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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행

전라 병영성

2023년 2월 28일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위치하고 있는 전라병영성과 하멜기념관을 관람한다. 자그마했던 병영이 전라도의 중심지역 중의 하나가 된 것은 1417년(태종 17년) 전남광주에 자리하고 있던 전라병영성이 옮겨오면서부터다. 병영성에는 호남과 제주도 53주 6진을 통할한 육군의 총 지휘본부 가 있던 곳이다.

 

 

강진군 병영면에 도착하니 복원된 병영성 성곽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성 안으로 들어가 보니 허허벌판이다. 아직은 성체만 복원한 상태라서 그런가 보다.
병영성 동서남북에 옹성(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을 갖춘 문터의 모습이다.
그리고 4개의 모서리와 동벽 및 서벽에 2개씩의 치성(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병영성은 강진군지와 조선환여승람에 초대 병마도절제사 마천목장군이 부임 후 성을 쌓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병영성은 당초 둘레가 561보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돼 있으나 이후 기록에서는 2820척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병영성의 둘레는 900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보수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넓어졌단다.
남서쪽에 두 곳의 배수구 시설이 있다.
성곽 위는 제법 넓은 폭의 길이 나 있다. 옛날에는 병사들의 전투공간이었을 테고, 지금은 관광객들의 산책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11월에는 성 내부에서 정약용이 집필한 민보의에 등장하는 조선시대판 부비트랩인 함마갱유적지 64기가 발견되었다. 성을 둘러싼 해자 바깥쪽에 6~8m 거리를 두고 2~4열로 최대 2.5m 깊이의 구덩이들을 조밀한 간격으로 파놓은 후 죽창을 꽂아놓았던 곳이다.
병영성은 제주도에 표착했던 네델란드인 하멜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8년여 동안을 억류생활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성 내부에는 동헌, 객사, 내아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
병영성 바로 옆에는 하멜기념관이 있다. 1666년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 표류기의 저자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1630~1692년)을 기념하는 전시공간이다. 하멜 동상뿐 아니라,
네덜란드의 상징물 풍차와 하음이등 다양한 모습의 조형물이 있다. 하음이는 하멜의 마음이란 뜻이란다.
하멜기념관에는 전라병영성, 하멜, 병영문화 3가지 테마로 구성되어있다.
전라병영성 출토 유물 전시를 시작으로 17~18세기 네덜란드에서 사용된 생활용품,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하멜표류기 사본, 자매도시인 네덜란드 호르큼시에서 기증한 전통의상 3벌 등이 전시돼 있다.
일본으로 항해하던 하멜 일행 33명은 풍랑을 만나 물결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1653년 8월16일 제주도에 도착을 하여, 제주도에서 9개월, 한양에서 1년 9개월, 전라도에서 11년 등 조선 땅에 13년 20일 동안이나 억류됐었다. 1656년 3월 네덜란드 사람 헨드릭 하멜과 동료 11명이 강진 병영에 도착했다. 그들은 성동리 사무소 근처 수령 800년이 넘는 은행나무 아래에 움막을 짓고 살았단다. 구걸이 실패하면 병영 마을 돌담을 쌓고 논에 댈 물길을 만들며 생계를 꾸렸다.
대서양과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넌 항해술과 선진 문물을 가진 자들이었다.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조선정부와 고관대작들은 이들을 광대로 취급했다. 서울에서 강진, 순천, 여수로 분산 수용된, 유럽 최강 해양국가 네덜란드에서 온 최고급 인력들은 땔감을 줍고 양반집에서 춤을 추고 풀을 뜯고 절에서 옷을 얻어 살다가 13년 20일 만에 일본으로 탈출했다. 탈출한 하멜은 그 기간 못 받은 봉급을 청구하기 위해 보고서를 썼다. 이게 '하멜 표류기'다.
병영의 관문으로 배율천에 건축된 병영성홍교는 유총각과 김낭자에 대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채 옛모습 그대로 오늘날까지 있다. 배진천 위에 놓여 배진강다리라고도 불린다. 직사각형 화강 석재 74개를 서로 짜 맞춰 7m 길이의 무지개꼴 다리 아래 중앙에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용 한마리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건축 연대는 1730년에 숭록대부가 된 유한소의 금의환향을 기념하여 양한조가 감독, 준공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홍교 입구에는 문인상과 무신상의 석장승 2구가 세워져 있다.
홍교에는 노비 유총각과 양반집 딸 김낭자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총각은 본디 양반의 후손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해 토착부호인 김씨 집안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김낭자가 유총각에게 연정을 품고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태어난 아이는 나중에 과거에 급제해 정승이 된 유한계(유한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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