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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익산 쌍릉

2023년 3월 10일

서동생가터에서 약 2.5km에 위치하고 있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왕릉을 답사한다. 사실 선화공주의 존재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쌍릉이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 믿고 있다. 쌍릉은 익산 왕궁리 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으며, 익산 쌍릉은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40여대를 주차할수있는 주차장옆 안내판에 익산쌍릉에 대한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주차장 밑으로 익산쌍릉 관리사무소겸 화장실건물이 있으며 좌측으로 공원을 조성해 놓았으며, 쌍릉은 오른쪽방향에 있다.
직선으로 약 200m 떨어진 두 무덤은 아담한 솔숲 산책로로 이어져 있다. 우선 소왕릉으로 가본다.
익산 쌍릉 소왕릉의 모습이다. 봉분이외 별다른 장식이 없으며, 지름은 24m, 높이은 3.5m이다. 소왕릉의 주인은 무왕의 왕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소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윗면에서 5.5m 아래에 있는데 돌방의 형식과 석재 등은 대왕묘와 같다. 널방은 길이 3.2m, 너비 1.3m, 높이 1.7m로 규모가 약간 작다.
부여 능산리 고분의 돌방무덤과 내부 구조가 같아 백제 말기인 7세기 전반의 것으로 조사됐다. 미륵사의 창건 연대를 감안하면 무왕과 왕비의 능묘일 가능성이 있지만 단정하지는 못한단다.
소왕릉에서 우측으로 소나무가 즐비한 마실길을 따라 가며는 대왕릉이 보인다.
대왕릉 도 소왕릉과 마찬가지로 고려사 와 고려사절요에서는 백제 무왕의 무덤으로 설명하며 도굴된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일제시대 1917년에 학술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그 구조는 부여 능산리에 있는 백제 왕릉과 동일 형식에 속하는 판석제 굴식돌방으로 밝혀졌다. 이미 도굴되어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당시의 돌방 안에서 비교적 완전한 목관이 출토되어 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이루어진 발굴은 성의없이 진행되어 말이 발굴이지 발굴을 빙자한 도굴에 가까웠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대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꼭대기에서 7.2m 아래에 있는데, 널방규모는 길이 3.80m, 너비 1.78m, 높이 2.27m이다. 남면 중앙에 널길이 설치되었다. 2018년 대왕릉에서 발굴한 유골을 분석한 결과 서기 7세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 연령, 골격 등이 무왕에 대한 기록과 일치하며 유골 주인의 식생활이 고급스러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왕릉 소왕릉을 돌아보는 산책코스와 주변공원을 둘러보는 시간은 약 30분이면 되며, 공원시설도 잘되어 있고 미륵사지와 백제왕궁박물관도 얼마 안 떨어져 있어 한번쯤 다녀오면 좋은 곳이다.
익산쌍릉에서 백제왕궁박물관으로 가다보면 길쭉하게 서 있는 석상이 보이는데, 이석상이 보물 제46호로 지정된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다.
이 석불은 200m쯤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서 있는 남녀상으로,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으로 해석하고 있다.
익산고도리석불입상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전설로 되어 전해지고 있다.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상이라고 한다. 불상의 목을 보면 무척 짧게 표현되어있으면서도 어깨와 얼굴이 거의 붙어있는데 이러한 형태가 연인의 전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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