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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행

사의재

2023년 2월 28일

사의재(四宜齋)는 다산(茶山정약용 선생이 1801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와서 처음 묵었던 주막이다이곳은 다산이 18년 유배 생활 중 처음 4년 동안 기거했던 곳이라 가장 힘들게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다산은 주막집 모녀의 도움을 받아가며 4년간 여기에 머물면서 학문에 매진하며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위치는 전남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에 있다. 

 

 

 

사의재주변 전경.
사의재 동문주막 담장.
사의재의 문간채로 주막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와서 처음 4년 머물었다는 동문안 주막의 안채 가 사의재가 되겠다. 이 건물은 10여 년 전쯤 복원된 건물이다.
이곳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가지를 올바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가지를 바로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다. 사려깊은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얘기에 자신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었다. 다산은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생각은 맑게 하되 더욱 맑게,용모는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말은 적게 하되 더욱 적게,행동은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유배 중이었던 다산 정약용이 기거하던 주막의 방에 붙여두고 스스로 주문하며 실천했던 네 가지였다. 이 네 가지를 올바로 행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의 `사의재`다.
현재도 음식과 차를 팔고 있는 주막이다.
다산이 이곳까지 유배와서 어쩌면 분함으로 술이나 마시며 마음을 달랠 법도 하련만 오히려 이 유배기간 동안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갈고 닦아 그 학문을 집대성한 다산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본다.
사의재 옆으로 있는 동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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