뒷뜰로 들어가면 영당이 보인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영당이다.
김정희의 평생의 벗 권돈인은 영당 세우는 일을 돕고 추사체로 추사영실이라는 현판을 직접 썼다. 또한 김정희의 제자였던 이한철에게 대례복을 입은 김정희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권돈인은 이 초상화에 찬문을 쓰고, 김정희를 추모하는 여덟 수의 시를 지어 김상무에게 주었다. 현재 초상화의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현판의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있다.
영당에서 내려다 본 추사고택
추사고택 좌측으로 가문 대대로 이용해 온 우물이다. 우물에는 김정희의 출생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민규호가 쓴 `완당김공소전`에 따르면 어머니 유시가 임신한 지 24개월만에 김정희를 낳았다고 한다. 그 무렵 우물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산인 팔봉산의 나무들이 시들었다가 김정희가 태어나자 우물물이 다시 샘솟고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고택 왼쪽에는 추사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번잡스러운 석물로 치장돼 있지 않고 다만 생전에 남긴 글씨를 집자한 비석 하나만 있을 뿐인 묘소는 깔끔하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 예술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 추사기념관으로 들어 가 본다.
추사 선생은 1786년에 예산군에서 태어나 1856년 경기도 과천에서 71살의 나이에 돌아가실 때까지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가 있는 많은 글씨를 남기셨다. 추사기념관을 둘러 보면서 추사 선생님의 위대한 작품 속에서 그분을 만나고 고난과 역경의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학문에 정진하신 모습을 보면 진한 감동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계산 김수근에게 써준 '계산 무진'의 글씨는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안동 김씨인 계산 김수근은 경주김씨 김정희와 척을 두고 살면서도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글씨는 대단히 좋아해서 아들 김홍근을 시켜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추사의 글씨를 얻어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그린 대표작이자 국보인 세한도의 모습. 추위 속에도 우뚝 선 나무의 모습이 김정희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좌측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30~40대에 쓴 글씨이고 우측 분홍색 바탕의 글씨는 70살에 쓴 글입니다. 추사 선생은 윤상도의 옥사 사건에 연류되어 제주도에서 무려 9년동안 유배생활을 하지만, 학문에 정진하셔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추사체를 탄생시킨다.
추사기념관을 돌아 나오면 추사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쓴 판전(板殿)이라는 글씨가 있다. 추사기념관을 돌아보며 인생의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학문을 하여 이룬 위대한 업적을 살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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