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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서벽정과 일사대 일대

2021년 4월 1일

무주 구천동 일사대(一士臺) 일원은 무주 구천동의 3대 경승지 중 하나로, 2009년에 명승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일사대는 수성대라고도 하는데, 나제통문에서 6.1㎞ 지점, 학소대에서 상류 0.3㎞ 지점에 있다. 서벽정(棲碧亭)의 서쪽에 우뚝 솟은 기암이 배의 돛대 모양을 하고 있는 일사대(수성대)다.

 

일사대는 거유(巨儒)로 칭송받는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과 관련이 깊은 경승이다. 그는 송시열의 후손으로 1836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학행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일찍이 서연관, 경연관의 벼슬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송병선은 오로지 고향에서 학문에만 전념하고 구한말 쇠퇴하는 국운을 주시하며 지냈다. 그는 고종의 스승을 지내기도 한 학자였다.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고종으로부터 18번이나 대사헌의 벼슬을 받았으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춘추대의의 선비정신을 지녔던 송병선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통탄했으며, 1905년 일제에 의한 강압적인 을사조약으로 식음을 전폐했다. 그는 수많은 상소를 올려 나라를 팔아먹은 적신들의 죄를 엄히 다스리고 조약을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임금 앞에 나아가 “폐하의 앞자리가 곧 제가 죽을 자리이니 주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물러가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1905년 유소(遺疎)를 쓰고 자제, 문생, 전국 유림에게 고하는 유서를 만든 다음 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처럼 송병선은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된 위기에도 굳건히 절의를 지키다 순절한 우국지사였다. 그분의 은둔처 그곳을 답사하러 들어가 본다.

 

나제통문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구천동쪽으로 가다 보면 서벽정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서벽정으로 들어가는 임도를 따라 들어 가며는, 길가에 상당히 큰 바위 가 나온다. 바위옆 공터(정확히 개집 앞)옆에 주차를 하고, 바위뒤로 서벽정이 보인다. 서벽정은 송병선이 강학을 한 공간이란다.
일사대는 송병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은거하며 서벽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무주를 중심으로 한 이 고장 선비들은 대나무와 같은 기개로 절의를 지키고 순국한 송병선을 동방에 하나밖에 없는 선비, 즉 ‘동방일사(東方一士)’라고 일컬었다. 일사대라는 명칭은 ‘동방일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푸른 바위의 깨끗하고 의연한 모습이 마치 송병선의 기품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벽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집으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80호 다. 한말의 유학자 연재(淵齋)송병선(宋秉璿)이 1886년(고종 23)에 건립하였다. 평면은 중앙 2칸이 마루이고, 마루 좌측에는 전면에 툇마루를 둔 한 칸 반 크기의 방을 들였으며, 우측 칸은 전면을 한 단 높게 하여 누마루같이 구성하고 뒤쪽에 방을 만들었다. 전체적인 평면의 형식이 정자라기보다 서원의 강당형식과 같다. 정면은 칸마다 모두 4짝 띠살 분합문을 시설하였고, 방과 청(廳) 사이에도 분합문이 있어 필요할 때 하나의 공간으로 터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 안에는 1897년 그의 제자인 무주군수 조병유(趙秉瑜)가 봉안한 주자(朱子)와 송시열의 초상이 있다.
송병선은 구천동의 아름다움에 취해 계곡의 명소 아홉 곳을 선정해 무계구곡이라 불렀다. 무계구곡은 구천동 33경 중 계곡의 아랫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경승에 설정한 연계 경관으로 일사대는 제4곡에 해당한다. 일사대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한 바위에는 ‘무이동(武夷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신선이 사는 무이의 동천이란 의미로 성리학을 중시한 송병선이 주자를 흠모하여 주자가 귀거래한 후 은일생활을 했던 곳의 지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무계구곡의 중심에 위치한 서벽정은 주자가 경영한 제5곡 무이정사에 해당한다. 송병선은 이곳에서 후진 양성뿐만 아니라 일제의 침략과 이에 동조하는 무리, 당시의 어지러운 세태를 비판하고 분개했으며 영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기도 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류 가장자리에 위치한 바위에는 “인간사를 영원히 버리고 나의 도를 창주에 붙인다(永棄人間事 吾道付滄洲)”는 송병선의 선대 할아버지 우암 송시열의 글이 각자되어 있다.
서벽정에서 일직선으로 계곡으로 내려가면 학소대가 나온다.
서벽정에서 일사대의 송곳같은 바위를 보러 가는 길이다.
출렁다리를 거너서 전방으로 보면 일사대가 보이는데, 붕괴위험으로 통과할수 없다.
출렁다리 밑으로 상당히 넓은 암반이 나온다. 물놀이등 이곳 바위암반에서 휴식을 취할수 있다면 끝네주는 곳이다.
일사대 부근의 암반을 넘어온 계류가 소를 만들고 그 아래로는 커다란 계담을 형성하고 있다. 물은 연녹색에서 파랑색까지 다양한 색채를 띠며 흐르고 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함과 오싹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우측으로 계류에 우뚝 솟은 바위(일사대)에는 ‘인간사를 영원히 버리고 나의 도를 창주에 붙인다(永人間事 吾道付滄洲)’라고 한 송병선의 7대조 우암 송시열의 글이 각자되어 있다는데 저곳으로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다.
일사대. 사진은 빌려왔읍니다.
세월은 모든걸 변하게 한다. 인간은 그저 100년도 못 버티고 사라져 가는데, 욕심은 끝도 없어 천년만년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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